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7.9. 서울 낙성대역 앞 헌책방 <흙서점>에서.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는 한 사람
지난 2010년 7월 9일에 서울 낙성대역 앞에 있는 헌책방 〈흙서점〉을 찾아가서 찍은 사진을 2010년 12월에 이르러 비로소 스캐너로 긁었다. 이 필름을 스캐너로 긁은 지 한 달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본다. 오늘 2011년 1월 23일 아침에 긁은 필름 가운데에는 2010년 6월이나 7월 것이 있고, 아직 안 긁은 필름 가운데에는 2009년 것조차 있다. 스캐너로 필름을 긁자면 품과 겨를을 꽤 많이 쏟아야 한다. 필름 한 장을 긁는 데에 2∼3분은 넉넉히 걸린다. 필름 여섯 장을 걸어 놓으면 15분쯤은 지난다. 아침나절 밥물을 안치기 앞서 필름을 걸고, 찌개를 끓이며 새 필름으로 갈며, 찌개 간을 보면서 다시 필름을 간다. 밥상을 차려 아이보고 밥상 앞에 앉으라 하며 또 필름을 갈고, 아이한테 바지런히 밥을 먹이면서 새로 필름을 간다. 필름 한 통을 긁자면 서른여섯 장이니까 한 시간 반은 넉넉히 걸린다. 필름 두 통을 긁자면 세 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필름을 긁자면 스캐너가 달구어져야 한다. 책 겉그림을 스무 장쯤 긁으면서 스캐너를 달군 다음, ‘필름 미리보기’를 세 번 하면서 ‘맛보기 긁기’를 해 주어야 비로소 필름을 긁을 만한 스캐너가 된다. 이러다 보니, 애써 찍은 필름이 쌓이고 또 쌓여도 제때에 필름을 긁지 못하기 일쑤이다. 하루하루 아이랑 복닥이는 삶을 보내면서, 아이하고 어울리느라 필름 긁기를 젖히고 만다.
오늘 아침, 모처럼 필름을 긁다가 우리 집 셈틀 바탕화면에 깔았던 사진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얼마 앞서 긁은 참 멋진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을 꽁쳐 두기만 하면, 아니 알듯 모를듯 지나쳐 버리기만 하면 얼마나 아까운 노릇인가 하고 거듭 생각한다.
아빠 따라 엄마도 헌책방마실을 하고, 아이도 헌책방마실을 한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아이를 귀여워 해 주면서 아이한테 마실거리 하나를 주셨다. 아이는 더운 여름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헌책방 골마루를 신나게 누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주신 마실거리를 입에 물며 싱긋빙긋 웃는다. 시골에서 서울로 마실하느라 꽤 고단하고 힘들었을 텐데, 요 작은 마실거리 하나로 모든 고단함을 털어냈을까. 아이는 아빠한테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좋은 모델이라기보다 좋은 아이요 벗이고 살붙이이다. 우리 아이가 참으로 좋은 우리 살붙이이기 때문에 아빠한테 어여쁘며 좋은 모습으로 사진 찍혀 준다고 느낀다. (4344.1.23.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