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가 흙 똥을 누었어 자연과 만나요 3
이성실 글, 이태수 그림, 나영은 감수 / 다섯수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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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한테 ‘어떤 책’ 선물을 할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 이태수·이성실,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다섯수레,2009)



 그림책은 어른들이 어린이들한테 내어주는 빛깔 고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그림책으로 지식을 익히도록 한다든지, 그림책으로 성교육을 한다든지, 그림책으로 과학을 더 깊이 알도록 한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이 다루는 갈래는 자연도 있고 과학도 있으며 삶도 있거나 학교도 있는 가운데 성교육도 있을 테지만, 어떠한 갈래를 다루든, 그림책이란 아이들 마음을 따숩게 보듬는 이야기를 베풉니다. 아이들 마음을 따숩게 보듬는 이야기를 베풀지 못한다면 그림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판타지 그림책이라든지 옛이야기 그림책이라든지 자연 그림책이라든지 과학 그림책이라든지 철학 그림책이라든지, 갖은 이름을 붙이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아이들로서는 ‘그림책’이기만 합니다. 그림책은 그림책이지 ‘지식책’이나 ‘정보책’이나 ‘교육책’이 아닙니다. 어른들 또한 이런저런 갈래로 나누어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히려는 생각을 털어야 합니다. 그림책에 글을 넣든 그림을 넣든, 그림책을 쓰거나 엮는 분들은 아이들이 따뜻한 넋과 착한 얼과 보드라운 품을 아낄 수 있게끔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넉넉한 가슴과 참다운 마음과 싱그러운 눈빛을 사랑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사랑을 담는 책이 되어야 하는 그림책입니다. 믿음을 나누는 책이 되어야 하는 그림책입니다. 서로 좋아하면서 다 같이 즐길 그림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수하게 웃고 보배로이 울 수 있는 그림책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 지렁이는 땅속 농부야. 지렁이가 일구어 놓은 땅속에서 감자알이 실하게 여물어 가고 있어. 지렁이 똥은 스펀지 같아서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식물에게 물이 필요할 때 다시 내주어 잘 자라게 해 ..  (21쪽)


 ‘자연과 만나요’라는 이름으로 세 권째 나온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를 읽습니다. 첫 권은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2001)이고, 둘째 권은 《개미가 날아올랐어》(2002)입니다. 개구리와 개미와 지렁이 차례인데, 세 가지 목숨붙이는 우리 둘레에서 아주 흔하거나 너르‘던’ ‘흙’동무입니다.

 오늘날 한국 삶터에서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든 흔하거나 너른 흙동무가 되지 못합니다. 첫째, 도시에서는 개구리이건 개미이건 지렁이이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그나마 집에 ‘개미’들이 들어온다고도 하지만, 개미가 마음껏 살아가는 터전은 아닙니다. 거미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집에 개미가 있으면 꾹꾹 눌러 죽이거나 파리약을 칙칙칙 뿌리기만 하지요.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이든, 너른 땅에 흙이 소담스레 있어야 합니다. 흙이 없이는 개구리이든 개미이든 지렁이이든 살아가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 목숨붙이뿐 아니라, 어떠한 목숨붙이라도 흙이 있어야 삽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벌레이든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을 아끼지 않는다면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다이 살 수 없습니다. 흙을 밟거나 만지지 않으면서는 사람 목숨이 산 목숨이 아닙니다. 흙을 고이 여기면서 흙내음이 물씬 나면서 흙기운으로 밥을 차리며 일하지 않고서야 사람 넋이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울 수 없습니다.

 끔찍한 막공사라든지 막개발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치꾼 몇몇 사람이나 언론매체 몇 군데 때문이 아닙니다. 재벌회사 몇몇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꾐수를 부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흙하고 멀어진 채 돈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흙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조용하고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삶이라면, 그 어떤 막공사나 막개발이나 부정부패가 생길 수 없습니다. 동네에 커다란 할인마트가 들어서는 일을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동네 작은 가게를 즐겨 다니면 될 뿐입니다. 큰 할인마트에 안 가면 그만이에요. 몸에 나쁘지만 값이 싼 먹을거리를 안 먹으면 됩니다. 유행을 따지지 않고 상표를 가리지 않으면 됩니다. 시골 장터와 도시 저잣거리를 즐겨 다니면 됩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는 책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랑 내 넋을 보듬는 책이랑 내 눈길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책을 즐겁게 읽으면 돼요.


..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 그림을 그리면서 마당 곳곳에 지렁이 똥이 새삼스럽게 보였어요. 아침에 마당이 있는 조그만 텃밭을 둘러볼 때마다 새로운 지렁이똥이 소복소복 쌓여 있었어요 ..  (그린이 말/이태수)


 흙을 밟고 살아가니 지렁이똥을 만납니다. 지렁이똥만 만나겠습니까. 멧기슭에 고라니가 산다면 겨우내 먹을거리를 찾아 사람집 둘레에 내려와서 똥 질금질금 눌는지 모릅니다(이럴 일이야 드물겠지만). 고라니똥을 볼 수 있겠지요. 버섯을 딴다든지 이냥저냥 멧길을 거닐면 고라니똥을 마주할 수 있어요. 염소를 풀어 기른다면 곳곳에서 염소똥을 볼 만합니다. 멧자락 어느 한켠에는 멧토끼똥이 있을 테지요. 사람 눈으로는 보기 어렵지만, 틀림없이 개미도 똥을 눌 테고, 개구리이며 뱀이며 똥을 누겠지요. 모든 목숨붙이는 흙에서 먹이를 얻고 흙에서 잠자리를 마련하면서 흙으로 똥오줌을 돌려줍니다. 사람들도 흙과 함께 살아갈 때에는 흙밥을 헤아리고 흙똥을 곱씹습니다. 내 삶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고울까를 돌아보면서 흙기운을 가득 품고 흙넋을 예쁘게 끌어안습니다.

