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윤구병의 생태 에세이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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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닮고 자연스럽게 꾸리는 삶이란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0] 윤구병,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자연을 버린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고 하면 거짓말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연을 닮거나 자연과 가깝게 나아간다고는 하지만 자연이 있다거나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도시 터전이라고 느낍니다.

 요즈ㅊㅍ음은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마저 ‘푸른 아파트’임을 내세웁니다. 아파트라고 하는 공동주택은 산을 깎거나 갯벌을 메우거나 논밭을 뒤집어서 세우고 있는 데에도 ‘푸른’ 아파트라고 스스로 밝힙니다. 자연을 닮은 집이라 할 때에는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지어야 하며, 나중에 낡아서 허물어야 할 때에 자연에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하는데, 아파트라고 하는 공동주택 가운데 처음 지을 때에나 나중에 허물 때에나 자연을 걱정하는 집짓기란 없다고 느낍니다. 더구나 아파트에서는 물과 전기와 가스와 기름을 ‘고지서’로 헤아릴 뿐, 우리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돌아보기 어렵습니다.

 요사이 널리 퍼지는 말마디로 ‘환경친화’와 ‘생태’와 ‘웰빙’이 있습니다. 이 말마디는 우리들이 누리는 물질문명이나 자본주의 사회로는 앞날이 시커멓다고 깨달으면서 하나둘 불거집니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한다’거나 ‘환경과 사람이 하나로 된다’는 테두리까지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공산품이란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환경을 생각한다는 공산품이란 목숨이 얼마나 되며, 나중에 이 공산품이 쓸모를 다해 쓰레기로 버려야 할 때에 어느 만큼 자연으로 조용히 녹아들 수 있을까요. 자동차가, 자동차 바퀴가, 자동차 오가는 아스팔트길이란 ‘환경친화’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물질문명이 될 수 있을까요. 거름으로 써야 마땅한 똥오줌이지만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똥오줌을 거름으로 쓰기 힘들어진 터전에서, 우리들은 어떤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면서 무슨 돈을 벌고 내 삶을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고 있을는지요.

 나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하루하루일는지 궁금합니다. 나와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들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고 즐기도록 가꾸는 하루하루일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들이 먹는 밥이란 모두 자연에서 얻는데, 밥이 되는 푸성귀이든 고기이든 어떻게 얻는지를 도시사람으로서 어느 만큼 깊고 넓게 살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날푸성귀를 먹는달지라도 손수 길러서 먹는지, 사다가 먹는지, 또 이 날푸성귀를 제대로 가리고 골라서 먹더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과 품는 넋과 주고받는 말이란 얼마나 ‘환경과 자연과 생태를 사랑하거나 생각하거나 걱정하거나 마음을 쓰면서’ 하는 일이요 품는 넋이요 주고받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 어느 날 새 기술이 개발되면 이제까지 유용하던 기술이 그 기술을 지닌 전문가까지도 포함해서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 입으로 ‘반미’ 외치면 무얼 하나. 쌀만 겨우 90퍼센트쯤 자급이 되고 밀과 보리, 콩 같은 그밖의 주곡 자급률은 5퍼센트 남짓밖에 안 되는걸 … 근대화도 경제개발도 살자고 하는 짓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이윤에 있으면 이윤을 얻는 한 사람이 잘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못살게 된다 ..  (26, 33, 69쪽)


 전라도 변산에서 농사짓는 두레마을을 이루고 있는 윤구병 님이 쓴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책이름을 올바르게 적는다면 “자연이라는 밥상에 둘러앉다”이거나 “자연스러운 밥상에 둘러앉다”이거나 “자연을 사랑하는 밥상에 둘러앉다”가 아니랴 생각합니다. 아무튼, 자연을 내버리는 이 나라에서 자연을 보듬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려는 농사짓는 두레마을이요, 자연하고 등돌리는 이 겨레 사람들한테 자연을 얼싸안는 넋을 나누며 농사짓는 두레마을이고, 자연을 짓밟는 이 누리에서 자연을 쓰다듬는 매무새를 기르며 농사짓는 두레마을에서 보내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책입니다.


