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와 글쓰기


 자전거는 ‘잔차’라고도 일컫는다. 두 글자로 줄여 일컫는 이름인데, ‘잔차’라는 이름을 듣거나 말해야 할 때에는 살짝 소름이 돋는다. 이때에는 자전거 또한 여느 자동차와 매한가지로 ‘차’라는 느낌이 짙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내 두 다리와 마찬가지인 자전거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이제 두 돌이 지난 딸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둘이서 신나게 읍내마실을 다니는 꿈을 꾼다. 자전거수레를 산 지 일곱 해 만에 드디어 우리 아이를 여기에 태우고 다닐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혼자 들뜨고 기쁘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놓고 오늘날처럼 자연 터전을 무너뜨리는 흐름을 뒤바꾸거나 거스를 수 있는 환경사랑 탈거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자전거길을 마련한다며 수백 수천 억이라는 돈을 퍼붓는단다. 그러나 자전거 삶이란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북돋우는 정책은 돈으로 펼칠 수 없다. 자전거 정책은 사람이 할 정책이고, 자전거 즐기는 삶이란 사람들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삶이다.

 아이가 없을 때부터 나랑 한몸이 되어 주던 ‘허머(hummer)’라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아마 나하고 십만 킬로미터 넘게 달렸을 텐데, 처음 이 자전거를 헌 것으로 살 때 부속이 아직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자전거를 처음 산 뒤로 여러모로 삐걱거렸기에 여러 자전거집에 들러 꽤 자주 퍽 많이 손질했는데, 들르는 자전거집마다 ‘어, 이 자전거에 왜 이리 싸구려 부속이 붙어 있지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예나 이제나 자전거 부속 급수에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 튼튼하고 신나며 즐겁게 탈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자전거집 일꾼들은 내가 2004년 즈음에 헌것으로 산 이 자전거에 치른 돈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아마 자전거집 일꾼들 말이 모두 옳으리라. 난 틀림없이 바가지를 썼으리라. 그러나 나로서는 지난 예닐곱 해에 걸쳐 ‘자전거값을 뽑고 남을 만큼 즐겁게 이 자전거와 함께 살았’다. 나로서는 이뿐이다. 내 삶을 즐기고 내 몸을 놀릴 수 있으면 고맙다.

 나로서는 내 삶을 즐기며 내 넋을 담을 수 있는 글쓰기이면 고맙다. 글 한 줄을 써서 돈을 번다든지 이름을 높인다든지 할 수 있겠지. 나는 자원봉사로 여러 매체에 글을 써 주는데, 어제 이들 가운데 한 곳에서 글삯을 보내 주겠다며 전화를 두 차례 걸었다. 손사래치다가 안 되어 글삯을 받기로 했다. 아직 은행계좌를 살피지 못해 얼마나 넣으셨는지 모를 노릇인데, 나한테 넣은 글삯만큼 이 매체에 도움돈으로 돌려주려고 생각한다.

 시골길을 달리며 길가에서 쉬는 나비와 메뚜기와 잠자리를 다치지 않게 하며 서로 오붓한 벗이 될 수 있는 자전거 타기를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내 터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대로 아이와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글쓰기를 두고두고 즐기고 싶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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