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와 책읽기
풀이 고기보다 몸에 좋은 먹을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풀은 풀대로 좋은 먹을거리이고, 고기는 고기대로 좋은 먹을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하거나 고기를 굳이 안 먹어도 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고기는 그저 고기라는 먹을거리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풀을 자주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풀은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키우지 않아도 스스로 돋아나는 풀이든, 사람이 애써 심어서 거두는 푸성귀이든, 풀은 우리한테 살아갈 힘을 북돋아 주는 좋은 먹을거리입니다.
고기를 먹자면 ‘고기가 될 짐승’한테 풀을 먹여야 합니다. 풀을 먹고 살아가는 짐승을 여러 해쯤 ‘꽤 많은 풀을 먹인 다음’에야 잡아서 고기로 먹습니다. 고기는 풀처럼 금세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풀을 꽤 많이 들이고 난 다음 먹을 수 있습니다.
예부터 고기를 드물면서 고마운 먹을거리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을 키우는 데에는 풀이며 품이며 많이 드니까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고기란 그다지 드물거나 고마운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참 흔하면서 값싼 먹을거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고기가 되는 짐승’은 풀을 먹지 않기 때문이요, ‘여러 해에 걸쳐 풀을 많이 먹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학방정식으로 만든 값싼 사료를 먹여 얼른얼른 잡아 죽인 다음 얻는 고기이기 때문에, 오늘날 고기값은 대단히 쌉니다. 고기값이 싸다 보니까 풀값하고 견주면 풀값이 외려 참 비싸다 느낄 만합니다. 어쩌면 풀을 뜯거나 거두어 얻을 때보다 짐승을 잡아 고기로 마련할 때에 드는 돈과 품이 적게 드는지 모릅니다.
사료와 항생제를 써서 후딱후딱 해치우든 하루아침에 만들어 내는 먹을거리가 되고 만 짐승고기가 사람몸에 좋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들판이나 마당에서 호젓하게 뛰어놀며 살던 닭을 잡아서 고기로 먹을 때하고, 닭공장에서 부화기로 깨어나게 해서 사료만 조금 먹이다가 채 한 달이 안 되어 잡아서 고기로 먹을 때하고 맛이 같을 수 없습니다. 고기값도 다를 테지요.
고기는 고기다와야 하고, 풀은 풀다와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다와야 합니다. 삶은 삶다와야 하며, 책은 책다와야 합니다. 책에 담을 이야기는 책에 담을 이야기다와야 합니다.
엉터리로 키워 엉터리로 먹는 짐승고기는 발굽병이니 무어니 하면서 말썽이 생깁니다. 엉터리로 엮어 엉터리로 내놓는 책은 사재기니 거짓말이니 눈속임이니 무어니 하면서 말썽이 터집니다. 겉으로는 예뻐 보이는 글을 쓰던 사람들 가운데 돈과 이름값과 힘에 따라 갈아타기를 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나는 고기를 굳이 싫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이라서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 나한테 고마운 먹을거리입니다. 모두 나한테 제 목숨을 기꺼이 바쳐 주기에, 나는 오늘 하루 즐거우며 고맙게 살아숨쉴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더 좋거나 덜 좋은 책이 없습니다. 하나같이 고마우며 아름다운 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