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까는 마음


 아이가 낮잠 잘 때를 넘겼다. 낮잠 잘 때를 넘겼는데 산에 간다며 웃집 할배 뒤를 따라 엉덩이 실룩실룩 하면서 산길을 오른다. 아이는 웃집 마당이며 멧기슭에서며 신나게 뛰어논다. 이제 슬슬 배고파 할 때가 될 텐데 싶어 걱정이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뛰고 엎어지며 놀다가 아빠 손을 붙잡고 집으로 내려가자며 이끈다. 집에 닿으니 아이는 사탕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한테 사탕을 줄 어버이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아빠가 무슨 사탕 공장이라도 되니?

 어제 읍내 장마당에서 사 온 물고기묵으로 끓인 찌개를 내놓고 밥을 푸고 반찬을 차린다. 아이는 사탕 노래를 부르며 눈물까지 뚝뚝 떨어뜨리며 운다. 사탕이 그토록 먹고 싶니? 그러나 밥 한 술 안 뜨는 아이한테 어느 어버이가 사탕을 주겠니?

 읍내 장마당에서 함께 사 온 밤을 애 엄마가 구웠기에, 이 구운 밤을 애 아빠가 칼로 깐다. 아이는 밥은 쳐다보지 않고 울기만 한다. 밤을 세 알쯤 깠을 무렵, 드디어 아이가 밤조각 하나를 먹어 준다. 눈물은 그치고 냠냠 씹어 먹는다. 히유, 이 뒷북 돼지. 그러나 졸음이 쏟아지고 배까지 고팠던 아이는 이내 아빠 무릎에서 곯아떨어진다. 아이를 무릎에 눕힌 채 한동안 재운 다음 바닥으로 옮겨 눕힌다. 두 시간 즈음 곯아떨어져 잠든 아이는 벌떡 깨어나 다시금 사탕 노래를 부른다. 찌개를 덥혀 밥상을 차린다. 아이가 울며 사탕 노래를 부르거나 말거나 애 아빠는 또다시 밤을 깐다. 밤을 두 알쯤 까니까 이제서야 밤조각 하나를 먹어 준다. 아이가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물고기묵 한 조각을 먹어 준다. 밥도 조금 먹어 준다. 애 엄마가 달걀을 두 알 부쳐서 애 아빠보고도 하나 먹으라 했지만, 아이가 노른자만 골라서 두 알 다 파먹는다. 아빠는 모르는 척하면서 밥을 먹인다. 아이는 밥그릇을 4/5쯤 비운다. 찌개도 꽤 많이 먹어 주고 김치랑 밤도 함께 먹는다. 꽤 배가 불렀는지 더 먹지는 않고 사탕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눈물바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제 활짝 웃고 떠들면서 방과 방을 뛰어다니며 논다. 그래, 너 참 잘났어. 누가 닮았니? 아빠 닮았니?

 그러고 보면, 애 아빠는 국민학교 삼 학년 적이었나 홍역을 앓으며 여러 날째 드러누웠을 때, 어머니(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무얼 해 줄까 하고 물어 보셨을 때 “조립식 사 주셔요.” 하고 노래했다. 어머니는 다른 건 다 해 주어도 그런 건 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먹을거리라든지 옷이라든지 다른 무엇에는 예나 이제나 아무런 마음이 없다. 옷을 사 달라느니 신을 사 달라느니 사탕을 사 달라느니, 비싸고 드문 바나나를 맛보게 해 달라느니 하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뻔히 보아도 집살림이 넉넉하지 않은데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며 칭얼거릴 수 없었다. 조립식 노래를 부를 때에도 어머니보고 사 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달이 받는 돈을 모아 조립식을 살 테니까 봐 달라는 소리였다.

 애 엄마는 애 아빠가 아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간다고 했을 때에 밤을 사 오라 말했다.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밤을 먹으면 아이이든 어른이든 살이 오른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아이가 하도 밥을 잘 안 먹어 밤이라도 먹이며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하려는 마음이란다.

 애 아빠는 아이가 칭얼거린다고만 말하거나 생각할 뿐, 이 칭얼쟁이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거나 알뜰히 돌보아야 좋을까를 살피지 못한다. 어쩌면, 아이에 앞서 아빠부터 뒷북이 아니겠는가. 아이는 아빠를 닮아 뒷북이지 않겠나. 그러니, 애 아빠로서 사탕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밥상머리에 앉히고 천천히 밥술을 떠먹이면서 조용히 밤을 까서 한 조각 두 조각 가만히 먹일밖에. (4343.11.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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