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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 에이 Q 앤드 A 1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받으려고 발버둥치는 만화는 따분하다
[만화책 즐겨읽기 6] 아다치 미츠루, 《Q 앤드 A (1∼2)》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 《Q 앤드 A》를 올 2010년 9월에 장만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아다치 미츠루 님 다른 만화 《크로스게임》 이어그리기가 17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크로스게임》이 17권으로 끝나며, 곧바로 《Q 앤드 A》 1권이 나왔고, 이듬달 10월에 2권이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를 보면서 자꾸 느끼는데,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는 날이 갈수록 무언가 확 하고 가슴으로 쩌릿쩌릿 와닿거나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무언가 말할라치면 어영부영 끝나고, 이제 좀 이야기가 된다 싶으면 지루하게 늘어지며, 사이사이 쓸데없이 ‘여자 엉덩이’와 ‘여자 가슴’ 그림을 그려 넣습니다. 일본에서 ‘소년 만화잡지’에 그리는 만화이기 때문에 ‘소년한테 고마운 선물(?)’을 한다는 셈으로 넣는다 할 텐데, 이러한 선물을 넣는 틀이 서른 해가 넘도록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만화쟁이 한길을 걸어온 마흔 해 삶에 걸쳐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만화를 그린다는 대목이 놀랍다 할 만합니다. 만화감은 그때그때 달라 언제는 야구 만화이고 언제는 권투 만화이며 언제는 달리기 만화(이번 새 작품 《Q 앤드 A》)라 할지라도 줄거리와 흐름과 만화결은 늘 같습니다. 아니, 오롯이 같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아다치 미츠루 님도 사람인 까닭에 해를 거듭할수록 차츰차츰 바뀌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1980년대 작품과 2000년대 작품에 나오는 계집아이 치마 길이가 바뀝니다. 얼굴 모양이나 몸매는 요즈음이 될수록 조금 더 몽글몽글합니다.
그런데,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를 즐겨읽는 분들은 ‘또 똑같은(이렇게 말하면 안 되니까, 또 거의 비슷한) 만화를 그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사들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사들여 읽으며 첫머리 1권에서는 ‘음, 언제나처럼 1권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뭔가 살짝이나마 다른 이야기를 펼치려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이 채 사라지기 앞서 1권이 끝나고 2권으로 접어들 즈음이면 ‘그래, 아다치 미츠루 님 그림결이 어디 가나?’ 하고 느낍니다. 주인공 형제와 이웃집 자매(또는 이웃집 계집아이와 또다른 이웃집 계집아이)에다가 주인공한테 곁달리는 거의 빈틈없어 보이지만 언제나 주인공한테 져야 하는 참말 빈틈없는 조연 사내아이.
- ‘형을 데려오면 팀에 넣어 줄게.’ ‘뭐야, 너 혼자냐?’ ‘형은 어딨어?’ ‘형은?’ ‘여어, 형은 잘 지내?’ ‘안녕! 그 형 동생 맞지?’ ‘형한테 안부 전해 줘!’ (1권 22쪽)
- “6년 만에 만났는데 할 얘기가 우리 형 얘기밖에 없냐?” “아, 미안 미안. 그래, 6년 만이지. 이야, 그때는 진짜 너, …… 뭘 했더라?” (1권 58쪽)
《Q 앤드 A》 1권과 2권을 내처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다치 미츠루 님 작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서 찬찬히 챙겨 읽는데, 아다치 미츠루 님 작품 가운데 한 번 다 읽고 나서 다시 손을 대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는 작품은 없습니다. 저로서는 두 번이나 세 번쯤 되읽는 작품이 없습니다.
굳이 예전 작품을 되읽기보다 새로 나오는 작품을 읽으면 되기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주인공과 줄거리와 흐름과 그림결은 늘 매한가지이니까요.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은 열 번을 읽었건 스무 번을 읽었건 틈틈이 되읽습니다. 만화영화로 나온 〈블랙 잭〉은 만화책 《블랙 잭》을 생각하면 참 못 그렸습니다. 그러나 만화영화로 나온 〈블랙 잭〉도 즐겁게 봅니다. 다시 보는 재미가 있고, 거듭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다카하시 루미코 님 작품은 워낙 길기 때문에 《이누야사》라든지 《란마 1/2》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려고 하면 엄두가 안 납니다. 그러나 사이에 아무 권수나 뽑아들어 보노라면 이때부터 끝까지 다시 보도록 잡아당깁니다. 기나긴 이어그리기를 하더라도 낱권 하나마다 알뜰히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있고,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삶이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아다치 미츠루 님 작품에도 이렇게 삶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푸름이이든 어른이든 저마다 알차며 아름다이 영글어 놓는 꿈이 있었습니다.
