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ediate Family (Hardcover)
Sally Mann / Aperture / 1992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알라딘 목록에도 뜨는 줄 이제서야 알았기에, 지난해에 쓴 글을 이제서야 걸친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에 실린 글.)


 그림그리기와 글쓰기와 사진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 샐리 만(Sally Mann), 《Immediate Family》(Aperture,1992)


 사진책 《윤미네 집》이 1990년에 처음 나왔을 적에 사람들은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제법 눈길을 끌고 입소문을 타기는 했으나 이 사진책을 기꺼이 장만하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삶’을 사진으로 담는 뜻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2010년에 사진책 《윤미네 집》은 새 옷을 입으며 다시 태어났고, 이제는 퍽 많은 사람들이 널리 눈여겨보며 이 사진책을 장만해 줍니다. 스무 해 만에 다시 나오며 꽤 사랑받는다고 하여 이 사진책에 깃든 뜻이 갑자기 생겨나거나 샘솟지는 않습니다만, 이제라도 사진찍기에 담는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반가운 노릇입니다. 그런데, 《윤미네 집》을 장만한 분들은 이 사진책에서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쉬운지를 찬찬히 느끼고 있을는지요. 누구나 찍을 수 있어 아름답고, 언제라도 찍을 수 있어 훌륭하며, 어떠한 장비로라도 찍을 수 있어 어여쁜데다가, 작가 아닌 사람이 찍어도 거룩한 줄을 느끼고 있을는지요. 식구들하고 좀더 오래 지낼 수 있으면 더 애틋한 사진을 엮을 수 있고, 집살림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하며 복닥였으면 더욱 살가운 사진을 이룰 수 있으며, 함께 즐길 놀잇거리나 일거리가 있었으면 한결 눈물겨울 사진을 선보일 수 있는데다가, 두고두고 오순도순 이야깃거리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한껏 웃음지을 사진을 펼칠 수 있는 줄을 깨닫고 있을는지요.

 스물다섯 즈음 된 젊은 넋이 당신 어버이 품을 떠나 홀로 나라 안팎을 떠돌던 발자국을 담아낸 이야기책 《먼지의 여행》(신혜 글,샨티 펴냄,2010)을 읽으면, “사진찍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카메라가 없어서,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색연필로 초상화를 그려 주기로 했다. 카메라로 찰칵 찍고 말 순간을 천천히 그림으로 그리며, 나는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아이들이 나를 오래 쳐다보고, 나도 아이들을 오래 바라봤다(133∼134쪽).”는 대목이 있습니다. 젊은 넋은 ‘좋은’ 사진, 또는 ‘즐거운’ 사진, 또는 ‘애틋한’ 사진, 또는 ‘훌륭한’ 사진, 또는 ‘눈물겹거나 웃음지을’ 사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몸으로 부대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를 더 부대끼거나 삭여내지는 못합니다. 아직 많이 팔팔하고 풋풋하니까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이 부대끼며 받아들이리라 믿는데, 그림을 그릴 때에만 오래오래 서로를 쳐다보며 얘기를 하고 마음을 모을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를 할 때에도 언제나 오래오래 서로를 쳐다보며 얘기를 한 다음에 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참다운 사진을 낳습니다.

 저는 제 사진감인 ‘헌책방’과 ‘골목길’과 ‘자전거’와 ‘우리 집 딸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늘 오래오래 지켜보며 가슴으로 삭여 놓습니다.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샘솟는달지, 스스로 우러나오며 터질 때까지는 사진기를 쥐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진기는 제 목걸이가 되어 줍니다. 싸구려 사진기이면서 꽤나 무거운 녀석을 쓰고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든 아이를 품에 안고 동네마실을 하든 제 목에는 어김없이 사진기가 대롱대롱 걸려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필 때에도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습니다.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때를 빼놓고는 늘 사진기를 몸에 걸거나 곁에 놓고 있습니다. 날마다 열 시간쯤은 사진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지 싶습니다. 다만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횟수는 많지 않습니다. 내 눈길로 바라본 내 삶을 내 마음으로 곰삭여서 무르익히지 않고서는 사진기 단추를 누를 수 없습니다. 미처 무르익히지 않았는데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그럴싸한’ 사진은 되지만, 저 스스로 제 사진을 놓고 ‘웃거나 울’ 사진은 못 됩니다.

 서울 용산 헌책방 〈뿌리서점〉을 열여덟 해 다니며 사진은 열두 해에 걸쳐 사천 장 즈음 찍었습니다만, 드나드는 횟수가 늘고 머물며 책을 살피는 나날이 늘수록 이곳에서 다시금 찍는 사진이 한결 사랑스럽고 푸근합니다.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닌 제 고향터전이자 살림집 깃든 골목길을 수천 수만 번 밟으며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에 비로소 제 웃음보와 울음보를 터뜨리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셜리 만(Sally Mann)이라는 분이 이룬 사진책 《Immediate Family》를 보았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대낀 온갖 따스함과 눈물과 애틋함을 서려 놓은 사진책을 보았습니다. 《윤미네 집》은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가 바쁜 틈을 얼마나 바지런히 쪼개며 식구들과 복닥이는 데에 바쳤는가를 잘 엿볼 수 있어 사랑스러운 사진책이라면, 《Immediate Family》는 홀가분하고 거리낌없는 넋으로 삶을 꾸리는 어머니가 밤낮으로 아이들하고 뒤섞이면서 아이들 자라나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재미나게 껴안았는가를 즐거이 읽을 수 있어 따사로운 사진책입니다.

 두 사진책을 보면서 새삼스레 느끼지만, 생활사진이든 작품사진이든 모두 삶에서 비롯합니다. 꾸밈없이 바라보는 수수한 사진이든 이래저래 만들고 꾸미며 이루는 작품사진이든, 삶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삶을 뒤틀거나 만지작거리며 사진 하나 이루어 냅니다. 삶결 따라 내놓는 사진이지, 삶무늬 없이 내놓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삶자국 묻어나는 사진이요, 삶자락 없이 일굴 수 없는 사진입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굿판이든, 모조리 나 스스로 살아가는 모양새요 넋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3.3.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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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02-1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애써 올렸더니 이 책은 품절이네... ㅠ.ㅜ
그러나 1994년 재판본은 있으려나?
아직 이 책이 남았다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라도
한국에서 사서 보아 주기를 꿈꾸며....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