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는 어린이


 아이는 제 어버이가 장만한 그림책을 사서 읽는다. 아이 스스로 책방에서 고른 그림책을 읽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는 책방마실을 한달지라도 책을 사거나 읽으러 간다기보다 어디 놀러 가는 마실이기 때문이다.

 어버이는 아이가 읽을 책이며 어버이 스스로 읽을 책을 고른다. 아이는 마냥 뛰어논다. 어버이가 고른 책 가운데에는 아이가 즐겁게 읽는 책이 있으나, 아이가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 책이 있다.

 글만 빽빽하기에 아이가 거들떠보지 않는 책이지는 않다. 아이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글책은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는 굵고 큰 글씨는 알아보려 하는 듯하다고 느낀다. 지난주에는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만화책에 적힌 글씨를 하나씩 짚으며 “이게 뭐야?” 하고 물었다. 오늘 새벽에는 《엉망진창 섬》이라는 그림책에 적힌 글씨를 하나하나 짚으며 《이건 뭐야?》 하고 묻는다. 무슨 어린이가 새벽 두어 시부터 깨어서 논다며 이렇게 방방 뛰는지 알 길이 없다만, 나하고 옆지기가 낳은 아이인 만큼 나하고 옆지기가 어린 날 이렇게 방방 뛰듯이 놀았다는 소리가 될 테지.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는 어린이한테 조금 무서울 수 있으나, 무섭다고 해 보아야 1960년대 어린이한테 무서울 만화였고, 2010년대 어린이한테는 그닥 무섭지 않다 할 만한 만화이다. 왜냐하면, 2010년대 일본이나 한국이나 깊은 두메란 거의 사라졌으니까. 요괴이든 도깨비이든 조용히 깃들면서 사람이랑 씨름하며 놀던 시골자락은 이제 없다. 아이는 만화책을 넘기며 기타로이든 요괴이든 귀엽거나 재미있게 여기는지 모른다. 《엉망진창 섬》에 나오는 괴물 그림을 보면서도 무섭다기보다는 재미나거나 남다르다고 느낄까.

 생각해 보면, 윌리엄 스타이그 님은 ‘무서워 보이는 괴물’을 그렸다기보다 ‘저마다 다 다른 괴물’을 그리지 않았는가 싶다. 저마다 다 다른 괴물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살아가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하지 못하면서 늘 서로 윽박지르며 다투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그렸는지 모른다.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도 매한가지이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일부러 무서운 요괴를 그리지 않는다. 미즈키 시게루 님이 그린 일본 요괴는 ‘시골에서 오래오래 살아온 여느 사람들 착하고 참다운 터전을 고이 돌보거나 지키며 이웃하던 어여쁜 다른 목숨’이 아닌가 싶다. 착하며 아름다운 사람하고는 이웃이 되고, 못되거나 모진 사람한테는 쓴맛을 보여주는 또다른 님을 보여준 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는 예쁘장한 그림보다는 제 마음에 끌리는 그림을 반긴다. 아이가 손에 쥔 그림책 그림이 그저 예쁘장하기만 하다면 곁에서 지켜보는 어버이로서 하나도 재미없다. 아이가 손에 쥔 그림책 그림이 예쁘기도 하면서 살가울 때에는 옆에서 바라보는 어버이로서 언제나 새롭거나 새삼스럽다.

 그림책을 그려서 내놓는 어른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그림책은 아이가 열 해나 스무 해 넘도록 수천 수만 번을 되읽는 책인 줄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제 어버이만 한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사귄 다음 제 어린 날과 마찬가지인 새로운 어린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다시금 장만하거나 어릴 적 보던 책을 다시 꺼내어 제 아이한테까지 읽히는 책인 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책읽기를 생각하지 않고서 그림책을 그린다면, 또 만화책을 그린다면, 또 글책을 쓴다면, 이런 책은 책이 아니라 돈벌이일 뿐이다. 돈벌이만 하는 사람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요, 이에 앞서 책삶을 일구는 사람부터 될 수 없다. (4344.3.8.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