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리말 생각 ㉡ 한글날


 해마다 시월 구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퍽 오랫동안 ‘하루 쉬는 날’이었으나 이제는 안 쉬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안 쉬는 날로 바뀐 탓에 사람들이 한글날을 잊는지, 쉬는 날이었어도 사람들은 으레 잊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우리들 누구나 한글날을 아끼며 사랑하는 넋이었다면, 한글날이 따로 쉬는 날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을 높이 기리거나 우러르겠지요. 우리들 누구나 한글날을 아끼며 사랑하는 넋이라 한다면,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자 몇몇 사람이 한글날을 갑작스레 ‘안 쉬는 날로 바꾸자!’ 하고 외칠 수 없는 노릇이요, 이렇게 외치다가는 대통령 자리나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한글날은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아니에요. 흔히들 한글날을 맞이해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이야기하지만, 한글날이 태어난 까닭은 우리한테 우리글이 없던 설움과 아쉬움을 훌훌 털어 기쁨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한글’은 ‘한힌샘’이라는 이름을 따로 쓰면서 살았던 주시경 님이 새로 빚은 낱말입니다. 머나먼 옛날, 이 나라가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던 때에는 ‘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때로는 ‘諺文’이라 했고요. 말사랑벗들이 잘 헤아리셔야 하는데, ‘훈민정음’이나 ‘언문’이 아닌 ‘訓民正音’하고 ‘諺文’이었어요.

 왜 이렇게 썼을까요?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까요?

 지난날 임금님이나 신하나 사대부나 지식인들은 누구나 漢文을 썼습니다. 입으로 읊는 말은 여느 사람들 누구나 쓰는 ‘한겨레 말’을 썼을 테지만, 글로 적바림할 때에는 ‘漢文’을 썼어요. 이 또한 곰곰이 생각하셔야 하는데 ‘한문’이 아닌 ‘漢文’을 썼어요. 왜냐하면 지난날 임금님부터 지식인까지 하나같이 중국을 높이 우러르거나 섬겼거든요. 오늘날 이 나라 대통령부터 지식인까지 한결같이 미국을 높이 우러르거나 섬기는 모양새하고 닮습니다. 이리하여 요즈음 대통령이든 지식인이든, 어른들은 ‘영어’가 아닌 ‘English’를 써요. ‘한문’조차 아닌 ‘漢文’을 쓰던 때에는 ‘훈민정음’이 아닌 ‘訓民正音’을 지었고, 이러한 글로 중국말을 손쉽게 적바림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이 ‘訓民正音’은 어려운 ‘漢文’을 모르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한테 뭐 하나 알리려 할 때에 무척 도움이 돼요. 왜 그러느냐면, 나랏님이 뭐 하나 명령을 하거나 지시를 한달 때에는 ‘漢文’으로 종이에 글을 쓰잖아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이 ‘漢文’을 못 읽어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에 들었을 텐데,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글을 배우지 못했어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이 글을 배워서 나라를 뒤집을까 걱정하기도 했을 테고,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권력자한테 그예 짓눌리기를 바라기도 했으리라 생각해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이 깨닫는다면, 이른바 ‘민란’이라는 이름으로 농사꾼들이 힘을 똘똘 뭉쳐서 잘못된 사회와 제도를 바로잡거나 고치려고 일어섭니다. 그러니까 예부터 여느 가난한 농사꾼을 못 가르치도록 하려 했고, 다만 나랏님 명령과 지시사항은 잘 알아듣도록 하려는 뜻에서 ‘訓民正音’을 만들었어요.

 지난날에는 이 나라에서 95퍼센트쯤 되는 사람들이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이러니까 ‘글을 아는 사람’인 양반이나 사대부나 지식인이 ‘漢文으로 내려온 명령과 지식’를 하나하나 풀어서 알려주거나 읽어야 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쪽에서 보자면 얼마나 힘들고 번거로웠을는지 알 만한 노릇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로 이 한글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생각하고 신나게 꿈을 꾸는 한편, 책이든 글이든 무어든 넉넉하게 즐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난날 조선 나라에서는 ‘이렇게 한 나라 모든 사람이 글을 쉽게 쓰거나 읽으며 생각을 꽃피우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나랏님이 시키는 일을 잘 따르기를 바랐고, 나랏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릴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말과 글이 동떨어지기도 했고, 나랏님과 나랏사람(그러니까 ‘백성’)이 멀리 갈리기도 했던 지난날입니다. 그렇지만, 지난날에야 그러하기는 했으나, 이 한글이라는 글은 더없이 손쉽게 익혀 그지없이 알차게 쓸 만한 글이었어요. 1900년대에 이르러 이 글이 얼마나 값있고 뜻있는가를 깨달은 몇몇 지식인들은 ‘당신들은 漢文만으로도 넉넉히 당신 넋을 밝히며 당신 일자리를 얻고 당신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만, 이 ‘기득권을 스스럼없이 내려놓고는 우리글 갈고닦기를 처음으로 했’어요. 이러는 가운데 새로 붙은 이름이 ‘한글’이에요. 이리하여 1900년대 첫머리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글운동을 하던 숱한 어른들은 독립운동에 똑같이 몸을 담기 마련이었습니다. 한글을 살리거나 나누거나 알리는 일이란, 이 나라 가난한 여느 농사꾼을 일깨우면서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짓눌린 삶을 떨쳐 일어나도록 이끄는 일이었어요.

 오늘날에도 ‘English’가 아닌 바르고 알맞으며 고운 ‘우리말’을 제대로 살피고 익히며 가다듬는 가운데 쓰는 일이란, 참다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살찌우며 내 고향마을을 돌보는 일이라 할 수 있어요. 말사랑이란 삶사랑이고 글사랑이란 사람사랑이에요. 한글을 사랑하는 일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고, 우리말을 아끼는 일이란 나 스스로를 아끼는 일이랍니다.

 그런데 1900년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우리글을 갈고닦은 ‘깨우친 어르신’들은 ‘한글’이라는 새 이름까지 사랑스레 붙였지만, 이 보람을 홀로 차지하지 않아요. 맨 처음 이 글을 빚은 세종큰임금님이 ‘여느 가난한 농사꾼이 글을 익혀 꿈을 꽃피우기를 바라는 넋’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슬기를 빛내어 글을 빚어 주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온 나라 사람들이 말꽃과 글빛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글날은 이렇게 태어났답니다.
 

(최종규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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