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글쓰기


 아이가 새벽 두 시 반부터 깬다. 잠들 줄을 모른다. 세 시 반이 지나고 네 시 반이 지나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디가 아픈가.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었을까. 다섯 시 반이 되니 자리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아빠를 부른다. 엄마는 깊이 잠들어 아이가 불러도 대꾸를 못한다. 한숨을 깊이 내쉬며 되도록 따스한 말씨로 아이를 부른다. “왜, 쉬 마렵니?” 살짝 생각하는 눈치이더니 “응, 쉬 마려.” 한다. “그래, 쉬 하자.” 하며 기저귀를 벗기고 오줌걸상에 앉힌다. 아이가 쉬를 눈다. 아이를 품에 안다가 살며시 눕혀 다시 기저귀를 채운다. 기저귀를 다 채운 다음 아이를 번쩍 안고는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이가 너무 칭얼거린다면서, 아빠 몸이 고단하다면서, 이 핑계 저 둘러대기로 아이를 한결 따스히 어루만지지 못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맨 먼저 〈겨울 물오리〉를 부른다. 두 번 더 부른다. 〈한 아이〉를 부르고 〈순복이〉를 부르며 〈우리 어머니〉였나를 부르고 〈우는 소〉였던가를 부른다. 노래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노래말도 잘 떠오르지 않아 떠오르는 대목부터 부르고는 다시 처음부터 부른다. 가운데쯤부터 부르다 보면 첫머리가 떠오른다. 〈해바라기〉를 부르고 〈찔레꽃〉이었던가를 부른다. 두 가락쯤은 백창우 님이 노랫말을 붙인 노래이지 싶으나, 다른 모든 노래는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도 괜찮다고 여기지만, 난 다른 어느 노래보다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노래가 좋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때에는 으레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읊는다(노래를 지으며 시 몇 글월을 조금 바꾸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마룻바닥에. 콧등에 땀이 송송 더우신가 봐. 부채질 해 드릴까. 그러다 잠 깨실라.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콧잔등에 잔주름 들도 예뻐요. 부채질 가만가만 해 드립니다.”,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 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두렵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할아버지가 대로 엮은, 커다란 광주리에, 호박만 한 풍선을 천 개쯤 매달고, 쌍둥이 강아지와, 해바라기씨를 가득 싣고, 엄마가 계시는 별을 찾아간다던, 철길 옆 오두막의 눈이 큰 순복이는,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까, 첫 별이 뜰 때부터, 사립문에 기대 서서, 빨간 스웨터 주머니의, 호두알을 부비며, 으음 요즘도 엄마별을 기다릴까.”

 어쩌면 아이한테 불러 준다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만 사랑스럽거나 포근한 노래가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럽거나 포근해지도록 이끄는 노래는 아닐까. 어버이라고 안 졸립고 안 지치며 안 힘들겠나. 졸립고 지치며 힘들면서도 기꺼이 자장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이 노래에 있지 않으려나. 누구보다 어버이 스스로 따스하게 감싸면서, 이 따스함으로 아이를 함께 넉넉히 어루만지도록 이끄는 노래가 자장노래가 아니랴 싶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는 자장노래로 아이하고 함께 즐길 만하기는 어렵고, 한낮에 재미나게 부르며 마음껏 뛰노는 노래로는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한참 노래를 부르니 아이가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다. 노래 몇 가락 더 부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 눕히며 가슴을 토닥이는데,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엉? 엉? 아빠 코 자? 코 자?” 하고 말을 건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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