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읽는 어린이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사진책을 읽는다. 아이들이 보는 숱한 어린이책을 살피면,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 꽤 많다. 사진책은 으레 어른들만 보는 줄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들은 만화책 못지않게 사진책을 대단히 많이 본다.

 만화로 이루어지거나 그림으로 빚은 책 가운데에도 좋으며 훌륭한 책이 많다. 글로 된 어린이책 가운데에도 빼어난 책이 많다. 그런데, 글책은 글책 노릇을 하고, 그림책은 그림책 노릇을 하며, 사진책은 사진책 노릇을 한다. 글이 아니고서는 느끼기 어려운 이야기를 글책이 보여주고, 그림책이 아니라면 느끼기 어려울 이야기를 그림책이 보여주며, 사진책이기 때문에 느끼도록 하는 이야기를 사진책이 보여준다.

 자연대백과사전이라든지 자연그림책은 으레 사진책으로 만든다. 사진책이 먼저 있고서야 그림책이 있다. 아니, 사진이 없던 먼 옛날에는 그림책만 있었겠지. 그런데, 사진이 없던 옛날에는 아이들이 읽도록 마련한 그림책 또한 없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읽도록 엮은 글책마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읽을 책이란 몹시 드물다. 아예 없기까지 한 나날이 꽤 길다.

 오늘날, 아이들이 읽을 글책이며 그림책이며 사진책이며 몹시 많다. 아이들은 책을 참 많이 읽는다. 아이들은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책바다요 책숲이라 할 터전이 중학생만 되면 싸그리 사라진다.

 먼 옛날까지 아니더라도 쉰 해쯤 앞서나 서른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책이 아닌 삶으로 삶을 배웠다. ‘삶으로 삶을 배우’는 어린이였지 ‘책으로 삶을 배우’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지난날 어린이는 ‘자연으로 자연을 배우’는 어린이였다. ‘책으로 자연을 배우’는 어린이는 아무도 없었다.

 요즈음 어린이는 ‘자연으로 자연을 배우’지 못한다. 아주 드물게 ‘자연으로 자연을 배우’는 어린이가 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어린이는 ‘책으로 자연을 배울’ 뿐 아니라 ‘책으로 책을 배우기’까지 한다. 아예, 책에 파묻힌다고 하겠다.

 사람은 사람으로 배운다. 밥은 밥으로 배운다. 밥이 맛난지 맛이 없는지는 밥으로 먹어야 안다. 밥을 다루는 책을 읽는다 해서 밥을 알 수 없다. 사랑이 따스한지 차가운지 기쁜지 슬픈지는 사랑을 해야 안다. 사랑소설을 읽는다 해서 사랑을 알 수 없다. 사랑을 어림하거나 생각할 뿐, 사랑을 알 수 없다. 사랑은 사랑으로 배울 뿐이다.

 온누리 모든 앎이란 그저 앎이지, 삶이 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란 거짓일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알’ 뿐, 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몸소 겪거나 치르며 움직여서 ‘늘 보면서 살 때에 볼’ 수 있다. 곧, ‘삶으로 보는 눈’이지 ‘앎(책)으로 보는 눈’은 있을 수 없다. 앎으로는 생각할 뿐이기에, ‘앎으로 생각하는 눈’만 있다.

 아이한테 ‘딸기 한살이 다룬 사진책’을 하나 사서 읽힌다. 바야흐로 한 달만 있으면 온 들판과 멧자락에 딸기가 그득그득 돋을 테니까, 딸기철을 기다리며 딸기 사진책 하나 장만해서 읽힌다.

 딸기 사진책은 한국 출판사에서 나왔으나, 이 사진책을 만든 사람은 일본사람. 누구나 흔히 먹거나 자주 먹는다 하는 딸기인데, 막상 딸기 이야기를 차분히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담는 한국 어른은 몹시 드물다. 스튜디오에서 예술을 만들거나 모델을 꾸미는 사진은 넘치지만, 정작 ‘딸기 사진책’이라든지 ‘콩 사진책’이라든지 ‘양말 사진책’이라든지 ‘빨래 사진책’ 따위는 한 가지조차 없다.

 대나무가 어떻고 소나무가 어떻다는 사진을 찍으면 뭐하나. 막상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 한살이 사진은 한 장조차 없는 대한민국인데. 백두산이 어떻고 한라산이 어떻다는 사진을 만들면 뭐하나. 정작 논은 어떻고 밭은 어떻다는 사진책 하나 없는 이 나라인데.

 아이들은 사진으로 된 책, 그러니까 사진책을 읽는다. 아이들이 읽는 어린이책 가운데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치고 한국사람이 빚은 책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드물게 나오거나 가끔 태어나지만, 하나같이 깊이가 얕고 너비가 좁다. 어린이가 어떤 어린이책을 즐기거나 어떤 사진을 좋아하며 어떤 삶을 사랑하는지를 헤아리면서 사진을 찍는 일꾼이랑 사진책을 엮는 일꾼이 도무지 없다. 한국에서 쏟아지는 ‘어린이 사진책은 모조리 일본 사진책’이라 할 만하다.

 우리 아이는 굳이 ‘딸기 사진책’을 읽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시골아이인 우리 아이가 ‘딸기 사진책’을 보면서, 곧 맞이할 딸기철에 한결 신나게 딸기를 만날 수 있으며, 사진책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딸기 한살이를 헤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진책이 미처 담지 못한 새삼스러이 아름다운 밭둑과 멧자락 자연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어린이 눈높이가 되지 않고서는 어린이책을 만들 수 없다.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지 않고서는 어린이가 읽을 사진책을 일굴 수 없다. (4344.3.6.해.ㅎㄲㅅㄱ)
 

 

(ㅋㅋㅋ 100만 원쯤 되는 사진책더미를 밟고 서서 노래 부르는 돼지...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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