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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17 ― ‘좋은’ 진보를 꿈꾸면 ‘좋은’ 만화를 읽어야
: 데즈카 오사무, 《아톰의 슬픔》
- 책이름 : 아톰의 슬픔
- 글 : 데즈카 오사무
- 옮긴이 : 하연수
- 펴낸곳 : 문학동네 (2009.1.21.)
- 책값 : 8500원
(1) 책, 책읽기, 책삶
장마비가 끝없이 내릴 듯하더니, 어제 하루는 말끔히 개면서 날이 몹시 무더웠습니다. 집안 창문을 모조리 열어 놓아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아쉬우나마 바람 한 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밤새 후덥지근한 가운데 모기는 법석을 떱니다.
이런 더운 날, 어른들은 차가운 보리술이나 얼음커피를 떠올릴 테고, 아이들은 차가운 얼음과자나 팥얼음물이나 콜라를 떠올릴까요. 더위를 이기거나 견디면서 내 마음밭 살찌울 책 하나 읽겠다고 나설 어른이란, 또 어린이란 얼마나 될까요.
.. 뻔뻔스럽게 국민을 탄압하는 악랄한 권력자와 정치가조차도 태연한 얼굴로 ‘숲은 소중하다’, ‘동물을 보호하자’, ‘생명을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독극물을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살인병기를 개발하고 제조하지요 … 혹시 인류는 어제도, 또 오늘도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달에 착륙하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 해도 환경 파괴와 전쟁을 멈추지 않는 한 인류는 ‘야만인’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 하에 국민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상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돌프에게 고한다》입니다 … 전쟁터에서는 어디로 도망치든 결국 공포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탈출구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이라는 점이 가장 참혹한 것입니다 … 수많은 나라가 저마다 ‘정의’를 내걸고 전쟁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국가의 수만큼, 혹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창한 ‘정의’의 속뜻은, 노인부터 순진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참한 살육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6, 18, 41, 53∼54쪽)
아기 기저귀를 빠는 동안은 조금 시원합니다. 찬물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더운 날에는 아기를 여러 차례 씻깁니다. 이제 기저귀를 떼야 하니 아랫도리를 벗기거나 속옷만 한 벌 입혀 놓는데, 오줌을 가리기 앞서까지는 온 방바닥이 오줌바다가 됩니다. 그만큼 기저귀 빨랫거리는 줄지만, 하루에 열 번 남짓 걸레질을 해야 합니다. 기저귀 열 번 빨기보다 걸레 열 번 빠는 일이 한결 수월합니다.
어른 두 사람이 아기 하나한테 매여 쩔쩔맨다고 할 텐데, 이렇게 쩔쩔매는 동안 엄마든 아빠든 제 마음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어질어질 해롱해롱 아슬아슬 간당간당입니다.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사이 어느새 밥때가 다가오고, 밥때가 다가와 밥을 차려 놓으면, 아기는 제가 숟갈질을 하겠다며 한손으로 꾹 움켜쥐고 밥을 다 헤집어 놓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떠먹여 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거나 엉금엉금 내뺍니다. 한 숟갈 먹일 때마다 몇 분씩 걸립니다. 이렇게 하루 온통 바쳐 씨름을 하며 지치는 엄마 아빠가 책을 펼치기란 대단히 힘든 노릇. 뒷간에서 똥을 눌 때, 이제 지쳐 잠자리에 드러누우며 잠깐 책을 집어들지만, 겨우 잠들었다 싶은 아기는 금세 다시 깨어나 응애응애거리니 이마저도 몇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농사일이나 공장일로 고단한 일꾼은 일꾼대로, 또 장사하기 벅찬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그리고 집에서 아기하고 씨름하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국땅 사람한테 책이란 머나먼 님, 아니 멀디먼 남입니다.