 그림책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는 앞서 나온 ‘자연과 만나요’ 두 권과 나란히 예쁘장한 그림책이기도 하지만, 앞서 나온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랑 《개미가 날아올랐어》랑 견주면 조금은 다른 결입니다. 한결 흙내음이 나는 그림책입니다. 이야기 결은 아직 ‘자연 지식 그림책’에 더 가깝지만, 차츰 ‘자연 이야기 그림책’으로 달라지면서, ‘자연 삶 그림책’으로 나아가겠다고 느낍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찬찬히 걸어가노라면, 어느 때부터인가는 ‘자연 지식’이든 ‘자연 삶’이든 모두 내려놓고 ‘그림책’ 하나로 빛나겠지요. 지식도 삶도 이야기도 흙과 같이 수수하면서 투박한 가운데 보들보들 스며나는 그림책으로 거듭나겠지요.


[2쪽] 굴을 파기 시작했어 → 굴을 파 / 굴을 파는구나
[5쪽] 피부로 숨을 쉬어서 → 살갗으로 숨을 쉬어서
[5쪽] 축축한 흙이 필요해 → 축축한 흙이 있어야 해
[6쪽] 지렁이는 스트레칭 선수야 → 지렁이는 쭉쭉이를 잘하지
[6쪽]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줘 →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줘
[6쪽] 둥근 마디로 이어져 있지 → 둥근 마디로 이어졌지
[13쪽] 하지만 걱정하지 마 →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13쪽] 새살이 돋아날 거야 → 새살이 돋아나니까 / 새살이 돋아나거든
[15쪽] 지렁이는 안전하지 못해 → 지렁이는 느긋하지 못해 / 지렁이는 걱정스러워
[17쪽] 지렁이 똥이 쌓여 있어 → 지렁이 똥이 쌓였어
[21쪽] 감자알이 실하게 여물어 가고 있어 → 감자알이 알차게 여물어
[21쪽] 지렁이 똥은 스펀지 같아서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 지렁이 똥은 비가 올 때 물을 머금었다가
[21쪽] 식물에게 물이 필요할 때 → 푸나무가 물을 바랄 때
[22쪽] 더 깊이 굴을 파고 겨울을 준비해 → 더 깊이 굴을 파고 겨울을 맞이해
[24족] 농부가 쟁기질을 시작했어 → 농부가 쟁기질을 해
[24쪽] 흙을 뒤엎기 시작했나 봐 → 흙을 뒤엎는가 봐 / 이제 막 흙을 뒤엎는가 봐



 살가우며 구수하게 자연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를 읽으며 여러 군데 손질할 곳을 살핍니다. 이 그림책은 여느 어른도 함께 읽을 만하지만, 누구보다 어린이 스스로 읽으며 즐기도록 마련한 책인 만큼, 몸글에서 고쳐야 할 대목을 열여섯 군데만 짚어 봅니다. 다른 어린이책에서도 이 대목을 어렵잖이 보는데,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들은 ‘어린이 말’과 ‘어린이가 배울 말’과 ‘어린이가 쓸 말’을 한결 깊이 살펴 주면 고맙겠습니다. 이래저래 흔히 쓰는 한자말이건 여러모로 익숙하게 쓰는 말투이건, 다듬거나 손질해야 한다면 다듬거나 손질해야 합니다.

 “-하기 始作했어”나 “-이 必要해”는 한자 말투이기 앞서 일본 말투입니다. “-ㄹ 거야”처럼 ‘것’을 함부로 넣으면 우리 말투가 아닙니다. 우리 말투는 ‘그렇지만(그러하지만)’이지 ‘하지만’이 아니에요. 겨우나기란 겨울을 맞이하는 일이기에 “겨울을 준비해”라 해도 틀리지 않으나, 아이들 삶과 말을 헤아린다면 “겨울을 맞이해”로 적바림해야 알맞습니다. 감자알이든 씨알이든 굵거나 알차게 여뭅니다. 축구나 농구에서는 ‘도움주기’라는 낱말을 쓰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다”가 아니라 “도와주다”가 제대로 적는 우리 말입니다. ‘스트레칭’이나 ‘스펀지’ 같은 말마디야 흔히 쓰기는 하지만, 지렁이와 흙을 이야기하는 삶하고는 영 걸맞지 않습니다. 이런 말마디는 굳이 안 써도 되며, 글과 이야기에 소롯이 녹아나도록 풀어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어린이를 생각하는 그림책에는 그림부터 살가이 담아야 하고, 글 또한 살가이 여미어야 합니다. 말끝을 입말 투로 맞추는 데에 마음을 쓰는 일도 훌륭하지만, 입말 투 아닌 글말 투라 하더라도 옳고 바르며 참답다 할 우리 말투를 살릴 때에 비로소 글맛을 즐깁니다. (4344.1.13.물.ㅎㄲㅅㄱ)


― 지렁이가 흙똥을 누었어 (이태수 그림,이성실 글,다섯수레 펴냄,2009.3.2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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