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라는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 책에 넣을 글을 꾸준히 쓰는데, 이제부터 이곳에 하나씩 걸치려 합니다. 이곳에 글을 걸치면서 '이대로 나아가면 좋을까, 더 가다듬으면 한결 나을까'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널리 헤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은 아무쪼록 아낌없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이 글을 잘 엮어내어 좋은 책 하나로 태어나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머리말 : 푸른말·삶말·사랑말


 저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저씨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인천 도화동 골목동네였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골목동네에서 골목벗하고 사귀며 지내다가 이때부터 인천 연수동이라는 아파트마을로 옮겨 지냈습니다. 1991년 일인데, 이무렵까지 지내던 골목동네도 아파트이기는 했는데, 5층짜리 아파트였고, 연탄을 때는 살림집이었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며 학교로 가는 길에는 ㅈ이라는 커다란 식품공장이 인천 앞바다로 흘려보내는 쓰레기물이 냇물을 따라 코를 찌르는 냄새를 풍기며 흘렀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여름날 시원하게 물을 뿜는 작은 못이 있었고, 예전에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었으며, 기찻길을 따라 색시집이 줄지어 있었어요. 학교로 갈 때면 언제나 연탄공장 뒤쪽 기찻길을 밟으며 하나 둘 셋 …… 백 이백을 셌습니다. 탄을 가득 싣고 까만 먼지를 날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에는 병마개를 철길에 얹어 놓고 납짝쿵을 했습니다.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국민학교를 다닌 해가 1982년부터 1987년입니다. 이동안 국민학생은 버스삯으로 60원을 치르다가(1982년) 90원을 치릅니다(1987년). 그러니까 이때에는 10원짜리 쇠붙이 돈닢 하나조차 몹시 알뜰히 건사해야 했어요. 10원짜리이든 1원짜리이든 철길에 올려놓을 만큼 돈이 넘치는 동무는 없었답니다.

 2011년을 맞이하면서 서른일곱 나이가 된 저는 멧기슭에 자리한 시골집에서 네 살 난 딸아이를 옆지기랑 함께 키웁니다. 옆지기 몸에는 둘째가 자랍니다. 집일은 아이 아버지인 제가 도맡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아파트마을이 싫어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곧바로 집을 박차고 나와, 대학교가 있는 서울로 갔는데, 충주 멧골마을로 들어가 네 해 반을 지내고서 인천으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살다가, 다시 충주 멧골마을로 들어와 살아갑니다. 이동안 혼자 살림을 꾸렸는데, 제 조그마한 살림집에는 빨래하는 기계나 텔레비전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밖에 자동차라든지 청소기라든지 전자레인지 같은 전기 먹는 물건을 집안에 안 들입니다. 자동차가 없으니 아이하고 읍내에 마실을 갈 때에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때로는 자전거에 아이수레를 붙이고 낑낑 끙끙 영차영차 하면서 산을 타고 구비를 돌아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해요.

 기계로 하는 빨래를 안 하니까 제가 하는 빨래는 마땅히 손빨래일 테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손으로 빨래를 했으니 ‘손빨래’라는 낱말은 없었어요. 이리하여 예전 낱말책, 그러니까 ‘국어사전’에는 ‘손빨래’라는 낱말은 안 실렸는데, 이제는 이 낱말을 낱말책에 실어 놓습니다.

 요즈음 손으로 종이에 글을 적어 띄우는 동무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지난날 손빨래라는 낱말을 쓰지 않았듯이 ‘손글씨’라는 낱말 또한 안 썼어요.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셈틀, 그러니까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니, 손으로 애써 글을 쓸 때에는 따로 ‘손글씨’라는 낱말로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 낱말 ‘손글씨’는 낱말책에 실렸을까요? 어때요? 실렸으려나요, 안 실렸으려나요?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갈 아버지이자, 동무들한테는 아저씨일 제가 하는 일은 글쓰기와 사진찍기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합니다. 널리 팔리는 글을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즐겨찾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제가 사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이 책을 읽을 동무들이 마주할 ‘우리말’ 이야기에다가 ‘책과 헌책방’을 다루는 글입니다. 제가 찍는 사진은 헌책방 사진에다가 골목길 사진이랑 우리 아이 자라나는 모습 사진이에요. 그닥 돈 될 만한 글이 못 되지요. 그렇지만 저는 돈이 될 글보다는 제 삶을 살찌울 글을 좋아합니다. 백만 사람이 찾아 읽어 줄 글을 쓰기보다는 다문 백 사람이나 열 사람이 찾아 읽어 주더라도, 제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쓰고 마음을 기울여 삶을 한결 아름다이 가다듬는 기운과 넋과 슬기를 몸소 빚도록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나 하고 더듬어 보면, 저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굳이 떠올릴 만한 이야기는 아닐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 가지 생각해 보면, 1998년이었나 이오덕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저는 1995년부터 혼자 글을 쓰고 엮어서 ‘우리말 소식지’를 주마다 내놓았고, 이 소식지를 이오덕 선생님한테도 부쳤는데, 어느 날 저한테 전화를 거시더니 만나고 싶다 하셨어요. 이때 저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 살았기에, 일을 쉬는 낮을 틈타 과천으로 전철을 타고 찾아갔습니다. 나어린 젊은이를 마주한 선생님은 두 시간 즈음 조곤조곤 도움말을 들려주었는데,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는 말은 한 마디 없었습니다. 꼭 두 대목만 짚으면서 앞으로도 기운 내어 잘 해 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때 들은 두 대목은, ‘가끔씩’하고 ‘불리다’입니다. ‘가끔’이라는 낱말은 ‘-씩’을 붙이면 겹말이 된다 했고, ‘불리다’는 잘못 쓰는 말일 뿐 아니라 ‘부르다’ 같은 낱말도 아무 자리에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말 소식지를 낸답시고 버둥대던 저로서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고작 스물네 살짜리 앳된 젊은이가 무엇을 제대로 알겠습니까. 더군다나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제도권 학교에서 제도권 교과서를 달달 외면서 제도권 말하고 글에 온통 젖어든 몸과 마음이었는데요.

