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리말 생각 ㉢ 말이랑 글이랑


 말사랑벗들은 말과 글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말은 무엇이고 글은 무엇인지 가를 수 있는가요.

 ‘한글’은 글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우리말’은 말을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한글’과 맞물려 ‘한말’이라는 낱말도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말사랑벗들은 들어 본 적 있나요?

 말과 글이 다르니 마땅히 이처럼 이야기할 만해요. 이제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한자를 드러내어 쓰는 일이 없어요. 몇몇 신문사는 종이로 찍혀 나오는 신문에 적는 이름에만 한자를 쓸 뿐, 이제는 99.999% ‘한글만 쓰기’를 하는 이 나라 이 겨레예요. 2%가 아닌 0.001%가 모자라 ‘말과 글이 하나되지’는 못했으나, 2011년을 놓고 보면 거의 빈틈없이 말이랑 글이랑 하나로 모두었답니다.

 말이랑 글이랑 따로 놀던 지난날, 앞서 말했듯이 조선 나라일 때부터 일본한테 짓눌리던 때까지는, 사람들이 입으로 하던 말하고 종이에 적던 글하고 동떨어졌어요. 입으로 나누는 말은 지식인하고든 장사꾼하고든 농사꾼하고든 공장 일꾼하고든 생각을 주고받는 이야기였지만, 종이에 적는 글은 지식인끼리만 주고받는 이야기였어요. 이 때문에 ‘한자 섞어쓰기’가 끊임없이 말썽거리가 되지요. 왜냐하면, 한자를 잘 알거나 한자 지식이 많은 사람한테는 한자를 섞어서 쓰든 안 쓰든 아랑곳할 일이 아니에요. 그러나, 한자 지식이 많은데 이 한자 지식을 뽐낼 수 없으면 아깝다 생각하겠지요. 누구나 손쉽게 쓰는 말로 글을 적는다면, 지식 권위와 권력이 흔들릴 테고요.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학생 논문이나 학문책은 죄다 어려운 한자말에다가 영어로 뒤범벅이랍니다. 지식 권력 울타리를 높여야 밥그릇을 지키거든요.

 말사랑벗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말사랑벗들 할머니나 할아버지, 또는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이모나 이모부, 또는 고모나 고모부가 ‘학교 문턱을 밟아 보지 못한 분’이라 할 때랑 ‘대학교에 대학원에 유학까지 거친 분’이라 할 때랑, 말사랑벗들이 쓰는 말이 어떠한가요. 일곱 살짜리 동생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나하고 나이가 같은 동무랑 이야기를 섞을 때, 나보다 두어 살쯤 위인 언니 오빠 형 누나랑 이야기를 즐길 때에는 어떠한 말을 쓰나요.

 저는 “언어구사능력”이라든지 “많은 버림이 필요하다”라든지 “악취는 가히 살인적”이라든지 “병역의 의무를 시작했다”라든지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이라든지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라든지 “세세한 관찰이 이루어져야”라든지 “동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각적 파노라마로 존재한다”라든지 “차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라든지 “우아한 얘기가 난무한다”라든지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같은 말마디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이런 말마디를 읊는 어른들은 당신 어머니한테도, 당신 아이한테도, 당신 술동무한테도 이런 말마디를 읊으려나요. 우리 말사랑벗들까지 이런 말마디를 읊는다면 얼마나 슬프며 끔찍할까요.

 “말솜씨”라든지 “많이 버려야 한다”라든지 “냄새가 코를 찌른다”라든지 “군대에 들어갔다”라든지 “어떻게 쓸까”라든지 “몹시 고맙다고 말하다”라든지 “찬찬히 살펴보았다”라든지 “동네는 이야기가 넓게 펼쳐지는 곳이다”라든지 “바야흐로 차를 만든다”라든지 “아름다운 얘기가 쏟아진다”라든지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테고, 이렇게도 말할 줄 알 텐데요.

 예부터 말을 적을 뜻에서 글을 만들었고, 우리가 쓰는 ‘한글’이란 ‘우리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을 담는 한글이 아니라, 조선 나라일 때 나랏님부터 지식인이 쓰던 중국 한문에다가, 일본이 이 나라를 짓눌렀을 때에 스며든 일본 한자말이랑 일본 말투가 뒤섞이고, 여기에 영어가 잔뜩 넘나듭니다. 우리는 말이랑 글을 차분하게 가누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는 셈이고, 여태까지 우리가 쓰는 말이랑 글을 알뜰살뜰 가누는 나날을 맞이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말이란 말재주가 아니라,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곱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글이란 글솜씨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는 어제오늘을 예쁘게 나누는 이야기예요. 입으로 읊어 말이고, 손으로 적어 글입니다. 말을 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합니다. 말과 글은 동떨어진 두 가지가 아니에요. 입으로 하는 말과 손으로 쓰는 글은 다르지 않습니다. 입으로 말할 때처럼 손으로 글을 써야 아름답고, 손으로 글을 쓰듯 입으로 말할 때에 어여뻐요.

 예부터 말과 글이 하나로 되어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학교에서 국어 수업 때 들었을는지 모르는데, 한문으로 ‘言文一致’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어요. 지난날 지식인한테는 ‘言文一致’인데, 우리 말사랑벗님한테는 ‘말글하나’예요.

 그런데 말글하나란 무엇일까요? 입으로 하는 말과 손으로 쓰는 글이 똑같으면 그만일까요?

 말글하나가 되려면, 먼저 내 말과 내 삶이 하나여야 합니다. 내가 말을 하듯이 내 삶을 꾸려야 말글하나예요. 내가 글을 쓰듯이 내 삶을 일구어야 말글하나입니다.

 나 스스로 몸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을 말로만 들먹이면 말글하나가 아니에요. 내 말투가 제아무리 예쁘장하거나 빈틈이 없거나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를 잘 맞춘달지라도, 내가 하는 말대로 내가 살아내지 못하면 거짓이랍니다. 입으로는 착한 말을 하면서 정작 착하게 살지 못한다면 거짓이에요. 그런데, 설마, 입으로 나쁜 말을 하며 부러 나쁜 짓을 하지는 않겠지요? 나쁜 말과 나쁜 짓으로 말글하나가 되려는 말사랑벗님이 있으려나요.

 나쁜 말과 나쁜 짓으로 말글하나를 일삼는다면,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멍청이’라 하고, 이러한 삶을 가리켜 ‘바보짓’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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