입가를 닦으며 책읽기


 두 달쯤 뒤에 태어날 아이를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를 잠자리에 재우고 나서 볼과 이마에 뽀뽀를 하고 머리와 이마를 쓸다가는 가슴을 살포시 토닥이면서 생각합니다. 잠들기 앞서 방바닥에 곯아떨어진 아이를 품으로 바싹 안아들어서 옆방으로 옮기기 앞서 오줌그릇에 앉혀 쉬를 누도록 합니다. 아이는 자는 채로 쉬를 눕니다. 쉬를 누이기 앞서는 아이 코를 뚫고 입가와 얼굴을 소금물로 닦았습니다. 코에 물을 넣고 손수건으로 킁킁 하도록 했으나 코가 나오지 않아 솜막대기를 콧구멍에 넣고 살살 돌립니다. 요즈막에는 아이가 흥 하고 코풀이를 제법 하지만, 코풀이를 하더라도 안 나오는 코딱지가 안쪽 콧등에 붙기 일쑤입니다. 굵직한 건더기가 하나씩 묻어 나옵니다. 아이 코를 뚫기 앞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인 1인잡지 만들기를 하느라 헌책방 길그림 하나를 그린다며 책상맡에 앉았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양을 바라보며 저도 공부한다며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옆에서 책을 읽자 저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몇 장 펼칩니다. 이에 앞서는 밥을 차리고 새 반찬 한 가지를 해서 아이하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이는 밥을 안 먹고픈지 자꾸 땡깡을 부리는데, 새 반찬으로 삶은달걀이랑 능금을 잘라 넣고 말린포도와 땅콩을 넣은 다음 상추를 썰어 버무림을 했기 때문에, 이 반찬으로 살살 부르니 아이는 저녁을 맛나게 먹어 줍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겨우 한숨을 돌립니다. 아침부터 씨름하던 아이는 이제 꿈나라로 빠져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지개를 켜면서 비로소 아버지 일을 할 만합니다. 아이가 깬 동안에는 참말 아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봄이니, 아이가 깬 동안에 논둑이나 멧자락을 따라 함께 거닐며 봄풀을 뜯어 새 반찬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논둑을 두리번두리번 살필 때에는 아직 뜯을 만한 풀이 잘 안 보였습니다.

 잠든 아이 곁에서 공책에 글을 몇 줄 적습니다. 글을 몇 줄 적은 다음 책을 두어 권 조금씩 읽습니다. 그제부터 야금야금 읽던 책 하나는 이제 마무리짓습니다. 아이 낳기 앞서 얼른 읽을 책은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새로 맞이할 이듬날에는 이불을 다 끄집어내어 털고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며 치우자고 생각합니다. 이러다 보면 아버지는 책읽기나 글쓰기는 영 할 수 없겠지요. 아버지로서 할 일이란 집살림하고 아이하고 놀기가 될밖에 없겠지요.

 그래, 아이 낳아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면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그야말로 악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발버둥을 치는 삶이어야 한다지만, 발버둥으로 허우적거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나날이 되풀이되지만, 그냥 지쳐 나가떨어지고만 싶지는 않습니다. 악을 쓰듯 버티지 않고서야 책 한 줄 읽을 수 없습니다만, 악을 쓰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용을 쓰고 견디지 않는다면 글 한 줄 쓸 기운을 내지 못합니다만, 그렇다고 용만 쓰는 글이란 나부터 그닥 재미나거나 신나거나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씻기고,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아이하고 손을 잡으며 멧길을 거닐고, 아이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아이를 수레에 태워 자전거마실을 다니고 하면서, 오늘 하루 고마운 나날이었다고 돌이키며 ‘히유우, 힘들구나. 그래도 오늘 그림책 하나 함께 읽고 잠자리에 들자꾸나.’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읽기를 잇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고단하다며 이닦이마저 안 하고 잠들었으니 그림책조차 읽히지 못하는데, 곯아떨어진 아이 볼을 이리저리 살피며 소금물로 얼굴닦이를 했으니, 이 귀여운 얼굴이 꿈나라를 예쁘게 누비다가는 또 새 하루 새 아침에 싱긋방긋 웃으며 치마 입혀 달라고 달려들겠지요. (4344.3.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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