.. 겉보기에 평화로운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안락하게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이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에까지 뿌리내린 것입니다 … 일본의 군부와 정보기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상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정책을 편 것이겠지요. 우리 세대는 고스란히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전쟁에 흠뻑 빠져 버린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써 온 것은, 군국주의가 남용한 영화의 효용을 거꾸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망울에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 (29∼30, 44∼45쪽)
아이가 책을 읽자면 어버이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가 바르고 착하게 크자면 어버이가 바르고 착하게 커야 합니다. 아이가 튼튼하고 씩씩하자면 어버이가 튼튼하고 씩씩해야 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어버이를 따라 합니다.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따라 합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며 절구질 시늉을 하고, 숟갈질 시늉을 하고, 빨래 비빔질 시늉을 하며, 방바닥 걸레질 시늉을 합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습니다. 어젯밤 오늘밤 그젯밤 …… 요 며칠 사이 우리 동네 사람이나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깊은밤에 술에 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제와 그끄제에는 경찰차가 와서 주정뱅이를 끌고 갔고, 어제는 ‘아마 그제나 그끄제 끌려갔구나 싶은’ 주정뱅이가 ‘x같으면 신고해!’ 하면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오늘밤이라기보다 새벽나절 너덧 시에는 어떤 젊은 사내와 계집이 술에 절은 소리로 악을 쓰며 싸웁니다. 저와 옆지기는 이 소리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깨는데, 아기도 이런 소리에 놀라서 깰까 걱정입니다. 조용할 때에는 그지없이 조용한 골목동네이지만, 동네사람이든 딴 곳 사람이든 술에 절디전 사람들이 때때로 부리는 못난 짓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옮을까 걱정입니다. 낮에는 동네 할매들이 우리 집 옆에 붙어 있는 정자에서 소주잔치를 으레 벌이며 갖은 욕을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도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우리 동네 다른 아이한테 조금도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주정뱅이 소리가 아닌, 동네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제법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동네 곳곳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팔랑거리는 소리와, 바닷가에서 큰배가 뚜우 하고 울리는 소리, 그리고 빗소리 봄이 가는 소리 여름이 오는 소리 들을 받아들이고 느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아이 앞에서 엉뚱하거나 엉망진창인 소리가 되도록 덜 가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 이 세상에 ‘한심한 아이’나 ‘나쁜 아이’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딱지가 붙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정신이 궁핍한 것입니다 … 우선 부모의 생활이 완전히 규격화되어 있지요. 빡빡한 하루 일과 속에 어린이를 적당히 끼워맞추는 게 다반사입니다 … 부모가 특별한 지위나 힘을 지닐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대세를 좇아 학력사회만 추종하며 자녀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설령 주류에서 조금 밀려난다 할지라도 자녀와 함께 자기 가정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가요? .. (58, 65∼66쪽)
곰곰이 헤아려 보면, 제가 헌책방마실과 골목길마실을 꾸준히 잇는 까닭은 제 마음과 몸을 살찌우며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옆지기와 아이를 함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책 그대로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고 싶어서, 새책방마실뿐 아니라 헌책방마실을 함께하며 책사랑 마음을 즐거이 가꿉니다. 헐어도 책이요 번쩍거려도 책이거든요. 이천 원짜리라 해서 나쁘거나 이만 원짜리라 해서 좋거나 하지 않는 책입니다. 더 넓은 길이라 하여 사람이 다니기에 좋은 길이 아니며, 더 큰 집이라 해서 더 살기 좋은 집이 아닙니다. 수수한 살림살이며 갖가지 꽃그릇이며 꽃풀나무이며, 제 눈길과 매무새를 고이 지키도록 도와주고 되돌아보도록 이끕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장만하는 책들과 골목길마실을 하면서 찍어 놓는 사진들을 떠올려 봅니다. 모두 저 혼자 좋아서 보는 책이며 찍는 사진이라 하겠습니다만, 또 이 책과 사진을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만, 그저 옆지기와 아이와 나란히 즐기고 맛보며 함께할 수 있으면 흐뭇하다고 여깁니다. 이 책들처럼 아빠와 엄마가 살고 있으며, 이 사진들처럼 아빠와 엄마는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가운데, 제 깜냥껏 어버이를 느낄 테고 동네를 느끼며 세상을 느끼리라 봅니다. 이 자람길에서 책은 아이한테 길동무가 될 수 있고, 골목길 사진은 아이한테 길눈이 될 수 있습니다.
..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더라도 일본의 역이나 빌딩 등 도시의 구조는 도저히 노인이나 장애인을 배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란 곧 모든 생물이 살기 좋은 사회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 아무리 일본인의 후각이 발달했다지만 도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코가 둔감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뒷골목 가게의 맛있는 라면 냄새는 금방 맡아도, 사계절이 변화하는 자연 속의 미묘한 향기는 알지 못합니다 … 정치인들이 더 많은 벌레와 생물들의 이름, 그리고 그것들의 서식지와 수명, 먹이까지 상세히 안다면, ‘이 공원에는 무슨 나무를 심어서 이런 새들이 찾아오도록 해야겠다’는 식의 녹색행정을 펼쳐, 숲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푸른 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정도도 한낱 꿈으로 여겨야 한다면 너무 슬픈 일입니다. 이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닌,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 (81, 86, 132쪽)
