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02 : 손빨래 하지 말라구?

 하루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다가 주안역에서 빠른전철을 내립니다. 몇 분쯤 서서 기다리는데 타는곳 둘레로 라디오 목소리가 흐릅니다. “손빨래는 하지 말고 세탁기로 하며, 무거운 짐은 들지 않도록 하고, 마우스는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쓰고 …….” ‘뭐야?’ 하면서, 읽던 책을 한동안 덮고 귀를 기울입니다. 라디오 목소리는 ‘셈틀 앞에서 오래도록 지내는 도시사람이 손목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젠장!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손빨래가 손목에 안 좋다니, 그저 전기 먹는 기계를 끝없이 쓰고 또 쓰라는 소리인가? 걸레조차 빨지 말고, 걸레질조차 하지 말라는 소리인가? 설거지는? 밥하기는? 자전거 타기는? 걷기는? 무거운 짐을 들지 말라는데, 이삿짐 나르는 일꾼이나 도매상 일꾼은 어쩌지?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이 키우는 엄마 아빠는? 아기를 안을 생각은 접고 아기수레에만 태우고 끌고 다니거나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라고?

 제 귀에만 터무니없다고 들리는지 모르는 소리를 그만 듣고, 《하얀 능선에 서면》을 쓴 남난희 님이 2004년에 내놓은 《낮은 산이 낫다》를 다시 집어듭니다. 느린전철을 타고 도원역에서 내립니다. 밤골목 거닐며 사진 몇 장 찍다가, 배다리에 마련해 꾸리고 있는 동네도서관에 들러 이곳에 놓고 있던 스캐너를 떼어 가방에 넣고, 몇 가지 책을 챙깁니다. 다시 밤골목을 거닐며 집으로 갑니다. 김밥집에서 김밥 석 줄 삽니다. 제가 먼저 말하기 앞서 김밥집 일꾼이 까만 봉지에 착착 담아 버립니다. 빤히 어깨에 천가방을 걸어 놓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런 가방이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지 않고 따로 묻지 않습니다. 집 앞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을 삽니다. 젊은 일꾼이 까만 비닐 꺼내는 모습을 보며 얼른 손사래칩니다. 젊은 일꾼은 입맛을 다시며 까만 비닐을 구겨서 제자리에 쑤셔넣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씻고, 아침에 1권을 읽은 만화책 《크로스게임》(아다치 미치루 글ㆍ그림) 2권부터 7권까지 읽어내립니다. 졸음이 쏟아져 그대로 곯아떨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8권부터 10권까지 읽어치웁니다. 뒤엣권은 오늘 저녁에 만화책방에 들러 장만할 생각입니다.

 아침에 서울로 일하는 가는 전철길에 다시금 《낮은 산이 낫다》를 집어들어 읽다가 빈자리에 끄적끄적 이 생각 저 얘기를 적바림합니다. 문득, 남난희 님 글책이나 아다치 미치루 님 만화책이나 꾹꾹 눌러 쓰고 눌러 그린 손글이요 손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손글과 손그림 아닌 셈틀글과 셈틀그림으로 바뀔는지 모르지만, 이이들은 셈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도 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맛과 멋을 잃지 않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두 손으로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며 일구고,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쓸고닦으며 아이 돌보기까지 하는 가운데 김매기나 살림 갈무리를 하겠지요. 손으로 일하는 만큼 손힘 닿는 데까지 애쓰겠지요. 퍽 고되게 일하기도 할 테지만, 손품 팔 수 있는 테두리는 넘기지 않을 테고요. 우리한테는 오늘 하루만 있지 않고 늘 새로워질 기나긴 사람길과 사랑길이 있으니까요. (4342.10.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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