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베개를 하고 책읽기
저녁이 깊어집니다. 잠자리에 아버지가 먼저 누워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치마는 이제 벗고 이듬날 아침이 되어 다시 입자고 말합니다. 한손에 그림책을 들고 아이를 눕힙니다. 아이는 아버지 곁에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림책 하나를 읽습니다. 날마다 이렇게 하면 좋으련만, 날마다 하자니 몸이 받치지 못한다며 자꾸 미루곤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힘들거나 지치더라도 하루에 다문 한두 줄이라도 책을 읽자고 다짐한다면, 이렇게 아이를 팔베개하고 눕혀서 그림책 읽히는 일 또한 다문 몇 분만 들이면 될 일인데 못할 까닭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둘째를 밴 옆지기 등허리나 팔다리를 주무르는 일 또한 몇 분만 들이면 되니까, 날마다 얼마든지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면 될 노릇입니다.
팔베개를 하고 책을 읽히고 좀 드러누우면서 허리를 폅니다. 누운 채 동시 하나를 욉니다. 내가 욀 줄 아는 동시는 얼마 없어서, 언제나 노래로도 부르는 이원수 님 동시 〈겨울 물오리〉를 두 낱말씩 끊어서 외다가는 두어 낱말을 묶어 토막토막 다시 욉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잘 따라합니다. 숫자말을 하나부터 스물까지 셉니다. 아직 아이가 몸을 덜 움직였나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춤을 추듯 하면서 숫자를 스물까지 세다가는 서른 마흔으로 넘어가 백을 세고, 이때부터는 하나씩 낮추어 아흔아홉 아혼여덟 아흔일곱을 셉니다. 그런 다음에는 할머니 두 분 할아버지 두 분, 여기에 이모와 외삼촌과 큰아버지 이름을 하나하나 읊습니다.
여기까지 하고는 아버지는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얼핏 눈을 뜨니 옆지기가 실감기를 방으로 들어와서 하고, 아이한테 기저귀를 대 줍니다. 그 뒤로 아이도 아버지랑 같이 곯아떨어졌는지, 더 칭얼칭얼 놀다가 잠들었는지는 모릅니다. 밤 한 시가 조금 지날 무렵 옆지기도 잠자리에 드는가 싶었는데, 이때에 아이는 옆으로 굴러서 머리를 아버지 옆구리에 박습니다. 자면서도 몸을 얌전히 있지 못합니다. 제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면 거의 죽은 듯이 한 자리에 꼼짝을 않으면서 곯아떨어지는데. (4344.3.18.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