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우는 소리


 새벽 다섯 시 무렵부터 닭이 운다. 이오덕학교에서 치는 닭이 이맘때에 운다. 다섯 시 무렵부터 일곱 시 즈음까지 운다. 닭이 홰치며 내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 하루를 제대로 열자고 생각한다. 닭이 우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내 몸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조금 더 드러누우며 생각한다. 어제 하루 무슨 일을 했기에 이토록 몸이 고단할까. 일찌감치 일어나서 한창 글쓰기를 하다가 닭울음을 들었다면 가만히 헤아린다. 오늘은 닭울음을 들을 때까지 얼마나 내 삶을 내 글로 잘 여미었다 할 만할까.

 닭 우는 소리를 들었으니 글쓰기를 살짝 멈추어야 한다. 우리 식구 오늘 아침 먹을 쌀을 씻어서 불려야 한다. 쌀을 불리고 두 시간쯤 뒤에 불을 넣어야지. 밥냄비에 불을 넣은 다음 밥상을 어떻게 차리나 살피고,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를 생각해야지. 닭이 울기 앞서까지 내 일을 마치지 못하면 내 일만 붙잡느라 집살림은 밀어놓는 셈이요, 닭이 울 때까지 잠든 채 못 일어난다면 하루는 그야말로 어수선 어지럼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닭울음을 들은 적이 없다. 닭울음을 들을 길이 없다. 어느 누구도 닭울음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느끼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시계를 맞추어 놓은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에 마음속으로 ‘그무렵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일어난다. 잠자리에 들 때에 몇 시 즈음에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잠들면, 언제나 이무렵이나 이보다 조금 일찍 눈을 뜬다. 시계에 기대 버릇하면 언제까지나 시계에 매인다. 달력에 기대어 날짜를 헤아리면 노상 달력에 붙들린다.

 바람이 흐르는 날씨를 살필 때에 내 몸은 나 스스로 다스린다. 흙에 서린 기운을 읽을 때에 내 마음은 내 손길로 어루만진다.

 쥐어짜는 지식으로 쥐어짠 책은 달갑지 않다. 지식을 제아무리 꾹꾹 쥐어짠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나오겠는가. 지식을 쥐어짜서 얻을까 말까 알쏭달쏭한 기름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

 책이란, 쥐어짜는 지식으로는 일굴 수 없을 뿐더러, 쥐어짜는 지식으로 엮어서는 안 된다. 책이란, 부드럽거나 따사롭거나 넉넉하거나 사랑스러운 내 삶으로 하나하나 일구어야 한다. 책이란, 내 사랑과 믿음을 고루 섞거나 가지런히 차려 놓듯 내놓아야 한다.

 글쓴이 삶을 읽자는 책이지, 글쓴이 머리속에 가득 찬 지식을 읽자는 책이 아니다. 글쓴이 삶을 나누자는 사진이지, 글쓴이 머리통에 꽉 들어찬 지식을 구경하자는 사진이 아니다. 삶에는 뜻이 있으며 길이 있다. 삶을 보면 저절로 뜻이나 길을 느끼면서 받아들인다. 애써 뜻을 내세운다든지 길을 크게 부풀리지 않아도 된다. 꾸밈없이 글쓴이 삶이나 사진쟁이 삶을 적바림하면 된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시에서만 살지 않으면 좋겠다. 정 도시에서 살아야겠다면, 몸은 도시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시골사람이라면 좋겠다. 살림집은 도시에 있을지라도 마음밭은 멧골이나 바다나 하늘을 노닐면서 홀가분하다면 좋겠다. 착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참된 넋으로 글을 손질하며, 고운 매무새로 글을 나누면 좋겠다. 책에 담는 글이란, 내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와 같다. (4344.1.16.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