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글쓰기


 앞에 메는 가방에 넣는 작은 수첩이 있다. 어디를 다니든 이것저것 끄적이는 수첩으로 삼는다. 돈을 얼마나 썼는가를 적기도 하고, 만난 사람하고 나눈 이야기를 쓰기도 하며, 그때그때 느낀 여러 가지를 적바림하기도 한다.

 빈 공책 두 벌을 마련한다. 빈 공책 하나에는 사진일기를 쓰기로 하고, 다른 하나에는 책일기를 쓰기로 한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아빠가 셈틀 앞에 너무 오래 매달리는 일은 좋지 않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아이랑 부대끼느라 셈틀 앞에 앉아 글쓰기를 할 겨를도 얼마 안 되지만, 셈틀 앞에 앉는 겨를을 더 줄여, 아이 옆에 나란히 앉거나 엎드려서 내 공책에 내 삶을 적으려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아빠 곁에서 놀거나 아빠를 따라 빈 종이나 달력이나 그림종이에 이것저것 그리겠지.

 종이에 글을 천천히 적는다. 셈틀로 적바림하는 글은 한글을 알면 누구나 읽는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없는 셈틀 글이다. 종이로 적는 글은 한글을 안달지라도 삐뚤빼뚤 쓰면 누구도 읽기 힘들다. 천천히 쓰되 또박또박 써야 하고, 바삐 쓴달지라도 꾹꾹 눌러 가면서 써야 한다. 종이에 쓰는 만큼 더 쓰고 싶어도 팔과 팔뚝과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거나 저려 더 못 쓰곤 한다. 아이랑 놀거나 밥을 하거나 아이 오줌을 누이거나 하면서 쓰다가 쉰 다음 다시 써야 하기 일쑤인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괜찮다. 셈틀로 글을 쓸 때에는 애먼 전기를 먹으며 내내 켜 놓아야 한다.

 셈틀로 써서 셈틀로 읽는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에 찍어 나오는 종이책을 바란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종이책이 될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내가 쓰는 이야기를 책으로 묶을 때에는 전자책 아닌 종이책으로 묶고 싶다. 아주 많은 사람한테 읽혀야 하지는 않다. 꼭 알맞게 읽어 꼭 알맞게 잘 살아가는 길동무로 삼으면 즐겁다. 종이에 적바림하는 글은 나 혼자 읽을는지 모르고, 옆지기가 읽어 줄는지 모르며, 나중에 아이가 읽어 줄 수 있겠지. (4344.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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