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쓰는 마음


 군대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눈을 쓸었습니다. 아니, 눈을 삽으로 퍼서 옮겼습니다. 말 그대로 펑펑 쏟아지며 그득그득 쌓이는 눈은 빗자루로 쓸어낸다고 치울 수 없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는 눈쓸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눈을 쓸고프지 않았습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맞이하는 눈은 ‘눈답다’고 느끼지 않기도 했고, 가뜩이나 여느 삶자리에는 눈도 거의 안 오는데 이 눈을 왜 치우는가 싶었습니다. 눈을 안 치우고 하루나 이틀만 있어도 저절로 녹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겨울은 겨울이면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아니라, 며칠쯤 있으면 날이 풀려 눈이 다 녹습니다. 때로는 눈이 쌓인 그날 바로 다 녹아서 사라지곤 해요. 호들갑을 떨면서 화학방정식 소금을 뿌려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고들 하니까 눈을 치우려 합니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 때문에 눈을 치웁니다. 왜냐하면 사람 발자국이 난 자리는 비질을 몇 번 하면 다 벗겨지지만, 자동차가 밟은 자리는 비질로는 벗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삽으로 긁어도 잘 안 벗겨져요.

 시골집에 보슬보슬 내리다가 소복소복 내린 눈을 바라봅니다. 눈이 다 멎은 다음 빗자루를 들고 씁니다. 멧자락 집으로 들어설 택배 짐차들이 눈 때문에 못 온다고 핑계를 댈까 싶어 눈을 씁니다. 이토록 눈이 왔어도 우체국 택배는 제때 잘 왔으나 다른 택배는 전화도 없고 오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눈이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거리인가 봅니다.

 맨손으로 눈을 쓰니까 손이 얼어붙습니다. 아니, 손가락이 얼어붙습니다. 장갑을 낀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 얼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참 쓸고 나서 손가락을 녹여야 합니다. 군대에서도 그랬으니까요.

 아이는 눈을 쓸어 말끔한 자리를 밟지 않습니다. 아빠가 일부러 안 쓸어 놓은 자리만 밟습니다. 아빠는 우리 집 마당자리는 사람 걷는 길만 조금 쓸고 다른 데는 고스란히 남겼는데, 아이는 딱 요 자리만 밟습니다. 그래, 너를 생각해서라도 아빠는 눈을 쓸기 싫어. 눈이 오면 우리 집은 눈집이 되어 언제라도 눈을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좋겠지. (4343.12.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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