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와 책읽기


 요사이 오른팔꿈치가 새삼스레 다시 저리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오른팔꿈치인데, 요사이 오른팔을 쓸 일이 많았을까. 아니면 몸이 힘들기에 오른팔꿈치도 다시금 찌릿찌릿 저리는가. 병원에 가 보면 금세 나을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병원에 간다 한들 달라질 수 없는 오른팔꿈치일는지 모른다. 그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죽 안고 지내야 할 내 팔꿈치이고, 더 다치거나 도지지 않도록 알뜰히 건사해야 할 테지. 그런데 둘째를 낳아 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할 때면 이 팔꿈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를 안거나 업는다 해서 팔꿈치가 저리지는 않는다. 아마 손빨래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 손빨래를 안 한대서 오른팔꿈치가 좋아질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도서관 책을 나르거나 옮기거나 갈무리하지 않는대서 이 팔꿈치가 나아지겠는가. 사진기를 쥐지 않거나 글을 안 쓴다면 이 팔꿈치가 안 아플 수 있겠는가.

 아프니까 아픈 채 살아간다. 고단하니 고단한 채 지낸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산다. 그렇지만 배고프면 살기 어려우니까 밥을 먹으려 애쓰고, 끼니를 이으려 용을 쓴다. 아픈 데는 틈틈이 주물러 주고, 아픈 옆지기 또한 틈틈이 몸 곳곳을 주물러 주면서, 집안을 조금이나마 치워야 한다. 몸이 고단하거나 지치더라도 아이하고 놀아 주거나 아이한테 그림책 읽는 틈을 내어야 한다.

 날마다 이래저래 밀리거나 쌓이는 일이 많다. 날마다 조금이기는 하고 모자라기는 하나 이럭저럭 하는 일도 있다. 밀리는 일이라 해서 서운해 할 까닭이 없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내 걸음걸이대로 걸어가면 된다.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못한다. 할 수 있으니 꾸준히 하고, 할 수 없으니 손을 놓을는지 모르지만, 할 수 없더라도 조금은 건드려 본다. 하다가 안 되기에 도와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꺼내고, 할 수 없기에 해 달라고 비손을 한다.

 내 몸 팔꿈치가 오롯하거나 튼튼하기만 하다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몸 여러 곳이 쑤시고 결리며 저리지만, 이렇게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까 서툰 꿈을 덜 꿀 수 있지 않느냐고 여긴다. 몸 곳곳에서 아픈 소리를 내니, 나보다 힘들 옆지기가 둘째를 더욱 사랑스레 보듬도록 옆에서 북돋우지 못하지만, 내 몸이 한결 튼튼했다면, 아픈 사람 아픈 몸이나 마음을 더 못 느끼거나 안 느낀 채 집 바깥으로만 맴돌려고 했으리라 본다. 팔꿈치가 아프니 멧골집에 고맙게 머물면서 이제껏 그러모은 책을 되읽고 다시 읽는다. (4344.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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