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넋말


 저는 학교를 열두 해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넋’이나 ‘얼’이라는 낱말을 거의 못 들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어른들이 한문이나 한자말을 즐겨쓰곤 해서 ‘혼(魂)’이나 ‘백(魄)’이나 ‘영혼(靈魂)’이나 ‘기백(氣魄)’이라는 낱말만 으레 들었습니다. ‘마음’이라는 낱말보다는 ‘정신(精神)’이라는 낱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요사이에도 한문이나 한자말 즐겨쓰는 교장·교감 선생님이 많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이런저런 한문이나 한자말보다는 ‘마인드(mind)’나 ‘스피릿(spirit)’ 같은 영어를 즐겨쓰는 분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니 한국사람이에요. 그러나 ‘한국사람’처럼 적지 못합니다. 국어사전 띄어쓰기로는 토박이말 ‘-사람’은 뒷가지 구실을 못한다고 되었기에, ‘한국 사람’이라 적고, 한자말 ‘-人’을 붙여야 비로소 ‘한국인’이라 할 수 있답니다. 더구나, ‘불란서인’은 붙이고 ‘프랑스 인’은 띄도록 하는 띄어쓰기예요.

 말사랑벗도 생각할 말이고, 저도 생각할 말이며, 우리 집 아이랑 옆지기도 생각할 말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서로 즐거우면서 흐뭇할 나날을 생각하여 말을 합니다. 운전면허증이나 자격증을 따듯이 ‘한글자격증’을 따거나 ‘한글능력시험’을 볼 수 없어요. ‘한글자격증’이나 ‘우리말자격증’을 따든, 또는 ‘한글능력시험’이나 ‘우리말능력시험’을 치러서 점수가 높아야 한글이나 우리말을 잘 쓴다 할 만하려나요. 방송에 나와 ‘우리말 달인’이 되어야 우리말을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이 쓸 만하려나요.

 몇몇 사람만 빼어나게 잘할 수 있거나, 몇몇 사람만 빼어나게 잘하면 되는 말이 아닙니다. 몇몇 사람만 손꼽히도록 잘하는 말이란 우리가 다 함께 쓸 만한 말이 못 됩니다. 모든 사람이 즐거이 나눌 수 있어야 비로소 말입니다. 누구라도 내 마음과 꿈과 생각을 알뜰살뜰 담을 때라야 바야흐로 말이에요. 글이란, 이러한 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몇 해 앞서인가, 어느 진보 신문을 펼쳐 ‘대입시험 교육’을 다루는 자리를 넘기다가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로 일기를 써야 일기로 생각하여 말하는 솜씨를 키울 수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참으로 마땅한 소리이지만, 이 마땅한 소리를 적바림하는 신문이 참으로 무섭다고 느꼈어요. 영어로 일기를 쓰자니 저절로 영어로 생각할 테며, 마음속으로나 입으로나 영어를 읊을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내가 손에 쥔 책에 적힌 글을 마음속으로나 입으로나 읽어요. 이 책이 한글로 적혔으면 한글로 읽는데, 한글로 적혔으나 창작이나 번역 글투가 엉성궂다면 엉성궂은 글을 읽으며 이 글월, 그러니까 엉성궂은 글월에 내 머리나 입이나 눈이 익숙해집니다.

 마음속으로 엉성궂은 글월을 자주 읽었다면, 나도 모르게 엉성궂은 글월이 튀어나옵니다. 마음속으로 영어를 생각해서 일기를 꾸준히 쓴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자연스러운 영어가 튀어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생각하며 책일기를 쓰면 책을 깊고 넓게 헤아리는 마음밭을 기릅니다. 노래를 헤아리며 노래일기를 쓰면 노래를 깊고 넓게 살피는 마음자리를 가꾸어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가 아이키움일기를 쓰면 아이 삶을 한결 깊고 넓게 돌아보는 마음바탕을 일굽니다. 곧, 말사랑벗님이나 저나, 참답고 착하며 고운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살아간다면 언제나 참답고 착하며 고운 말이 스며들어 샘솟습니다. 착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착하다 싶은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요. 곱게 헤아리지 않는데 곱다 싶은 말이 튀어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말다운 말을 해야 합니다. 어른인 저부터 푸름이인 말사랑벗님까지 말다운 말을 해야 해요. 말다운 말을 하자면 생각다운 생각을 하면서 삶다운 삶을 꾸려야 합니다. 삶은 엉망이면서 생각은 똑바르지 못해요. 삶이 어수선한데 생각이 가지런할 수 없어요. 삶을 알차게 돌보면서 생각을 알차게 돌보고, 생각을 알차게 돌보기에 말 또한 알차게 돌봅니다. 삶을 사랑스레 가꿀 때에 넋이나 얼을 사랑스레 가꾸고, 넋이나 얼을 사랑스레 가꾸는 가운데 말과 글 또한 사랑스레 나눕니다.

