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만큼이나 책읽기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만, 막상 이 시를 쓴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어린이문학이기 때문에 어린이일 때에만 읽히고 지나친다든지, 어린이 아닌 사람은 읽거나 말하거나 아로새길 만하다고는 여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첫째 아이를 함께 낳아 키우면서, 아이한테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서서 아장아장 귀여운 물오리들아. 나도 이제 찬바람 두렵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같은 노래를 곧잘 불러 줍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돌아가시기 앞서 마지막으로 쓴 시 〈겨울 물오리〉입니다. 나는 이 노래를 불러 주면서, 노래는 노래로 잘 짓기도 했으나, 노래에 앞서 시부터 훌륭하기 때문에 이토록 고운 노래가 태어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 노래를 알 만한 어른이라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이곤 합니다. 아이를 함께 낳아 함께 키우는 아버지는 이 노래를 잘 모를 뿐더러, 이 시조차 거의 모릅니다. 아마 아버지 가운데 어린 날 이원수 님 문학을 살가이 마주하거나 즐긴 분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오늘날이라 해서 이원수 님 문학을 읽히기는 만만하지 않다고도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린 날 이원수 님 문학을 제대로 맛보거나 즐기지 못한 어른이 아이를 낳는달지라도 아이한테 무슨 책을 읽혀야 좋을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아이만 낳는다고 아이한테 어린이책을 쥐어 주지 못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책을 살가이 마주하는 가운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이 눈높이로 삶과 사람과 사랑을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이원수 님 문학책을 비롯한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랑 사귀는 이라면, 사랑하는 짝꿍이 좋아하는 갈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선뜻 다가서지는 못할지라도 짝꿍이 좋아하는 갈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때가 잦으며, 짝꿍하고 나눌 이야기란 짝꿍이 좋아하는 삶을 조곤조곤 갈무리하는 이야기입니다.

 내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이야기꽃을 피우자면, 내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삶과 얽힌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마음을 살뜰히 쓰고, 생각을 알뜰히 기울여야 합니다. 살섞기와 입맞춤도 사랑이지만, 사랑은 살섞기와 입맞춤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읽기가 되어야 사랑이며, 삶읽기와 사람읽기를 찬찬히 이어갈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내 짝꿍 사랑이 어떠한가를 읽지 못하고, 내 짝꿍 삶을 읽지 못하며, 내 짝꿍이 어떠한 사람이요 내 짝꿍 둘레를 이루어 온 숱한 사람들을 읽지 못한다면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책 하나를 읽자면 깊이 아끼며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한 사람을 헤아리자면 이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이이가 쓴 글과 내놓은 열매와 걸어간 삶을 차분하며 올바로 바라보는 눈결과 손길을 살펴야 합니다. 틀에 박힌 눈이 아니요, 내 틀에 갇힌 눈이 아니며, 내가 마주한 글쓴이 한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과 꿈으로 삶을 일구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책읽기를 어느 만큼 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다니며 보금자리 살림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어느 만큼 책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사랑읽기 꿈읽기를 하는 한 사람인가요.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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