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가에서 책읽기
무덤자리는 으레 볕이 잘 들고 바람 살랑살랑 부는 자리에 씁니다. 무덤자리는 살림집 얻어 지내기에도 퍽 좋은 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덤자리는 풀이 알맞게 자라도록 돌보기 마련이고, 꽤 이름난 분들 무덤자리는 꽤 크기 마련이라, 이 너른 무덤자리 잔디밭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에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이랄는지 철 덜 든 아이들이랄는지 ‘신채호’가 누구인지 아는가 모르는가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덤자리 언덕받이에서 끝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풀밭미끄럼놀이 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한테 신채호라고 하는 한 사람은 ‘풀밭미끄럼놀이 재미나게 하는 무덤자리 어르신’으로 자리잡을까요. 아니, 이런 어르신 이름조차 모르고 오늘 하루 또 신나게 놀았다며 가끔 떠올릴 만할까요.
어른한테 무덤가란 식구들이 함께 찾아들어 절 몇 번 하고 나서 도시락 펼쳐 젯밥이랑 술 한잔 나누기에 좋은 자리이면서, 한동안 드러누워 낮잠 자기에 좋은 자리요, 낮잠에서 깨어났다면 책 한 권 펼쳐 읽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어쩌면, 무덤자리를 퍽 좋은 볕자리에 마련하는 까닭은, 여느 때에는 쉬 만나지 못하던 살붙이들이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이야기꽃 피울 좋은 만남터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4344.3.11.쇠.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