- “미안해.” “어? 아, 아아, 아냐.” “그래, 저런 오빠라도 진짜 없어져버리면 쓸쓸하겠지. 하물며, 큐짱처럼 좋은 형이라면.” “…….” (2권 18쪽)
아다치 미츠루 님 예전 작품들, 그러니까 2000년대로 접어들기 앞서 그린 작품들, 또는 1980년대에 그린 작품들을 읽을 때에는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말마디에서 적잖이 깊거나 너른 삶을 느끼곤 했습니다. 지난날 작품을 읽을 때에는 책장을 빨리 넘기지 않았습니다. 무척 더디게 넘기며 그림결하고 말마디를 오래도록 곱씹으며 이야기에 빨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작품들은 책장을 꽤 빨리 넘깁니다. 이번에 새로 나오는 《Q 앤드 A》를 1권과 2권을 두 달에 걸쳐 장만해 놓고는 비닐조차 안 뜯고 책상맡에 놓았는데, 적어도 두어 권을 한꺼번에 읽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책장을 빨리 넘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화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도록 이끌지 못하고, ‘다음 줄거리나 다음 사건은 어떻게?’ 하는 데로만 눈길이 쏠리기 때문입니다. 낱권 하나하나를 가만히 되새기면서, 이 한 권을 읽으며 뿌듯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어느새 이름값이 너무 높아진 탓일까요. 만화를 더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잃거나 잊었기 때문인가요. 제아무리 이름값이 높다거나 바삐바삐 새 작품을 그리는 분들일지라도 당신 작품을 그러모아 낱권책으로 하나 내놓을 때에는 으레 ‘새삼스레 고맙다’고 느끼며 더 고개숙이곤 하는데, 《Q 앤드 A》에서는 마치 부그러움을 잃거나 잊은 늙은이 같은 모습이 구석구석에 드러납니다. 예전에는 작품 사이사이에 ‘내 작품을 슬쩍 알리는 그림(그러니까 아다치 미츠루 님 만화라면 아다치 미츠루 님 다른 작품을 알리는 그림, 광고 그림)’이 귀엽다고 느꼈으나, 《Q 앤드 A》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흐름에서 이런 광고 그림이 너무 자주 나오니 뻔뻔하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2권 68쪽이라든지 94∼96쪽이라든지 115∼119쪽이라든지 얼렁뚱땅 칸 잡아먹기를 하는 그림은 꽤 슬퍼 보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만화를 그릴 수 없을 만큼 스스로 무너지는 셈인지요. ‘말 없이 그림 몇 장만으로도 주인공 마음을 보여주기’라든지 ‘넓은 자리에 그림을 거의 그려 넣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드러내기’라든지는 이제 더는 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 갈고닦지 않는 셈인지요.
- “다친 곳 없어?” “아, 으응.” “내 라이벌은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거든. 감기 걸리지 마. 이도 열심히 닦아.” (2권 75쪽)
만화 사이사이 깃들던 ‘썰렁하지만 빙긋 웃으며 마주하던 우스개’ 또한 자꾸 줄어듭니다. 누구나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세상살이를 더 겪거나 부대끼면서 생각이 깊어진다든지 슬기를 길어올린다든지 하기 마련일 텐데, 《크로스게임》을 거쳐 《Q 앤드 A》로 오는 요즈음에는 ‘앙증맞게 보이려는 그림’은 있으나 ‘앙증맞으며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삶’은 그예 수그러드는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읽을 사람은 읽고, 즐길 사람은 즐기겠지요. 좋아할 분은 좋아할 테고, 아낄 분은 아껴 주겠지요. 다만, 싱거우며 텁텁한 맛을 만화쟁이 스스로 좋아하신다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나, 싱거우며 텁텁한 맛을 자꾸자꾸 선보이다 보면 ‘인기’보다 ‘만화에 담는 사랑’과 ‘만화로 나누는 즐거움’이란 시나브로 옅어지다가는 아스라이 사라집니다.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연예인과 비슷하게 인기로 먹고산다고도 하지만, 인기란 그림을 더 귀엽게 그린다든지 계집아이 속옷을 자주 그린다고 찾아들지 않습니다.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 또한 ‘소년 만화’라 할 터인데,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에는 ‘계집아이 속옷 들추기’ 그림이 어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계집아이 속옷을 자꾸 들춰 보이려 한다고 해서 조회수가 높아지거나 인기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터치》는 ‘고전’으로 손꼽을는지 모르나, 《터치》나 《러프》나 《H2》처럼 손꼽는 고전 몇 가지를 뺀 다른 작품은 구슬픈 물거품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이야기 있는’ 만화를 그릴 줄 알던 만화쟁이가 ‘이야기 없는’ 만화로 허덕이다가 그만 인기고 밥벌이고 만화고 뭐고 모조리 수렁에 휩쓸려 버리지 않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만화는 만화다운 길을 걸어야 하고, 삶은 삶답게 일구어야 합니다. 만화를 빚어 책이라는 그릇에 담는 일은 책을 하찮게 여겨서는 빛을 보지 못합니다. (4343.11.2.불.ㅎㄲㅅㄱ)
― Q 앤드 A (1∼2)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강동욱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9.15./4500원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