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22 :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셔요? 



 저는 모르는 책이 참 많고, 못 읽은 책이 참 많으며, 못 읽을 책 또한 참 많습니다. 아직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님 책은 한 가지조차 읽지 않았거나 읽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님을 좋아하거나 그리 안 좋아하거나 이분 책을 읽은 분 가운데 다른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골고루 샅샅이 읽은 분은 없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 책을 읽으면 다른 한 가지 책은 읽을 수 없습니다.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 하여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할지라도 골라서 읽을 뿐, 모두 읽을 수 없으며 모두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스스로한테 가장 알맞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 저 나름대로 살아가듯, 우리들은 누구나 저마다 스스로한테 가장 알맞고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을 뿐입니다.

 잘난 책읽기이든 못난 책읽기이든 따로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결에 따라 살아가며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마주하는 가운데 스스로 좋아하는 모습대로 내 몸과 마음을 가꿉니다. 내가 고른 책이 훌륭한 책이든 어설픈 책이든 우리로서는 좋은 알맹이를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고른 책이 빼어난 책이든 멋진 책이든 우리로서는 나쁜 버릇에 물들 수 있습니다.

 어제 동네 헌책방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 코끼리공장의 해피엔드》(백암,1993)가 보이기에 집어들어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소설은 어떠한지 잘 모르나 수필은 참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87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번역은 꽤 엉망이라고 느끼면서도 이 글월에 담긴 글쓴이 마음은 기쁘게 헤아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 생각이자 삶은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얼추 같다”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내 삶부터 올바르고 아름답게 잘 꾸려야 한다는 소리랍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내 삶부터 좋은 삶이 되도록 잘 추스려야 한다는 소리이고요.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일 테지요? 그지없이 옳은 말씀일 테지요?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 마땅하고 옳은 글월을 마땅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옳게 새기지 못합니다. 그냥 책 한 귀퉁이에 실린 글줄로 읽고 잊습니다. 고운 삶이란 하루키 님 책에만 있지 않고 우리 둘레에 두루두루 있는데. 맑은 삶이란 하루키 님 소설에만 있지 않고 우리 터전에 구석구석 있는데. 참된 삶이란 하루키 님 수필에만 있지 않고 우리 이웃이나 살붙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데.

 어떤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다룬 이야기나 바라본 사람들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 삶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꿈꾸며 가꾸는 삶을 좋아하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 문학을 읽는 내 삶과 내 몸뚱이와 내 손길과 내 삶터를 좋아하시나요? (4343.5.8.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