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와 연필 쥔 예쁜 이웃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14] 《山に生かされた日日》(民族文化映像硏究所,1984)



 삶도 사람도 온누리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집니다. 날마다 새로운 물건이 쏟아지고 새로운 소식이 퍼지며 새로운 기계가 태어납니다. 새로운 물건이 쏟아지면서 얼마 되지 않은 물건마저 낡거나 뒤떨어지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삼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퍼지며 지난날 소식은 파묻힙니다. 지난날 소식이 너무 많다 보니, 소식더미에서 허우적거릴 뿐, 무엇을 귀담아듣고 무엇을 눈여겨보며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잊습니다. 새로운 기계가 자꾸 태어나는 가운데, 나 스스로 내 손과 몸과 마음을 기울여 가다듬는 일거리가 스러집니다.

 제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는 캐논 회사에서 만든 450디입니다. 지난 2010년 여름에 이 사진기가 스스로 목숨을 다해 더는 쓸 수 없어 550디를 장만해 보았는데, 새 사진기는 온갖 솜씨를 더 부릴 만한 기계였으나 제 눈결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되팔았습니다. 망가진 450디를 목돈 들여 고쳐서 다시 씁니다. 어쩌면 2011년 여름에 다시금 덜컥덜컥거려 또 고쳐야 할는지 모르고, 2012년 여름에는 그예 맛이 갈는지 모릅니다. 필름을 쓰는 사진기는 잘 안 망가진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살살 건사하더라도 오래도록 쓰다 보면 자잘히 낡고 닳아 못 쓰기 마련입니다. 필름사진기 한 대가 스스로 목숨을 다해 사진벗한테서 하나 얻어 쓰는데, 이 녀석이 목숨을 다할 때에 고칠 수 있는 가게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새로운 장비와 새로운 솜씨가 나타나면서 새롭게 사진을 찍거나 새롭게 사진이야기 일구는 사람 또한 많이 나타납니다. 바야흐로 사진예술이 흐드러지게 꽃핀다고 느낍니다. 이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온누리이다 보니, 나라나 지자체에서 큰돈 들여 ‘지역 생활문화유산 기록 사업’을 곧잘 벌이곤 합니다. 현대 도시 물질문명하고 적잖이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과 동영상과 글로 적바림하는 일을 퍽 자주 봅니다.

 이를테면 소한테 쟁기를 얹혀 논갈이를 하는 농사꾼 삶이라든지, 그물로 고기잡이하는 사람들 삶이라든지, 멧골에서 나물을 캐는 멧사람 삶이라든지, 바다에서 물질하는 사람들 삶이라든지, 나무를 깎고 다듬어 집짓는 사람 삶이라든지, 우리 악기나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 삶이라든지 찾아다니고 살펴보며 적바림하곤 합니다. 글을 쓰는 분은 으레 대학교수나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이나 조교나 강사입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냥 사진기 쥔 대학교수나 대학생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마을사람 삶을 담는 일은 드뭅니다. 아주 드물게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는 ‘마을 이야기책’을 엮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뺀 이 나라 어느 곳에서도 마을사람 스스로 ‘우리 이야기가 참 보배롭지.’ 하고 여기며 적바림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스스로 적바림할 겨를이 없습니다.

 마을사람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은 언제나 ‘마을 바깥’에서 살아가며 ‘마을 구경’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을에서 일거리를 찾아 마을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며 스스로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인문학 지식이나 인류학 지식은 빈틈없을 뿐더러 ‘마을 이야기책 엮는 솜씨’라든지 ‘사진기 다루는 재주’는 빼어납니다. 글과 사진은 뛰어납니다. 글과 사진은 훌륭하거나 뜻있다 할 만합니다. 다만, 글이든 사진이든 사랑스럽다거나 살갑다거나 따스하다거나 너그럽다거나 포근하다거나 즐겁다거나 애틋하다거나 좋다거나 하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딸아이 키우는 어버이가 딸아이를 찍는 사진보다 둘레 사람이나 사진관 사람이 딸아이를 찍는 사진이 한결 ‘객관’이지 않겠느냐고. 내 어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딸아들이 찍을 때보다 낯선 사람이 찍을 때에 ‘객관’을 지키지 않겠느냐고. 인간문화재를 담을 때에 제자가 사진으로 담을 때랑 전문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담을 때랑 사진기자가 사진으로 담을 때랑 견주면 전문 사진쟁이나 사진기자가 ‘객관’ 테두리에서 찍지 않겠느냐고.

 일본 사진책 《山に生かされた日日》를 봅니다. “新潟縣朝日村奧三面の生活誌”라는 이름이 붙은 ‘민속문화 생활기록’이라 할 만한 책입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장만한 《山に生かされた日日》은 1984년에 1쇄를 찍고 1996년에 3쇄를 찍습니다. 열두 해 만에 3쇄라니 참 더디 팔리는 책일 텐데, 어찌 되었든 깊은 멧골 조그마한 마을사람 이야기책이 3쇄를 찍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멧마을 사람들 삶이야기를 담은 책이 이렇게 사랑받은 적이 없을 뿐더러, 앞으로도 이처럼 사랑받기는 힘들다고 느낍니다. 하나같이 도시로만 몰리고 도시 살림만 헤아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민속문화 생활기록’을 왜 하고 어떻게 하며 누가 하는가를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 찍은 사진을 담아야 잘 엮은 사진책이 아닙니다. 잘 쓴 글을 실어야 잘 빚은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어깨동무하는 삶으로 사진을 담아야 하고, 너나들이 같은 이웃이 되어 글을 실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예쁘장하게 찍은 딸아이 사진이라 한들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초점 어긋나고 흔들린데다가 빛조차 안 맞았을지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가 따사로운 넋과 손길’로 찍은 사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山に生かされた日日》에 실린 사진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따스합니다. 좋습니다. 즐겁습니다. 머나먼 도시에서 학자님들이 ‘행차’해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 머나먼 도시에서 찾아온 학자님들일지라도 마을사람하고 고이 어우러지면서 저절로 얻은 사진으로 책을 일구었습니다.

 지역문화를 살피든 민속문화를 톺아보든 생활문화를 파헤치든 전통문화를 다루든, 학자나 교수나 학생 된 사람은 ‘사진기를 쥔 예쁜 이웃’으로 마주서야 합니다. ‘연필을 쥔 고운 동무’로 어깨동무해야 합니다. ‘사진기와 연필을 때때로 내려놓고 함께 호미를 쥐는 살붙이’로 두레를 하고, ‘술잔과 수저를 함께 드는 마을지기’로 웃고 울어야 합니다. (4344.1.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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