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쥐는 마음


 책을 아끼는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곧 책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책을 돌보는 마음은 사람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곧바로 책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는 마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을 돌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새책방을 다닐 때에는 그때그때 잘 팔리는 책이라든지 눈에 뜨이는 책이라든지 읽을 만한 책이라든지 찾을 뿐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서 읽든 눈에 뜨이는 책을 장만하여 읽든 읽을 만한 책을 살펴 읽든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치는 책읽기요 또다른 책읽기로 뻗는 책읽기입니다.

 나는 책읽기만 되풀이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즐겼지만 또다른 책읽기로 뻗기만 하는 책읽기는 즐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 줄이 가슴에 와닿으면 이 한 줄 때문에 책을 샀고, 책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 이르러 뒤통수를 쿵 내려치듯 엉터리 모습을 본다면 이 아까운 책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내다 버렸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말을 하는 책이어야 읽을 만하다 여겼지만, 참말만 있고 참삶이 없다면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참말만 가득하고 참삶은 한 가지조차 없다면, 제아무리 참말이 훌륭하거나 거룩하달지라도 못마땅합니다.

 나 스스로 참삶을 일구며 길어올린 참말일 때 가장 반갑고 즐겁습니다. 나부터 참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얻은 참말일 때 가장 고맙고 벅찹니다.

 책을 쥘 겨를이 없이 아이하고 부대낍니다. 아이가 낮잠 없이 늦게까지 안 자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이듬날 아침이나 새벽에 아주 일찍 깨어나면 그지없이 죽을맛입니다. 아이 아빠는 하루 내내 아이한테 시달리면서 몸이 지쳤는데, 그나마 아침나절에 글조각 좀 붙든다든지 책귀퉁이 집어들 무렵부터 또다시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틀림없이 나 또한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도록 했을 테니까요. 나는 내 아주 어린 나날은 떠올리지 못하는데, 나도 내 아이처럼 아침잠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으레 새벽 여섯 시나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또는 아버지 뒤에 아침을 먹고 나서 일찌감치 학교길에 올랐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조금 늦게 갔으나 2학년 즈음부터는 학교에 닿은 때가 으레 아침 일곱 시 안팎이었습니다. 학교 지킴이 아저씨조차 아직 나오지 않은 때, 학교문이 잠겨 있어 으레 담을 타고 학교로 들어와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하루를 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며 어머니가 하루일을 열기 번거롭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글조각 하나 건사하지 못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이맛살을 가만히 문지릅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다가는 아이 사진을 몇 장 찍다가는, 그래 이렇게 일찍 깨어났으니 일찍부터 배고프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아침을 차려 주어야겠습니다. 어제도 못 쓰고 오늘도 못 쓰는 글은? 글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요. 아이가 아침을 참말 일찍 먹고 나서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인형하고 놀아 주면서 제 아빠가 일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때에는 쓸는지 모르지요.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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