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책 : 안재구


.. 나는 언제나 신학기가 되어 새 책을 받으면 2∼3일 만에 모두 읽고 풀고 모르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 읽고 한 다음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책을 읽는 데 정신이 빠져 버렸다. 집에서 읽을 만한 책이 떨어지면 ‘끝에 할배’ 집에 가서 끝에 할배가 보는 책, 예를 들면 세계문학전집, 아르센 루팽 탐정소설 전집 등 읽을거리를 찾아서 읽고, 어머니나 고무가 읽는 조선 소설, 예컨대, 《단종애사》, 《금삼의 피》, 《군도》 등 역사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중학교 과정의 《산술》, 《대수》, 《기하》 책을 읽고 문제도 풀곤 했다. 특히 기하 문제는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풀었는데, 문제가 풀렸을 때는 하늘을 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다른 동무들이 내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하는 것을 못 봤으니 ‘공부는 하나도 안 하면서 시험만 치면 만점’이라 하며 모두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  《안재구-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돌베개,1997) 313쪽


 교과서를 읽을거리로 여긴다면 고작 하루조차 아닌 한두 시간이면 금세 읽어치울 만합니다. 그러나, 이 교과서들은 으레 한 해를 두고 읽으며 배우도록 되었고, 때에 따라서는 한 학기, 곧 여섯 달을 두고 살피며 배우도록 짜입니다. 아주 천천히 읽고, 한 시간 수업을 하면서 몇 쪽 넘기만 잘 읽는 셈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생각한다면, 교과서 한 권을 몇 달에 걸쳐 읽는 일이란 참 부질없습니다.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하기에 이렇게 오래도록 한 권만 붙잡아 읽으며 배워야 할까요. 학교를 다니는 우리들은 어느 한 가지 과목을 익힌다 할 때에, 기껏 이 교과서 하나만 살피면 그만인가요.

 학교를 다니며 배우는 시간을 헤아린다면, 학교에서는 날마다 책 예닐곱 권은 우습지 않게 읽어야 마땅합니다. 학교에서는 시간마다 책 한 권을 읽도록 이끈다는 매무새로 교사와 학생이 만나야 옳습니다. 교과서는 서너 쪽만 읽더라도, 교사가 학생하고 마주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 한 권이 될 만한 부피여야 합니다. 한 시간씩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이 한 시간에 걸쳐 책 하나, 또는 영화 하나 기쁘게 맞아들이며 나날이 한결 넓으며 깊은 삶터와 사람을 사귄다는 보람과 뿌듯함과 짜릿함을 아로새겨야 즐겁습니다.

 아침에 네 권, 낮에 세 권, 한 주 닷새에 서른다섯 권, 토요일에는 네 권, 일요일에 집에서 스스로 한 권 읽으라 한다면, 아이들은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열두 해에 걸쳐 ‘한 주 마흔 권 × 52 = 2080권’을 열두 차례 하는 셈이니, ‘2080 × 12 = 24960권’을 읽을 수 있다는 셈이요, 이만큼 책을 읽도록 이끄는 학교교육이 아닐 때에는 참다운 학교교육이라 하기 어려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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