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마음


 제아무리 훌륭한 책을 읽었다 할지라도 이 책 하나를 이야기하는 글은 곧바로 써낼 수 없습니다. 고작 쓴다는 글이라고 해 봐야 ‘이 책 참 대단히 훌륭합니다’쯤입니다.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책을 이야기하려는 글이라 한다면 ‘이 책 참 훌륭하다’라고 밝히지 않으면서 넌지시 아름다움이 무엇이요 훌륭함이 무엇이며 참됨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 하나로 내 삶부터 어떻게 거듭나거나 달라지고 있는지를 낱낱이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온누리에 가득한 숱한 책느낌글을 읽거나 살피면서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일이 퍽 드뭅니다. 낯이 간지러운 부추김글은 널렸어도, 낯이 환해지는 보살핌글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을 읽은 넋이라면 좋은 삶을 가꾸는 좋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좋은 글을 써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좋은 책을 읽고도 좋은 글을 일구지 못한다면, 이이는 좋은 책을 읽지 못한 셈입니다. 좋은 책에 깃든 좋은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릇입니다. 좋은 책이 왜 얼마나 어떻게 좋은가를 느끼지 못한 탓입니다.

 책느낌글을 쓸 때마다 저 스스로 지나온 내 모습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백 꼭지에 이르는 책느낌글을 썼다면 백 꼭지째 책느낌글은 첫 꼭지째 책느낌글하고 견줄 수 없는 제 알찬 삶입니다. 왜냐하면 첫 꼭지부터 백 꼭지까지 모두 백 차례에 이르도록 거듭나고 탈바꿈을 해 왔으니까요. 오백 꼭지째 글을 썼다면 오백 차례 새로 태어난 셈이요, 즈믄 꼭지째 글을 썼으면 즈믄 차례 다시 태어난 셈입니다.

 그런데 이냥저냥 대충대충 얼렁뚱땅 글을 쓴다 해서 늘 거듭 태어나는 셈이 아닙니다. 참되고 착하고 곱게 살아가며 글을 써야 비로소 새로 태어나는 셈입니다. 다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와 제 손가락이 홀가분하게 움직이며 글을 쓸 때까지 기다리고 견디고 삭입니다. 두 번 읽어야 하는지 세 번 읽어야 하는지, 다 읽고 곰곰이 되씹으며 한 해를 보내야 할는지 두 해를 지내야 할는지 가만히 기다리고 참으며 녹입니다.

 자랑하려고 읽는 책이 아닌 만큼, 자랑하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내세우려고 사들이는 책이 아니듯이, 내세우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우쭐거리고자 들먹이는 책이 아니라, 우쭐거리고자 들먹이는 글이 아닙니다. 제 모두를 쏟아 읽으면서 제 모두를 씻어 보듬으려는 책이면서 글입니다. 제 발걸음을 디뎌 생각하면서 제 삶자락을 추슬러 살아내려는 책이면서 글입니다.

 덜 읽었으면 마저 읽어야 하고, 덜 삭였으면 다시금 삭여야 하며, 덜 느꼈으면 더 느끼도록 애써야 합니다. 쌀을 씻어 알맞게 불 때까지 기다리고, 불린 쌀이 알맞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잘 지은 뜨거운 밥이 알맞게 식을 때까지 기다리며 밥술을 듭니다. 한 번 더 마음을 쏟을 줄 안다면, 내 손아귀에 쌀알이 들어오는 길을 돌아볼 터이고, 두 번 더 마음을 쏟을 줄 안다면, 내 손에 낫자루와 괭이자루를 쥐어 땅을 일구어 나락을 얻으려 할 터이며, 세 번 더 마음을 쏟을 줄 안다면, 내 목숨을 이어 주는 고마운 바람과 물과 흙과 해 모두를 사랑하며 엎드려 절을 할 테지요. 책읽기란 삶읽기이고, 삶읽기는 삶쓰기인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4343.5.3.달.ㅎㄲㅅㄱ) 

(이런 글을 5월에 진작 써 놓은 줄 오늘 비로소 새삼스레 깨닫다. 써 놓고 곧장 올리지 못한 일이 이제 와서 생각하니 고맙다. 내가 쓴 글이든 남이 쓴 글이든, 그때뿐 아니라 나중에 읽어도 가슴으로 와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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