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하고 책읽기
요사이 아이한테 책 읽어 주기를 제대로 못한다. 그래도 어제에는 두 가지 책을 읽어 주었는데, 이 살림 저 일에 치이면서 기운이 쪼옥 빠지니까, 책을 못 읽어 주기 일쑤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책을 읽어 주지 못하지만, 스스로 책을 쥐어 읽는다. 제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펼친다. 이제 그림을 제법 볼 줄 알 뿐 아니라 글씨도 큼직한 녀석은 읽어 보려 한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가를 줄 아는구나 싶다.
아이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지내자면 그야말로 힘이 송두리째 빠진다. 아이한테 어버이 힘을 모조리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 얼굴을 보면 한결같이 맑으며 밝거나 보드랍다.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못 받은 아이들은 푸석푸석하거나 그늘지거나 슬프다. 사랑받는 아이들은 제 어버이 사랑을 듬뿍 받는다. 사랑을 나누는 어버이는 제 살을 깎으며 사랑을 나눈다. 둘째를 밴 옆지기는 이제 눈썹이 거의 다 빠졌다. 아이를 배어 낳는 어머니들은 뼈와 살뿐 아니라 머리카락과 눈썹까지도 제 아이한테 바친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은 예전보다 힘을 못 쓴다든지 몸에 아픈 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이를 밸 무렵부터라도 집일을 더 많이 해야 하며, 아이하고 훨씬 오래 놀고 어울리며 삶을 물려주어야 한다.
아이한테 돈을 쥐어 준들 아이가 돈을 쓸 수 없다. 아이가 돈을 안다 치더라도 아이 스스로 어디에 가서 이 돈을 쓰겠는가. 아이가 까까를 먹고 싶다 하든 얼음과자를 먹고 싶다 하든, 아이 스스로 사다 먹는다기보다 어른이 가게에 가서 돈을 치러 사다가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이한테 주는 사랑이란 돈이 아닌 말 그대로 사랑이다. 아이한테는 돈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
어버이 손길 한 번이 사랑이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 주고 빗으로 예쁘게 빗어 주는 일이 사랑이다. 번쩍 안아올린다든지, 등으로 업는다든지, 손을 맞잡고 춤추며 노래부른다든지 할 때에 사랑이다.
반드시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으며, 꼭 아이한테 좋은 책을 많이 읽혀야 하지 않다. 어떤 책이든,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뉘인 채 함께 읽으면 된다. 몸이 많이 고단하면 자리에 드러눕고 아이한테는 팔베개를 하라며 눕혀서는 모로 몸을 기울인 채 책을 함께 읽으면 된다.
아이는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줄거리를 받아들이기도 할 테지만, 책을 읽는 어버이 목소리를 받아먹는다. 책을 쥐고 저(아이)를 품에 안은 어버이 살결과 살내음을 빨아먹는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모든 사랑을 바칠밖에 없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온갖 기운을 다 뽑아내어 줄밖에 없다. 어버이는 지친다. 어버이는 힘들다. 그런데 용케 이듬날 다시금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아이하고 놀며 이렁저렁 일로 복닥인다. 밤나절이면 죽은듯이 쓰러지면서, 용하게 다시 기운을 차리는 날이 되풀이된다. (4344.3.2.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