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글쓰기와 사진찍기
 ― 기계질 아닌 살림하기가 되어야 할 사진



 어릴 적부터 운동경기를 배우는 아이들은 퍽 어릴 때부터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곤 합니다. 어린 날부터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은 꽤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재주를 선보이곤 합니다.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더 일찍 영어를 가르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참으로 맞는 이야기들인데, 이렇게 참말 맞는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은 한 가지를 잊습니다. 그러면, 왜 어릴 적에 운동경기이든 악기이든 영어를 가르치면 아이들은 쏙쏙 빨아들이듯이 잘 배워서 빼어나거나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려나요.

 요즈음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잘 못합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걸핏하면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거의 형편없이 뇌까리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을 뿐더러 옳게 배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넋을 건사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 마음이 옛날과 견주어 못되거나 비뚤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린 나날부터 갖가지 지식과 정보를 잔뜩 머리에 집어넣는 바람에, 아이들 스스로 마음결과 마음씨를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게 다스리는 데에서는 자꾸 동떨어지고 맙니다.

 아직 어린 아이한테 글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글을 잘 쓸까 궁금합니다. 무척 어린 아이한테 그림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그림을 잘 그릴까 궁금합니다. 매우 어린 아이한테 사진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사진을 잘 찍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테니스 기계가 아니고, 농구 기계나 탁구 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축구 신동이나 야구 신동 또한 아닙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높이 얻거나 힘을 세게 부릴 셈으로 피아노를 익히거나 바이올린을 켜거나 노래나 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제 삶을 아름다이 살찌우는 길에서 테니스를 배우거나 피아노를 익히거나 사진기를 물려받아야 즐겁습니다.

 잘 쓰는 글도 나쁘지는 않다 하겠지요. 그러나 잘 쓴 글이란 온누리에 수두룩합니다. 잘 쓴 글이란 내 삶에서 무슨 보람이 있으려나요. 내 삶을 담는 내 이야기가 없다면, 제아무리 예쁘장하게 빛난다는 글이라 해도 무슨 쓸모가 있으려나요.

 잘 찍은 사진도 싫지 않다 하겠지요. 그러나 잘 찍은 사진이란 나라 안팎에 숱하게 많습니다. 잘 찍은 사진이란 내 삶에서 무슨 뜻이 있으려나요. 내 삶을 실어내어 내 이웃이랑 동무랑 살붙이랑 오순도순 나눌 이야기가 없다면, 제아무리 멋스러이 보인다는 사진이라 해도 무슨 값이 있으려나요.

 예쁜 얼굴이기에 예쁜 사람이 아니에요. 예뻐 보이는 글이라서 예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예쁘구나 싶은 사진이라서 예쁜 마음을 나눌 수 없어요. 예쁜 삶을 예쁜 손길로 가다듬으면서 한 장 고맙게 얻는 사진일 때에 비로소 예쁜 사진으로 자리잡아요.

 사랑을 담아 글을 쓰고 사랑을 담아 사진을 찍어야 좋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고, 누구한테 내보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작품이 되니까 쓰려 하는 글이 아니고, 작품을 만들려고 만들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에요. 돈을 벌려고 쓰는 글이란 글다운 글이 아니에요. 그냥 ­‘돈벌이’랍니다. 돈을 모으려고 찍는 사진이란 사진다운 사진이 아니에요. 그저 ‘돈벌이’예요.

 상업사진이라든지 상업작가라는 말이 떠도는데, 상업사진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돈벌이에 머물지 않습니다. 상업판, 그러니까 누군가한테서 돈을 받고 써 주는 글이나 찍어 주는 사진이라 할지라도, 내 온마음과 온땀을 바쳐 일구는 글과 사진일 때에는 아름답습니다. 좋아요. 빛납니다. 어여쁘지요. 그냥 돈벌이로 여기며 주문에 걸맞게 해치운다면 그냥 돈벌이로 머뭅니다.

 흔히들, 사진관 사진은 사진으로 안 치곤 하지만, 사진관 사진 가운데에도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빛나는 작품, 곧 사진다운 사진이 있어요. 저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옛날 졸업사진책을 바지런히 사 모읍니다. 해마다 수천 군데 초·중·고등학교에서 졸업사진책이 쏟아지는데, 이 책들을 보면 그저 그런, 한 마디로 하자면 그냥 돈만 벌려고 만든 졸업사진책이 꽤 많지만, 이 가운데 아주 맑고 밝게 빛나는 졸업사진책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얼마나 땀흘리고 마음쏟아 졸업사진책 하나 빚었는지, 내가 나온 학교가 아니요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이 졸업사진책 하나를 넘기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때가 있습니다.

 상업사진을 하든 순수사진을 하든 무슨 사진을 하든, 사진작가가 되고픈 이들은 ‘사진을 하면’ 됩니다. 글을 써서 돈을 벌든 이름을 얻든 뭐를 하든, 참다이 글작가가 되고픈 이들은 ‘글을 쓰면’ 돼요. 이름팔이가 아닌 글쓰기입니다. 돈벌이가 아닌 사진찍기입니다. 장사꾼 노릇이 아닌 살림꾼 몫입니다. 겉치레가 아닌 속가꿈이요 살림하기예요.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면, 아이를 키우듯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한결 즐거우며 빛이 나고 아리땁습니다. 아이를 돌보듯이 글을 여미고 사진을 여미면 더욱 멋스러우며 뜻이 있고 어여쁩니다. 아이를 사랑하듯이 글을 사랑하고 사진을 사랑할 노릇입니다. 아이를 내 품에 따숩게 꼬옥 안아 주듯이 글을 내 가슴으로 꼬옥 안아 주고 사진을 내 온몸으로 꼬옥 안아 줄 노릇입니다. (4343.1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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