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꿰는 마음


 스물여덟 달을 사흘 넘긴 아이가 아침부터 속옷을 들추더니 단추를 하나하나 끌른다. 속에 입은 옷은 단추로 꿰도록 되어 있는데, 일부러 스스로 단추를 끌른다. 날이 따뜻하지 않은데 이렇게 단추를 끌르면 안 되니 “녀석아, 단추를 자꾸 끌르면 어떡해. 단추를 채워야지.” 하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신나게 단추를 끌르다가 “채워? 단추 채워?” 하더니 단추를 다시 채우려 한다. 끙끙 용을 쓰다가 드디어 맨 밑 단추 하나를 채운다. 어, 어라? 단추를 채웠네? 이 녀석, 드디어 단추를 채울 줄 알았구나.

 아이한테 나머지 단추도 채워 보라 하고는 아빠는 다른 일을 한다. 조금 뒤에 보니 아이가 나머지 단추까지 모두 채웠다. 이런, 더 대단한 일이잖아. 단추를 채우기까지 스물여덟 달이 걸린 셈이니? 아니, 첫 단추 하나를 꿰자마자 막바로 다른 단추까지 꿰어 냈구나. 아이야, 참 대단한 일을 했구나.

 아이는 용을 쓰며 채운 단추를 다시 끌른다. 뭐니? 또 왜 끌르니? 가만히 지켜본다. 옳거니. 아이는 제가 처음으로 단추 꿰기를 해낸 줄 모른다. 다만, 저 스스로 단추를 꿰었다가 끌렀다가 되풀이하는 놀이를 하는가 보다. 아빠나 엄마가 노상 해 주던 단추 꿰기랑 끌르기를 저 스스로 해 보고 싶은가 보다. 요사이는 날마다 새로운 말을 아빠한테서나 엄마한테서나 배워 곧잘 따라하는데, 손놀림이 퍽 좋아졌기에 이처럼 단추를 꿸 수 있겠지.

 스물여덟 달. 아빠로서는 참 기나긴 나날이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오며 갖은 뒤치닥거리를 도맡으며 보낸 스물여덟 달은 얼마나 긴가. 그러나 앞으로 살아낼 나날은 훨씬 길겠지. 앞으로는 스물여덟 달뿐 아니라 스물여덟 해, 또는 쉰여섯 해를 아이랑 함께 살아갈는지 모른다. 이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내며 새롭게 깨닫거나 새삼스레 마주할 기쁜 눈물과 웃음은 얼마나 많을까. 아마, 날마다 새로운 눈물과 웃음이겠지. 언제나 새삼스러운 기쁨과 슬픔일 테지. 아이야, 오늘 코 자면 이듬날은 금왕읍 장날이니까, 날이 너무 춥지 않으면 함께 자전거 타고 마실을 다녀오자.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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