 늘 그렇지만, 이렇게 큰 어르신을 한 번 만나뵌 뒤로 제 글과 말을 더 찬찬히 헤아리며 지냅니다. 내 어릴 적에 이웃 어른한테서 듣던 말을 곰삭이고, 내 어릴 적에 내 골목동무랑 나누던 말을 돌이킵니다. 내 몸에 나 스스로 아로새긴 살아숨쉬는 말을 곱씹고, 내 둘레 곱고 고마운 분들 몸에 살포시 깃든 싱그러운 말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어쩌면, 1998년 어느 날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뵌 자리에서 더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다 잊었는지 모릅니다. 고작 두 대목만 떠올린다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어 줄 반가운 ‘말사랑 푸른벗’ 님들 또한 비슷하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저는 ‘청소년’이라는 낱말보다 ‘푸름이’라는 낱말을 좋아하고, 이 책을 읽을 푸름이들은 ‘말사랑 푸른벗’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단출하게 ‘말사랑벗’이라 해도 되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 적바림한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머리에 담는다거나 달달 외워야 하지 않으니까요, 즐겁고 홀가분하게 읽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앎조각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내 슬기를 가다듬으면서 내 생각힘을 북돋우는 책으로 삼아 주면 기쁘겠어요. 우리 말사랑벗 누구나 좋은 밑말을 다스리면서 밑넋과 밑삶을 알차게 가꾸어 주면 반갑겠어요.

 ‘밑말’이나 ‘밑넋’이나 ‘밑삶’ 같은 말이 좀 낯설려나요. 퍽 어려우려나요. 이 낱말은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인데, 가끔 이런 낱말을 써 보곤 해요. ‘밑말’이란 말 그대로 밑이 되는 말, 밑바탕이 되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새로 태어나도록 이끌거나 새삼스레 일구는 밑바탕이 되는 말이 밑말이에요. 이와 마찬가지로, 밑넋이라 한다면 말사랑벗이 고우면서 참답고 착한 넋을 일구는 밑바탕이 되는 넋이에요. 더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더 고운 사람이 되면 좋겠고, 더 참다우면서 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이 책이 길동무가 되도록 힘쓸 생각이에요. 그러면 ‘밑삶’이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만하지요?

 우리 말사랑벗뿐 아니라 모든 푸름이가 쓰는 말을 일컬어 ‘푸른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름이를 비롯해 어린이와 어른 모두 쓰는 말이란 ‘삶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이 서로서로 아끼고 믿으며 기대거나 도우면서 나누는 말이란 ‘사랑말’이라고 생각해요.

 두 아이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저는 이 푸름말, 삶말, 사랑말을 보듬는 매무새를 이 책에 하나둘 담으려 합니다.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오셔요. 너무 벅차다면 한참 쉬어도 되고, 다른 데를 들렀다가 다시 찾아와도 돼요. 언제나 곁에 놓고 쓰다듬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요.

 말사랑벗들이 둘레 어른한테서나 다른 동무한테서나 좋은 말과 넋과 삶을 받아들이거나 눈여겨보면서 말사랑벗들 마음밭을 알뜰살뜰 일구면 참 기쁘겠습니다. 따순 손길을 내미는 말을 아끼고, 너른 마음을 펼치는 글을 사랑해 주면 더욱 기쁘겠어요. 자, 이제부터 함께 손을 맞잡고 맑으면서 고운 길을 걸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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