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 Free 러브 앤 프리 : 자, 떠나버릴까? - 다카하시 아유무, 전설의 세계 방랑 노트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을 알면 사진찍기는 늘 즐겁다
 [찾아 읽는 사진책 3] 다카하시 아유무, 《LOVE&FREE》


 잘 팔리는 사진책은 몹시 드뭅니다. 제법 팔리는 사진책을 살피면 이른바 ‘정통 사진책’이라 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정통이든 아니든 똑같은 사진책이고, 한결같이 사진을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보면, 아직 이 나라에는 ‘참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이 그리 많이는 안 나왔습니다. 나라밖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무척 좋다 싶은 정통 사진책’ 가운데 한국말로 옮겨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살가도라든지 쿠델카라든지 브레송이라든지 드와노라든지 앗제라든지 스티글리츠라든지 아담스라든지 할스만이라든지 …… 한글판으로 알차게 엮은 책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해적판으로 나온 책이 더러 있고, 아주 조그맣게 나온 번역책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을 배우는 길에서 아름다운 스승이 된다’는 사람들 작품책은 거의 나오지 못합니다. 팔리기 힘들고, 판권을 사 오자면 돈이 많이 든다는 아우성만 들립니다.

 이 나라에도 문화부가 있고 지역마다 문화재단이 있습니다(없는 곳도 많습니다만). 문화재단이 없더라도 시나 군마다 문화 정책을 다루는 부서가 있습니다. 개인 출판사에서는 돈이 모자라 힘들다면, 시나 군이나 문화부에서 따로 출판사를 차려서 ‘나라 안팎 빼어난 정통 사진책’을 펴내면 됩니다. 사진책 하나 내는 데에 돈이 꽤 많이 든다지요? 그렇지만 해마다 거님길 돌 갈아치우는 데에 쓰는 돈 가운데 1/100만 들여도 해마다 100권이 넘는 놀라운 ‘정통 사진책’을 펴내고 남습니다. 이렇게 펴낸 사진책을 도서관과 학교마다 한 권씩 거저로 줄 만큼 이 나라 건설과 토목과 행정은 엉뚱한 데에 돈을 흘립니다.

 일본사람 다카하시 아유무 님 글과 사진으로 엮은 《LOVE&FREE》를 읽습니다. 2010년 9월에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2002년 판은 책값이 8400원인데 2010년 판은 외려 400원 내린 8000원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예전 책을 펼칩니다. 아유무 님은 처음부터 “돈은 조금 부족하지만 시간만은 무한대로 있는 여행(15쪽)”을 즐기겠다고 밝힙니다. 그래요. 여행이든 동네마실이든 삶이든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마음껏 즐기면 됩니다. 다달이 오백만 원쯤 벌어야 살 만하겠습니까. 달마다 이백만 원을 벌거나 백오십만 원을 벌면 어떠하지요? 한 달에 오육십 만 원 벌이로는 너무 빠듯한가요? 그러나, ‘돈이 없어’도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모자란 대로 오순도순 지낼 만합니다. 내 아이한테 십만 원짜리 옷을 사 주어야 사랑이겠습니까. 내 옆지기한테 이십만 원짜리 치마를 사 주어야 믿음이 되나요. 텃밭에서 가꾼 무를 뽑아 무채를 만들고 무국을 끓여도 사랑입니다. 돈은 한푼 없으나 아이를 품에 안으며 실컷 놀아도 믿음이에요.

 책 첫머리에서 아유무 님은 당신 넋을 거듭 밝힙니다. 이러한 다짐과 넋이 아름답기에, 《LOVE&FREE》라고 하는 ‘정통 아닌 사진책’이 널리 사랑받을 만하며, 참으로 두루 사랑받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지기보다 한 사람의 가슴을 도려내듯 절절한 표현을 하고 싶다(25쪽).”는 마음가짐으로 “사야카의 웃는 얼굴이 좋다. 무엇인가 끄적거리기 전에 우선 이 여자를 즐겁게 해야지(27쪽).” 하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는 두 사람은 길을 떠날 즈음 “사는 것이 예술이다(26쪽).” 하고 느낀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첫머리에 이렇게 말을 할 줄 안다면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이 책 《LOVE&FREE》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알 만합니다. 삶이 곧 예술이라면 사진이 바로 예술이며, 글이 곧바로 예술입니다.


.. 미처 몰랐기에 신선하다 ..  (53쪽)


 아직까지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사람은 “아는 만큼 보려”고 발버둥입니다. 입문책을 보고 기술책을 보며 참고서를 뒤집니다. 여행 길잡이책이라든지 사진 새내기책은 하나같이 자잘한 손재주와 지식덩어리를 다룹니다. 여행을 하는 마음이나 사진을 찍는 가슴을 다루지 못해요. 나들이를 즐기는 넋이랑 사진을 사랑하는 얼을 보여주지 못해요.