 어린이를 가리켜 꿈나무라 합니다. 말사랑벗인 푸름이를 바라보는 저는 말사랑벗을 생각나무라 가리킵니다. 꿈나무가 커서 생각나무가 된다면, 생각나무가 커서 어떠한 나무가 되려나요. 말사랑벗은 앞으로 어떠한 어른나무가 되고 싶은가요. 어린나무는 푸른나무를 거쳐 어른나무가 될 텐데, 차츰 어른나무로 자라나서 숲을 이룰 말사랑벗은 둘레에 어떤 보금자리와 터전과 마을을 일구고 싶나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아끼며 무엇이랑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가고 싶을까요.


1. 생각나무 : 생각은 나무와 같습니다. 삶 또한 나무와 같아요. 말도 나무와 같습니다. 책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꿈이든 공부이든 밥이든 글이든 이야기이든 나무하고 같아요. 삶나무, 말나무, 책나무, 노래나무, 영화나무, 꿈나무, 공부나무, 밥나무, 글나무, 이야기나무입니다. 


2. 마음닦이 : 마음을 닦아 마음닦이입니다. 마음을 돌봐 마음돌봄입니다. 마음을 가꿔 마음가꿈입니다. 마음을 빛내기에 마음빛냄입니다. 내 삶과 내 말과 내 마음을 나란히 살린다면 마음살림입니다. 


3. 마음밭 : 마음밭에는 콩씨를 심을 수 있고 팥씨를 심을 수 있어요. 볍씨를 심든 보리씨를 심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씨를 심는다든지 믿음씨를 심을 수 있습니다. 책씨나 노래씨나 춤씨나 다 좋아요. 아름다이 여길 만하며, 온삶을 바칠 만한 씨앗 하나 보듬어 주셔요. 


4. 겨레얼 : ‘민족정신(民族精神)’이 아닙니다. 겨레얼이에요. 우리는 한겨레입니다. 한겨레는 ‘한겨레얼’입니다. 어느 때에는 한겨레넋이고 어느 때에는 한겨레삶이며 어느 자리에서는 한겨레꿈입니다. 


5. 속셈 : 속으로 셈을 하기에 속셈입니다. 셈을 하는 속이라서 셈속입니다. 꿈 같은 셈이라 꿈셈이고, 빛나는 셈이라서 빛셈입니다. 말을 셈하니 말셈입니다. 삶을 셈할 때에는 삶셈이고, 일을 셈하니 일셈이군요. 놀이하는 놀이셈, 노래하는 노래셈, 사랑하는 사랑셈, 아름다운 아름셈, 꽃다운 꽃셈입니다. 


6. 열린가슴 : ‘오픈 마인드(open mind)’가 아니어도 좋아요. 즐거울 때에는 ‘열린가슴’이고, 성날 때에는 ‘열린뚜껑’입니다. 


7. 겉치레 : 말치레를 하거나 글치레를 하거나 옷치레를 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오늘 우리들 살아가는 터전은 거의 돈치레이거나 아파트치레이거나 자가용치레입니다. 몸치레가 나쁜 일이 아니고 삶치레는 알맞게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치레나 믿음치레처럼 따사로우며 넉넉히 얼싸안는 치레가 아닌 겉치레가 너무 판칩니다. 속치레를 하고 마음치레를 하면서 넋치레와 얼치레를 하는 말사랑벗 푸른치레가 그립습니다. (4344.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