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사랑말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는 읍내 장날에 맞추어 바깥마실을 합니다. 읍내 마실을 한다고 읍내 모든 곳을 두루두루 누비지는 않습니다. 읍내로 마실을 할 때면 새삼스레 보거나 느끼는 모습도 많아요.

 저번에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함께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성읍 끝자락에 자리한 ‘무지개 아파트’를 보았습니다. 시골 읍내에도 아파는 참 많으며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은데, 이 가운데 수수하며 시골스러운 이름이 붙는 곳이 더러 있어요. 시골 아파트라 하면 영어보다는 토박이말을 사랑할 듯하다고 여길 만할까요? 시골 아파트라 해서 토박이말을 잘 쓰지는 않아요. 되레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다 할 수 있어요. 도시 아파트라 해서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을까요? 외려 ‘개나리 아파트’라든지 ‘진달래 아파트’라는 이름을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아파트 이름으로 ‘무지개’나 ‘개나리’나 ‘진달래’를 쓰는 곳은 크기가 작아요. 영어나 갖가지 바깥말을 섞어서 쓰는 ‘xi’나 ‘來美安’ 같은 아파트들은 크기도 큽니다. 요사이는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또 얄궂게 이름을 붙이는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에코라이프’니 ‘에코우먼’이니 ‘에코러브’라느니 ‘에코북’이라느니, 더구나 ‘에코북시티’라는 말까지 나돌아요.

 환경운동이란 자연 터전만 곱게 지키자는 흐름이 될 수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란 자연과 사람과 삶이 한결같이 아름다우면서 참답고 착하도록 이끄는 흐름이 되어야 올발라요. 그런데 ‘환경사랑’조차 아닌 ‘에코러브’라 하거나 ‘푸른환경’이 아닌 ‘그린에코’라 하거나 ‘환경책’이라 않고 ‘에코북’이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환경마을’이나 ‘환경사랑마을’에서 살 수는 없을는지요. ‘푸른마을’이나 ‘푸른책마을’이나 ‘푸른꿈책마을’이나 ‘푸른사랑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綠色’은 일본 빛이름입니다. ‘草綠’은 중국 빛이름이에요. 한국 빛이름은 ‘푸름’이나 ‘풀빛’입니다. ‘綠色’이란 ‘풀(綠) + 빛(色)’이고, ‘草綠’이란 ‘풀(草) + 푸름(綠)’이에요.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이 터전과 이 겨레를 사랑하면서 벌일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참다이 한겨레 삶터에 걸맞게 어깨동무하는 일마당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다워요. 삶과 터와 사람과 사랑과 말과 글을 한동아리로 살필 수 있어야 슬기롭습니다.

 참다운 살림집이란 사랑스러운 살림집이라고 생각해요. 착한 환경운동이란 믿음직한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고운 말글이란 따스한 말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만 예쁘장하게 꾸밀 노릇이 아니라, 우리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가운데 말과 글 또한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껴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 스스로 내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결을 고스란히 환경운동으로 옮기고 책읽기로 옮기며 공부와 살림살이로 옮겨야 한다고 느껴요.

 두 가지 사랑말을 곱씹어 봅니다.


