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책읽기 그림그리기
사진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고, 책이 있으니 책을 읽으며, 종이가 있으니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좋아한다면 사진을 찍을 테고, 책을 좋아한다면 책을 읽을 테며,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림을 그릴 테지요.
자전거가 있으면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탑니다. 공깃돌이 있거나 작은 돌이 있으면 공기놀이 좋아하는 사람은 공기놀이를 합니다. 새봄이 찾아와 온 들과 숲에 새잎 돋는 새풀이 나면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물을 캐거나 뜯으러 멧길을 오르내립니다. 봄에 나서 봄나물이고, 멧자락에서 나니까 멧나물입니다. 예부터 멧토끼요 멧돼지라 했지만, 이제는 ‘메’ 같은 낱말은 잘 안 쓰니 ‘산토끼-산돼지-산나물-산자락’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지만, 멧골짜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데 사람들이 어떤 말을 쓰든, 이곳에서는 ‘메’를 앞에 붙이는 이름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말도 저마다 좋아하는 말을 즐겁게 씁니다.
사진기가 있어도 사진을 찍고, 사진기가 없어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이란 종이에 뽑아서 벽에 거는 작품만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서른두 달을 함께 살아온 아이는 ‘망가져서 못 쓰는’ 사진기로도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저도 어린 날 두 손 두 손가락을 네모낳게 만들어 사진놀이를 했습니다. 내 마음에 살포시 담으면 얼마든지 사진찍기가 됩니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지만, 책이 없어도 책을 읽습니다. 책에 적힌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새롭게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겪은 이야기입니다. 저마다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겪은 이야기를 ‘글로 담을’ 때에 책으로 묶습니다. 그러니까, 따로 글로 안 쓰고 입으로 말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렇게 입말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책인 셈입니다. 종이에 이야기를 적으면 종이책이고, 동무나 이웃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책입니다.
종이가 있을 때에 그림을 그린다지만, 종이가 없을 때에도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이나 볼펜을 쥐어 종이에 그림을 그려도 즐겁고, 나뭇가지나 손가락이나 돌멩이로 흙땅에 죽죽 금을 그으며 그림을 그려도 즐겁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에 대고 빙빙 돌리며 그림을 그려도 즐겁습니다.
꼭 어떻게 해야만 사진찍기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찌저찌 해야만 책읽기이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요리조리 해야만 그림그리기이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나름대로 받아들여 즐길 때에 사진찍기도 되고 책읽기도 되며 그림그리기도 됩니다.
글을 쓰는 동화작가나 소설가라든지,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든지, 이런 이름이 붙어야만 대단하지 않습니다. ‘작가’나 ‘화가’라고 한자로 지은 이름을 붙여야만 이러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글을 쓰니까 ‘글쟁이’나 ‘글꾼’이나 ‘글사람’이라 하면 되고, 그림을 그리기에 ‘그림쟁이’나 ‘그림꾼’이나 ‘그림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을 ‘농사꾼’이라 하니까 모두들 ‘-꾼’으로 맞출 수 있고, 그저 즐긴다는 뜻으로 ‘즐김이’ 같은 이름을 달아 ‘글 즐김이’나 ‘그림 즐김이’처럼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나타나거나 남다르게 보이거나 겉보기로 꽤 그럴듯해야 사진이거나 책이거나 그림이거나 글이라고 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이나 그림을 보거나 책이나 글을 읽거나, 내가 즐겁게 보거나 읽어야 나한테 좋은 사진이거나 그림이거나 책이거나 글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알뜰히 즐기면서 알차게 받아들이고 아름다이 보듬으면 좋을 여러 가지입니다.
밥 한 그릇 고맙게 받아서 먹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고맙게 눈을 감습니다. 틈틈이 낯과 손발을 씻거나 물을 마시면서 물이 고맙습니다. 파란하늘 하얀구름 올려다보며 바람이 반갑습니다. 내 삶을 이루는 고마운 여러 가지가 내가 즐기는 사진이 되고 책이 되며 그림이 됩니다. (4344.2.10.나무.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