.. 비가 내리고 난 뒤 쌀쌀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물에 불은 콩을 주웠다. 떨면서 한나절 동안 허리 한 번 제대로 펴 보지 못하면서 주운 콩이 한 됫박이나 될까. 돈으로 바꾸자면 누가 2000원도 주지 않으리라. 그 시간에 대기업 사보 같은 데에서 온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원고를 썼으면 100배쯤 높은 고료를 받아 챙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실없는 생각도 뒤늦게 떠올랐지만 콩을 줍는 순간에는 밭에 널린 흰콩밖에 보이지 않았다 … 모든 살아 있는 것은 흙을 딛고 서 있다 … 자연이란 그저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라 생명체들이 자라고 열매 맺고 뛰노는 커다란 삶터이고, 사람도 생명계의 한 구성원인 만큼 이 커다란 생명 공동체에서 그야말로 ‘한살림’을 하지 못하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31, 83, 134쪽)


 머리를 굴려 적바림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 농사짓는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적바림한 글이 깃든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입니다. 그러나 농사짓기 열 몇 해라 하더라도 옹근 농사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또한 옹근 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는 글쓴이 윤구병 님이 스스로 밝힙니다. 당신이 제아무리 시골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또한 농사짓는 두레마을을 이루어 농사짓기 열 몇 해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아직 모르는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들나물 멧나물을 손질해서 나물하기를 다 모르며, 책 곳곳에 나오듯 윤구병 님 당신이나 농사짓는 두레마을 일꾼들이나 ‘불량식품 몰래 맛나게 먹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책을 덮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농사짓는 삶으로 거듭난 지 열 해가 되었어도 이렇게 ‘도시에서 살던 버릇’을 떨치기 힘들다면 농사짓는 삶으로 거듭난 스무 해가 되어도 힘들지 않으랴 하고. 서른 해가 된다 한들 얼마나 나아지겠으며, 마흔 해가 된다 한들 어느 만큼 알차거나 알뜰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열 해가 되어도 도시 티를 못 벗을 수 있으나 한 해 만에 도시 티를 벗는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더 모질게 먹거나 단단히 품으면서 도시 내음을 걷어치운다든지 도시 빛깔을 접을 수 있으면, 한 해가 아닌 한 달 만에도 아름다운 농사꾼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지요. 윤구병 님은 ‘대기업 사보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고 글에서 밝히지만, 대기업 사보를 들추면 ‘자주’는 아니나 ‘틈틈이’ 당신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출판사 일로 달마다 여러 차례 서울마실을 하느라, 시골에 살면서도 시골사람으로 시골살림을 꾸리는 삶이란 반토막이라고 할까요.

 윤구병 님이 좀더 옹근 농사꾼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비내린 뒤 쌀쌀한 날씨에 콩을 주으면서 대기업 사보를 떠올리며 품값을 셀 노릇이 아니라, 비내린 뒤 쌀쌀한 날씨에 콩을 줍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적바림하면서, 비내린 뒤 달라진 콩밭 모습과 시골 논밭 모양새를 써 내려 갈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삶에서는 놀라운 주의주장이나 철학 또한 어느 만큼 값이 있을지라도, 이보다는 삶에서 묻어나오거나 우러나온 이야기만큼 사람들한테 애틋하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으니까요. 짜릿한 뒤집기 한판이 펼쳐지는 운동경기를 볼 때에도 즐겁다 할 만하지만, 동무들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금긋기놀이를 하거나 돌치기놀이를 하면서 웃음꽃을 터뜨릴 때에도 즐겁습니다. 어느 쪽이 더 크고 신나는 즐거움이라고는 잘라말할 수 없습니다만, 윤구병 님이 도시에서 얻은 ‘교수님’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시골에서 얻으려는 ‘농사꾼’이라는 이름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운동경기 이야기가 아닌 고무줄놀이 이야기 쪽으로, 대기업 사보 글삯 이야기가 아니라 농사짓는 삶으로 열 해를 보내며 얻거나 깨달은 거룩하고 놀라운 즐거움 이야기로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를 차곡차곡 채웠어야 하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 도시에서 사람을 뺀 다른 생명체들이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는 까닭은 도시인들의 위생 관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 때문인지도 모른다 … 나는 한때 거시경제학이나 정치경제학 같은 것에 빠지고 《자본론》을 줄을 그어 가며 열심히 읽은 적도 있다. 그리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대한 이론을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 받아들인 적도 있다. 그런데 10년 남짓 농사지으면서 그걸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189, 198쪽)