1. 책사랑 : 저는 책을 만들거나 쓰거나 읽는 일을 해요. 좋은 짝꿍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어여쁜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해 온 일은 책마을 책손으로 지내다가 책마을 일꾼이 되며 책을 만지는 일이에요. 저로서는 ‘책사랑’이라는 낱말을 퍽 예전부터 즐겨썼습니다. 저한테는 책사랑일 텐데, 아마 말사랑벗한테는 영화사랑이나 그림사랑이나 사진사랑이 될 수 있어요. 게임사랑이라든지 농구사랑이나 야구사랑이나 배구사랑이 될 수 있겠지요. 탁구사랑이나 수영사랑이 될 수 있고, 가야금사랑이나 기타사랑이 될 수 있어요. 노래사랑이나 춤사랑도 있습니다. 연극사랑이나 손말사랑이 있어요. 하느님사랑이나 부처님사랑이 있을 테고, 교회사랑이나 학교사랑도 있겠지요. 동무사랑이나 스승사랑이 있고, 동네사랑이랑 마을사랑이 있어요. 걷기사랑이나 자전거사랑이 있을 테며, 여행사랑이라든지 빨래사랑이라든지 있을 테지요. 말사랑벗한테는 어떤 사랑이 가장 애틋한가요. 말사랑벗이 가장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외국어사랑을 할 만하고, 누군가는 역사사랑을 할 만합니다. 철학사랑이나 과학사랑을 해 볼 만합니다. 문학사랑이나 로봇사랑도 좋아요. 엄마사랑 아빠사랑 누나사랑 언니사랑 동생사랑 오빠사랑 모두 좋고요. 사랑을 하기에 ‘사랑’을 한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어쩌면 말사랑벗 가운데에는 이름 두 글자가 ‘사랑’인 벗이 있겠네요. 최사랑이나 송사랑이나 김사랑이나 박사랑이나 전사랑이나 이사랑이나 고사랑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이름은 어릴 적에도 예쁘고 푸름이일 때에도 예쁘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어도 예쁘다고 느낍니다. 듣는 사람부터 즐겁고, 말하는 사람 또한 기뻐요. ‘사랑’ 두 글자를 혀에 얹어 살며시 내보낼 때에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서린다고 할까요. 저는 책사랑을 하는 가운데, 헌책방사랑을 함께 합니다. 그래서 헌책사랑이라는 말도 쓰고, 한동안 〈헌책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조그맣게 소식지를 낸 적 있어요. 마땅한 노릇일 테지만, 〈우리말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식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짝꿍사랑인 사람사랑을 하고, 우리 집 두 아이를 아끼는 아이사랑을 합니다. 이와 함께 저와 옆지기를 낳아 길러 주신 어버이를 헤아리는 어버이사랑을 해야지요. 제가 뿌리내리며 지내려는 시골마을을 아끼는 시골사랑과 멧골사랑을 할 생각이며, 땅사랑 흙사랑 텃밭사랑 고구마사랑 감자사랑 나락사랑 배추사랑 무사랑도 하면서 살아야지요. 집식구들 함께 끓여 먹을 동태찌개를 앞에 둔다면 찌개사랑이 될 테고, 그러고 보니 날마다 밥사랑을 하는군요. 설거지사랑도 하고 걸레사랑도 하며 기저귀사랑도 합니다. 아, 이곳저곳 둘러보고 돌아보노라면 온통 사랑이네요. 버스를 타면 버스사랑이고 기차를 타면 기차사랑입니다. 이웃을 마주하면 이웃사랑이요, 제주섬 마실을 하면 제주사랑이며 섬사랑인데,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 인천사랑이자 골목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일이란 없고, 사랑 없이 이룰 일이란 없어요. 이처럼 내 삶이 온통 사랑인 가운데 말사랑을 하고 글사랑을 합니다. 이야기사랑을 꽃피웁니다. 


2. 사랑편지 : 일본사람이 빚은 예쁜 영화에 붙은 이름은 ‘Love Letter’입니다. ‘러브레터’조차 아닌 ‘Love Letter’입니다. 일본사람은 한국사람 저리 가라 할 만큼 영어를 사랑합니다. 아마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라부레또’라 했겠지요. 그나저나 이 일본사람 영화를 한국사람이 즐기도록 들여오면서 ‘Love Letter’라는 이름을 고스란히 살렸고, 한글로 적어도 ‘러브레터’일 뿐입니다. 우리말로 알맞게 ‘사랑편지’라 적바림하지 않아요. 그래도 요사이에는 ‘사랑편지’라는 낱말을 그럭저럭 쓰기는 쓴다는데, ‘러브레터’라는 낱말처럼 두루 사랑받으면서 쓴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러브레터’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무언가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눈다고 여기지, ‘사랑편지’라는 이름으로는 썩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못하는가 봐요. 참말로, ‘사랑소설’이라는 이름조차 없이 ‘연애소설’입니다. ‘사랑영화’나 ‘사랑연속극’이라는 이름은 없고 ‘멜로물’이나 ‘애정영화’입니다. ‘사랑노래’는 낡고 ‘러브송’은 싱그러운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해요”는 시답잖고 “알러뷰 코리아”는 귀여운지 알쏭달쏭합니다. ‘사랑라디오’는 고리타분하기에 ‘러브 에프엠’이라는 이름이 붙는지 아리송해요. 왜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며 살아가나요. 왜들 이렇게 나부터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오순도순 나누지 못하며 지내는가요. 이 나라가 사랑나라로 거듭나고, 이 누리를 사랑누리로 추스르며, 이 터를 사랑터로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사랑글을 쓰고, 사랑글을 엮어 사랑책을 내놓으며, 사랑책으로 사랑넋과 사랑얼을 함께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제 조그마한 사랑꿈과 사랑빛을 담아 사랑편지 몇 줄 적바림합니다. (4343.12.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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