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원짜리 새책
우리 나라 책마을이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김성재-출판현장의 이모저모》(일지사,1999)라는 책을 틈틈이 들춘다. 우리교육 출판사에서 소식 한 가지를 띄운다며 ‘모둠 알림 편지’로 보낸 이야기 하나를 며칠 앞서 읽다가 울컥한다. 《출판현장의 이모저모》를 새삼스레 들춘다. 김성재 님이 1997년에 쓴 〈‘재고도서’라는 말과 할인판매〉라는 글을 읽는다.
.. 휴면도서를 덤핑으로 처분하는 것은 출판경영의 합리화와는 동떨어진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출판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출판사는 물론 서적상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며, 독자에게도 해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도서의 정가제마저 아예 무너뜨리게 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면 먼저 장서를 충실하게 하고 덤핑 서적 따위의 부실한 도서부터 솎아 내는 일을 해야 마땅하다 .. (127∼128쪽)
우리교육 출판사는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을 내세워 다달이 내던 잡지 《우리교육》을 그만 내기로 하면서 《우리교육》을 만들던 일꾼을 모두 내쫓았다. 이러면서 잡지 《우리교육》이 아닌 ‘전교조 기관지’로 바꾸어 전교조 회원 교사가 싼값으로 한 해에 네 번 받아보도록 틀을 바꾸었다. 교육노동자 인권과 권리를 지키려 만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요, 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참된 배움을 교사와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 나란히 누리는 데에 길잡이가 되도록 하려고 내놓던 잡지 《우리교육》이다. 잡지 《우리교육》은 그동안 ‘전교조 기관지’가 아닌 ‘읽을 만한 좋은 배움 잡지’ 노릇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우리교육 출판사 사장과 전교조 대표는 이런 《우리교육》을 무너뜨렸고, 이제는 ‘우리교육 출판사에서 내놓았던 알찬 어린이책’을 한 권에 2000원씩 싸게 판다고 널리 알린다. 나한테 온 누리편지를 보고 출판사 누리집에 들어가 보면 “여름방학 어린이책 파격! 균일가전!! 쑥쑥문고와 힘찬문고를 권당 2000원으로 구매하실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는 말을 붙인다.
우리교육 출판사 낱권책은 헌책방에서 한 권에 2000∼2500원씩에는 팔린다. 아주 싸게 파는 데라면 1500원에 팔기도 하지만 이렇게 파는 헌책방은 퍽 드물다. 헌책방 일꾼은 당신 스스로 ‘책 값어치’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장과 간부와 일꾼은 당신 출판사 이름뿐 아니라 책 값어치마저 하루아침에 와르르 허물고 만다.
우리교육 출판사는 이번 ‘새책 2000원에 팔기’를 하면서 ‘재고도서 처분’에다가 ‘맞돈을 제법’ 손에 쥘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맛들인 떨이 넘기기가 이번 한 번으로 그칠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이번 한 번으로 그치는 떨이 넘기기라 할지라도, 떨이 넘기기를 한 번이라도 하는 출판사 앞날은 내다 보고 싶지 않다. 제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할지라도 떨이로 내다 팔면 쳐다보기 싫다. 훌륭한 책은 알맞고 마땅한 값으로 사고팔아야 한다. 좋은 책은 ‘책에 적힌 값’ 그대로 사고팔아야 한다. 헌책방에서 파는 값보다 싸게 팔아치우려는 셈속으로 책마을을 흔드는 못난 짓을 하는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은 그지없이 볼썽사납다. 우리교육 출판사 사장과 간부와 일꾼은 스스로 얼마나 밉고 슬프며 괘씸한 짓을 저지르는지 깨달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바보짓을 하는 출판사에 당차게 사표를 내고 나오는 일꾼은 있을까?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짓이 일어나지 않도록 머리띠를 질끈 묶고 사표를 걸며 다부지게 맞서 싸우는 일꾼은 있는가? (4343.9.28.불.ㅎㄲㅆ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