 다시금 책을 펼쳐 읽습니다. 윤구병 님은 시골을 버리고 도시에서 살다가, 홀로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와서 살아갑니다. 시골살이 열 몇 해 삶자락을 책 여러 권으로 한꺼번에 내놓습니다. 바쁘고 힘겹다 하는 시골살이라 하지만 열 몇 해에 걸쳐 적바림한 글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시골사람이었고 예순 해 일흔 해에 걸쳐 시골사람인 농사꾼들은 책을 써내지 못합니다. 또는 책을 써내지 않습니다. 굳이 책으로 써내지 않더라도 스스로 아름다운 삶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농사꾼 삶을 책으로 펴내려고 하는 출판사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었다가 농사꾼이 된 사람들 귀농일기는 곧잘 책으로 내놓는 책마을이지만, 처음부터 농사꾼이었던 사람들 농사일기는 한 번도 책으로 내놓지 않은 책마을이거든요.

 이는 나라안이나 나라밖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농사꾼 스스로 농사꾼 삶을 글로 남겨 책으로 내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아마, 구멍가게 장사꾼 또한 당신 삶을 글로 남겨 책으로 내는 일이란 거의 없겠지요. 저잣거리 장사꾼들은 어떠할까요. 장돌뱅이와 배무이와 목수들 삶은 어떠할까요. 큰회사 씨이오라는 분들은 당신 자서전을 끝없이 내놓습니다만, 신집 할배나 나물장수 할매 삶을 당신들 스스로 글로 남기라고 이끌거나 가르칠 만한 초중고등학교 교사나 대학교 교수는 몇 사람이 있을까요.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 삶을 고이 여기거나 살가이 눈여겨보면서 꾸밈없이 글로 써내거나 사진으로 담아내거나 그림으로 그려내는 분은 얼마나 되나요.


.. 또 부자들이나 밥상에 올리는 비싼 ‘유기농 식품’으로 수지를 맞출 생각을 말고도 가용을 쓸 마련이 있어야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꼬 ..  (18쪽)


 유기농 먹을거리란 ‘똥오줌을 삭여 거름을 내어 지은 곡식’을 가리킵니다. 몇몇 부자들이 적잖은 돈을 들여 ‘몸에 좀더 좋다는 먹을거리’를 즐기기도 한다지만, 유기농 먹을거리란 부자들만 즐기는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착하고 참된 농사꾼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먹을거리이고, 도시에서는 생활협동조합을 이루면서 도시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건사하며 아이들과 맑고 맑은 나날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모두는 따순 손길이기도 합니다. 거름을 내어 지은 곡식이 ‘조금 더 비싼’ 까닭은 풀약을 치고 항생제를 먹여 좀더 손쉽게 더 많이 거두는 곡식이 아니라, 곡식부터 맑고 밝게 키우고자 땀을 들이고 힘을 들이기 때문에 땀값이 ‘마땅한 일삯’으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변산 농사짓는 두레마을에서 일군 먹을거리 또한 ‘여느 먹을거리’와 견주면 값이 셉니다. 설마 변산 농사짓는 두레마을에서 부자들 밥상에 비싼값으로 내다 팔 농사를 짓지는 않을 테지요. 그리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농약에 찌든’ 먹을거리가 아닌 ‘깨끗하고 더 나은’ 먹을거리를 먹어야 하며,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삶을 옳게 바라보고 자연을 꾸밈없이 껴안으면서 맑고 밝은 사람으로 거듭나며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만 잘살면 되는 온누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잘살아야 할 온누리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든 머리 나쁜 사람이든 잘생긴 사람이든 못생긴 사람이든 잘못을 안 저지르는 사람이든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이든 누구나 고르게 권리를 누리며 착하고 곱게 살아가야 할 온누리입니다.

 물과 불과 땅과 바람이 뭇목숨을 살리는 힘이라지만, 물과 불과 땅과 바람만으로는 뭇목숨을 살리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너른 믿음과 따뜻한 사랑과 넉넉한 손길과 착한 매무새가 함께해야 합니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라는 책에서 윤구병 님은 물과 불과 땅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시골마을 논밭 일구는 농사꾼 땀방울이 얼마나 값있는가를 날카롭게 짚어내어 차근차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카로움에 한결 보드랍고 더욱 싱그러운 믿음과 사랑과 손길과 몸짓을 어우러 놓는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4343.4.9.쇠.ㅎㄲㅅㄱ)


 ┌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휴머니스트,2010)
 ├ 글 : 윤구병
 └ 책값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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