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과 글쓰기


 새벽 네 시에는 일어나야 하루를 알뜰히 열어 알차게 보낸다고 느낀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면 더욱 알뜰살뜰 보낼 수 있을 텐데, 세 시나 두 시부터 일어나 하루를 열면 몸이 좀 찌뿌둥하다. 다섯 시에 일어나면 빠듯하게 몰아쳐야 하니까 적잖이 어수선하거나 벅차다. 새벽 다섯 시를 넘겨 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로서는 늦잠이다. 나한테는 새벽 네 시부터 하루를 열며 글쓰기를 하는 삶이 가장 알맞고 좋다.

 그런데 아이 하나를 키우는 삶으로서 이맘때가 가장 좋은데, 아이가 둘이라면 어떠하려나. 스물일곱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한테 동생이 생겨 둘째를 첫째와 마찬가지로 돌보고 보듬으며 복닥이며 지내는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면 내 하루는 언제 열어야 좋으려나. 그때에도 새벽 네 시에 느긋하게 홀로 글쓰기를 하며 마음닦이를 할 수 있는가. 아이 하나와 함께 살아가며 빨래감이 비로소 조금 주는구나 하고 느끼는데 다시금 기저귀 빨래 왕창 나오는 아이키우기를 해야 한다고 할 때, 내 글쓰기이며 사진찍기이며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아이 두셋씩 키우면서도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바깥일을 해내는 적잖은 분들을 보면 몹시 놀랍다. 이분들은 언제 책을 읽고 언제 글을 쓰며 언제 밥을 먹으려나. 밥을 입으로 먹을까 코로 먹을까 귀로 먹을까.

 겨울 새벽 하얗게 밝는 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본다. 시골집에서는 새벽이 하얗게 밝아 오더라도 시끄럽지 않다. 도시 골목집에서조차 새벽이 다가올 무렵 얼마나 시끌벅적한지 모른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골목집에 깃든 사람들이 새벽과 아침을 조용하면서 느긋하게 맞이하고파 하는 줄 모르는 듯하다. 큰길에서면 모르되 왜 골목길에서조차 자동차를 그리 거칠고 시끄럽게 몰까.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은 왜 골목길에서도 그리 떠들썩하게 굴면서 지나갈까.

 이제 나무마다 가랑잎을 내고 멧자락에 먹을거리가 떨어질 즈음이 되니, 작은 멧새들이 새벽녘부터 우리 살림집 둘레로 찾아든다. 밤에 잠을 자다 보면 우리 살림집 문에 콩콩 쿵쿵 뭔가 부딪는 소리가 난다. 다람쥐이거나 족제비이거나 오소리이거나 너구리일 테지.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은 밀가루를 일부러 문간에 뿌려 놓고 짐승 발자국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단다. 시튼 님이 살던 예전처럼 큰곰이나 늑대나 여우가 이 나라 멧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지는 못한다. 고작 몇 가지 멧짐승밖에 없다.

 지난주에 멧자락을 타며 버섯을 딸 때에 고라니 똥을 보았다. 이 나라에서는 멧돼지도 그리 많지 않고 노루나 사슴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멧돼지 때문에 밭농사 망친다는 곳이 제법 있는데, 지난날을 헤아린다면 요즈음 멧돼지는 멧돼지라고조차 하기 힘들다. 멧돼지가 멧자락에서 먹이를 찾을 수 없도록 고속철도를 뚫고 고속도로를 내며 공장을 지으니까 어쩔 수 없잖은가.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분들은 이 나라 정부나 건설회사한테 땅을 팔면 안 된다. 농사짓던 땅이나 너그러운 멧자락이 기찻길이나 찻길이나 공장터나 아파트가 되지 못하도록 막아 주어야 한다. 이렇게 막아내지 못하니까 멧돼지가 밭을 파헤쳐 먹이를 얻으려 한다.

 새벽 네 시쯤 하루를 열며 글을 쓰고 있자면, 새소리는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이나 여섯 시 십 분 사이에 맨 처음으로 들린다. 여섯 시 반부터 새소리가 꽤 많이 들린다. 겨울을 코앞에 두니까 이즈음 들리는데, 이제 이곳 멧기슭 살림집에서 겨울을 난 다음 새봄을 맞이하고 새여름을 즐길 수 있다면, 그때에는 멧새가 봄이랑 여름에는 언제부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새 하루를 여는지 남달리 알 수 있겠지. 멧새 모이통을 하나 마련해 볼까. (4343.1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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