 아유무 님과 짝꿍이 일군 《LOVE&FREE》는 ‘알면 아는 대로 좋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새삼스러우며 싱그러운’ 삶을 즐깁니다. 따지고 보면, 안다고 해 보아야 무엇을 어느 만큼 어떻게 안다 할 수 있나요. 신라를 알고 신라 불상을 안다 하면 신라랑 신라 불상을 얼마나 잘 안다 할 만한가요. 경주를, 안동을, 제주를, 춘천을, 평양을, 백두산을, 하늘못을, 한라산을, 속리산을, 태안을, 부석사를, 해남을, 광주를 …… 사람들은 어느 만큼 어떻게 무엇으로 안다고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피사체가 무엇이든 혹은 누구이든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찍혀 주셔서 고마운’ 것이 아닐까(75쪽).” 하고 비로소 느끼는 아유무 님입니다.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틈틈이 나오는 수많은 ‘정통 사진책’을 비롯하여 ‘만듦사진(메이킹포토)’을 보여주는 숱한 몸짓은 아직까지 ‘찍히는 사람과 사물과 자연한테 고맙다고 느끼는 마음밭’이 지나치게 얕지 않나 싶어요. 찍혀서 대단한 사진이란 없거든요. 찍혀 주어 대단한 사진이랍니다. 찍어서 놀라운 사진이란 없습니다. 찍혀 주었기에 놀라운 사진입니다.

 이리하여, 이런저런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인도라는 나라를 다녀오며 찍은 사진이 왜 한결같이 볼품없거나 볼썽사나운가를 일깨우는 한 마디가 톡 튀어나옵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와 여행쟁이가 이 대목을 잘 깨우치며 삭일 수 있을 때에, 한국땅 사진쟁이 작품과 여행쟁이 이야기를 나라 안팎에서 살뜰히 즐기며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유무 님은 “나는 지금까지 편파와 왜곡으로 일그러진 필터를 통해 인도를 보아 왔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길에서 자는 것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 길에서 호젓한 낮잠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 인도에는 슬픔과 아픔 대신 수천 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현실’과 ‘미래’가 있을 뿐이다(70∼71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말하고 느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아름답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멋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모자라고, 돈있는 사람은 돈있는 사람대로 꾀죄죄해요. 무엇이 있고 없고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됩니다. 삶을 바라보면 돼요. 사람을 사람다이 마주하면서 내 사랑을 고이 나누면 넉넉해요. “많이 읽을 필요는 없어. 한 권의 책이라도 책장이 뚫어질 때까지 읽어 보렴. 그 편이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145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면 됩니다.

 사람을 많이 사귀면 더 좋을까요? 사람을 더 많이 사귀면, 더 많은 사람을 사귀면, 아는 사람이 많아 내 손전화 기계에 천 사람 넘는 전화번호가 담겼으면 ‘좋은 벗이 많다’ 말할 수 있나요. 인간문화재를 백 사람 취재해서 사진책 하나 내놓으면 그럴싸할는지요? 인간문화재라는 분 가운데 다문 한 사람만 마주하면서 이이 한 사람 삶을 가까이 사귀어 살붙이가 되면서 내놓는 사진은 어떠한가요. 인간문화재가 아니면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동네 이웃 한 사람을 서른 해나 마흔 해 사귄 이야기를 사진하고 글로 엮어서 내놓으면 어떠할까요. 제주 올레길은 멋들어지고, 우리 동네 골목길은 하찮은지요. 서울 북촌은 멋스럽고 우리 동네 골목집은 지저분하나요. 영화배우 아무개는 잘생겼고, 우리 할아버지는 못생겼을까요. 여행쟁이 한비야 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내 어머니와 내 언니와 내 동생과 내 동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얼마나 되는가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다 함께 연속극을 본 적 말고, 텔레비전이 없는 조용한 방에서 커피 한 잔이든 찬물 한 잔이든 앞에 놓고 한두 시간 신나게 수다를 떨어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요.


..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 아래였다 ..  (202쪽)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멋스럽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을 담은 듯 사진을 찍는들, 싯말처럼 보이는 글을 펼친들 뭔가 남다르다 할 수 없어요. 그예 살아가는 내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면서 따사롭고 부드러이 꼭 감싸안을 수 있으면 됩니다. 멋스럽지 않아도 좋은 사진이요, 남다르지 않아도 기쁜 글입니다. 훌륭해 보여야 하는 사진이 아니고, 재미있어야만 하는 글이 아닙니다. 파란하늘을 어깨동무하며 즐길 줄 아는 몸가짐이면 됩니다. 푸른 들판에서 호미와 낫을 들고 땀흘려 일할 줄 아는 발바닥이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친 다음 국 한 그릇 구수히 끓여 살붙이랑 배불리 먹을 줄 아는 살림꾼 꾸덕살이면 됩니다. 날마다 아기 기저귀를 빨아 빨랫대에 널어 놓고 나서, 이 빨래들이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느낌을 사진으로 한 장씩 담거나 글로 한 줄씩 적바림해 놓아도 좋아요. 이렇게 즐기는 사진 한 장과 글 한 줄이 차곡차곡 모이면 빛깔 고우며 냄새 그윽한 삶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4343.11.7.해.ㅎㄲㅅㄱ)


― LOVE&FREE (다카하시 아유무 글·그림,차수연 옮김,동아시아 펴냄,2002.8.1./8000원·2010년 9월에 ‘에이지21’에서 고침판으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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