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삶, 사람, 사랑, 사진
 ― 사진이 태어나는 밑뿌리



 제주섬에 가면 꼭 가 보아야 할 만한 곳으로 여러 군데를 들곤 합니다. 이 가운데 으레 손꼽는 자리인 하나, 누구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거치는 자리는 두모악갤러리입니다.

 두모악갤러리를 찾아가 보면, 제주섬 오름을 담은 김영갑 님 사진이 예쁘게 걸린 채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김영갑 님이 당신 사진을 그러모아 선보인 마지막 터전이 이곳 두모악갤러리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13일, 둘째를 밴 옆지기하고 스물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딸아이랑 함께 제주섬 마실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주섬을 찾아가며 올레길을 걷는다든지 바닷가를 거닌다든지 한라산을 탄다든지 합니다. 자가용을 빌려 이곳저곳 쏘다니기도 하겠지요.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빌릴 돈이 없으며 자가용을 몰 면허증이 없습니다. 그래도 용케 차를 태워 주는 분이 있어 두모악갤러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김영갑 님 사진책 《마라도》가 새판으로 다시 나왔기에 즐겁게 장만합니다.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와 비닐을 뜯어 책을 펼치니, 앞머리에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님 추천글이 달립니다. 신수진 님은 김영갑 님 사진책을 보며 “김영갑의 신작 아닌 신작, 마라도에선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적습니다.

 사진을 찬찬히 살핍니다. 지난날 눈빛출판사에서 나온 《마라도》에서 본 사진이지만, 새판으로 볼 때에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판짜임과 엮음새가 다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김영갑 님 예전 사진책이든 새 사진책이든 사진은 똑같습니다. 김영갑 님 사진이 베푸는 선물은 매한가지입니다. 제주섬을 사랑하고 사진을 아끼며 삶을 즐기는 가운데 사람을 얼싸안는 따스함은 한결같습니다.

 우리 식구도 제주마실을 하면서 바다를 보기는 했으나, 막상 우리가 거닌 길은 올레길이 아닌 제주섬 골목길이었고, 제주시 이도1동에 자리한 헌책방 〈책밭서점〉에 오래 머물었습니다. 찬바람이 꽤 불어 골목길 마실은 얼마 못했는데, 따순바람이 불 때에 네 식구가 다시금 찾아가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거닐며, 올레길이 아닌 여느 시골마을 고샅길을 걷고 싶습니다.

 우리 식구는 어디를 다니든 관광이 아닌 마실이고, 놀러가기가 아닌 나들이입니다. 뜻밖에 우리 식구가 제법 돈을 번다면 일본마실까지 다닐는지 모르는데, 우리 식구들이 일본마실을 한다면 어김없이 일본 헌책방거리와 골목길을 거닐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만 다니면 지루한 만큼, 일본 시골자락을 찾아 고샅길을 함께 거닐어야지요. 우리 식구는 따스한 사람과 포근한 삶과 너그러운 사랑과 싱그러운 사진을 좋아하거든요.

 새로운 사진책 《마라도》에 붙은 추천글을 읽을 다른 분들은 무엇을 느낄까 설핏 궁금하지만, 참말로 사람들은 김영갑 님 사진을 들여다볼 때에 “작가의 시선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느낄까 싶어 알쏭달쏭합니다. 왜냐하면, 김영갑 님 사진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우리한테 어떤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며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님 스스로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매무새를 사랑하는 사진으로 담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리누르지(압도) 않습니다. 사랑은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쭐거리거나 뽐내지 않아요. 사랑은 살가이 껴안습니다. 사랑은 촉촉히 젖어드는 눈물과 해맑게 빛나는 웃음으로 애틋합니다.

 흔히들 김기찬 님이 일군 《골목 안 풍경》이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라 일컫지만, 김기찬 님이 내놓은 사진책 《골목 안 풍경》은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풍경으로 담은’ 분입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꾸밈없이 담은 사진이 차곡차곡 모여 《골목 안 풍경》이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골목길 모습 가운데 하나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골목길을 이루는 숱한 모습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골목사람이 골목길 모든 모습이 될 수 없고, 되지 않으며, 될 까닭이 없어요. 그렇다고 골목집 담벼락이나 우체통이나 문패나 꽃그릇이 골목길 모든 모습이 되지 않아요.

 사진을 읽으려면 옳게 읽어야 하고,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려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며, 사진을 사랑하거나 아끼려면 ‘사진’을 참다이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 느껴요. 배병우 님 사진을 놓고 ‘소나무’를 찍은 사진이라 하지만, 배병우 님 사진 또한 ‘소나무를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소나무숲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찍은 사진’이 배병우 님 사진입니다. 우리들은 사진쟁이 한 분이 어떠한 이야기를 어떠한 사진틀에 담아 어떠한 삶자락을 보여주려 하는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알뜰살뜰 가슴으로 받아들여야지 싶습니다. 사진읽기를 알맞게 하면서 삶읽기를 살가이 하고, 사람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터에서 어떠한 문화꽃과 예술나무가 자라는가를 느껴야지 싶습니다. 비평을 하는 사진이나 소장을 하는 사진이나 전시를 하는 사진이나 보도를 하는 사진이 아닐 테니까요. 내 사랑하는 삶을 보여주는 사진이고, 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사진이며, 내 사랑하는 꿈을 꿈을 빛그림으로 아로새기는 사진일 테니까요.

 살아가기에 사진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살아가기에 사진에 깃든 이야기를 읽습니다. 나 스스로 사람인 까닭에 사람을 찍는다 하지만, 사람 몸이나 얼굴을 찍지 않더라도 사람 내음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이룹니다. 지팡이나 도마나 옷깃이나 장갑이나 굳은살이나 밥그릇을 찍는 사진으로도 사람을 얼마든지 이야기합니다. 사랑하기에 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담기도 하는 사진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사진에 담아 둘레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나누기도 합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입니다. 사진이란 다른 무엇보다 이 세 가지를 밑바탕으로 단단하고 참다우며 착하게 다스린 다음에 일구는 문화꽃입니다. 사진이란 바로 이 세 가지를 언제나 곁에 놓으면서 예쁘고 따스하며 넉넉히 아우르는 가운데 이루는 예술나무입니다.

 신문사 기자가 되었기에 보도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학과 교수가 되었다 해서 사진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갤러리를 열었다고 사진문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사진잔치를 마련한 작가라 하더라도 사진예술을 꽃피우지 않습니다. 마음과 꿈과 눈물과 웃음과 땀방울이 알알이 영그는 삶·사람·사랑이 만나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납니다. (4344.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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