옆지기나 저나, 우리 아이가 더 많이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 스스로 더 많이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옳다면 그 한 가지 옳은 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우며 남다른 한결 옳고 바람직한 길이 있다 해서 반드시 그 길로만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길을 가되, 우리 둘레에 어떤 이웃이 어떻게 애쓰고 힘쓰는가를 헤아리거나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책읽기를 이어갑니다. 고단하고 지치는 하루하루이지만, 다문 몇 쪽이라도 펼치고자 하며, 미처 못 읽어낼 책이라 하여도 ‘이런 책은 다른 사람이라도 볼 수 있도록 사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동네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이든, 눈을 뜨려 하고 생각을 열려 하며 마음을 넓히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한테 내밀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조촐하게 동네도서관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2) 만화, 만화책, 만화쟁이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드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데즈카 오사무 만화 가운데 무엇을 보았나요?” 하고 여쭈어 본다면, “글쎄요…….” 하고 뒷통수를 긁적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 이름나고 널리 읽힌 《우주소년 아톰》마저 첫 권부터 끝 권까지 찬찬히 펼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붓다》를 스무 해쯤 앞서 ‘고려원미디어’에서 우리 말로 옮겨서 펴낸 적이 있음을 아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 우리 나라 과학잡지에 ‘아톰’ 해적판이 이어실린 적이 있기도 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 역사를 다룬 만화를 곧잘 그리기도 했고, 《밀림의 왕자 레오》라든지 《사파이어 왕자》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작품 이름을 댄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보았다’고 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있기는 있어도 이 만화들이 무엇을 보여주려 했고, 무슨 생각을 나누려 했으며, 아이들한테 이런 만화영화를 선물해 주고자 한 만화쟁이 속내를 헤아리는 분은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 어린 시절, 나는 다카라즈카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였던데다가 막 전쟁에 돌입한 시기였기 때문에 결코 좋은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곁엔 늘 자연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마음껏 뛰놀던 산천과 초원, 한없이 빠져들었던 곤충채집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빛을 발하며 내 몸과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 필명인 ‘오사무(治蟲)’도 실은 ‘딱정벌레’에서 따온 것이지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숲과 들판이 있어서 아이들은 골목대장과 함께 해가 저물도록 그 환상의 왕국에서 뛰어놀 수 있었습ㄴ디ㅏ. 그곳은 우주기지였고, 탐험대가 찾아나서는 비밀스런 땅이었으며, 끝없이 공상이 퍼져나가는 미지의 장소였습니다 … 이제까지 나는 미래사회를 다룬 만화를 많이 그려 왔지만 우주 저편까지 날아가는, 혹은 작은 벌레 속까지 파고드는 상상력의 기반은, 내 안의 ‘자연’이었습니다 …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만화의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 (11∼13쪽)
‘데즈카 오사무’라는 이름은 무척 널리 알려져 있었음에도, 정작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이 제대로 나라안에 나온 적은 거의 없습니다. 2000년을 조금 넘어선 때에 학산문화사에서 ‘데즈카 오사무 전집’ 비슷하게 예닐곱 가지를 옮겨냈고, 솔출판사에서 한 가지를 옮겨냈습니다. 그러나 이 ‘데즈카 오사무 전집’ 비슷한 만화책들은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의 모두 절판이라는 길을 걷습니다. 이제는 《우주소년 아톰》 24권, 《블랙잭》 22권, 《도로로》 4권, 이렇게 찾아볼 수 있는 가운데 ‘데즈카 오사무 초기 걸작집’ 네 권을 겨우 만날 수 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되는 2009년 올 1월에 나온 산문모음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글쓴이 데즈카 오사무 님이 여러 차례 되뇌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우리 말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 싶고, 《불새》는 한 번 나왔으나 이 또한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만화영화 《밀림의 왕자 레오》나 《사파이어 왕자》를 찾아볼 수 있기는 할 텐데, 정작 ‘만화영화로 그려지던 첫 만화책’을 살펴볼 수 없는 대목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우리 문화 눈높이가 이만큼밖에 안 되며, 우리 만화 눈높이도 더 뻗어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 텐데, 곰곰이 따져 보면,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만 이렇게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나라안 숱한 만화쟁이 작품을 찾아보기도 퍽이나 어렵습니다. 부천에 만화책 다루는 도서관이 한 곳 있기는 합니다만, 이곳을 뺀 다른 여느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찾아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뿐 아니라, 훌륭한 만화책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네 도서관 사서 가운데 ‘만화를 만화 그대로 받아안을’ 만한 생각그릇을 갖춘 분은 몹시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국립이든 공립이든 시립이든, 또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이든, ‘알찬 만화이든 재미난 만화이든 차곡차곡 갖추는 일’에는 어느 사서나 선생님이나 젬병이 아니냐 싶습니다.
.. 나는 자연과 인간성을 외면한 채 오직 진보만을 추구하며 질주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얼마나 깊은 균열과 왜곡을 가져오고 얼마나 많은 차별을 낳는지, 또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얼마나 무참한 상흔을 남기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 아톰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왕따’였습니다. 하지만 소신 있게 행동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악당에게도 용기 있게 맞서는 아이로 그렸습니다. 물론 만화 속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본래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매미가 울고, 강에는 물고기가 헤엄치던 자연, 그것은 그대로 우리들의 일상이었고, 벌레와 새와 어린이가 공존하던 세계였습니다. 자연을 ‘추억’으로도 소유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타인의 아픔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모순된 일이 아닐까요? .. (22, 27∼28, 57쪽)
엊그제 잠깐 들렀던 헌책방에서 만화책 《불새》 일본판 하나를 만났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데즈카 오사무 님 숱한 만화책은 ‘번역이 안 된 탓’인지 모르나, ‘일본판으로 웬만한 작품이 거의 다 들어와’ 있은 듯합니다. 제가 만난 《불새》 일본판인 《火の鳥》에는 한국 책방에서 팔았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주제에 전철길에 이 만화를 다 보아 냈는데, 퍽 예전 작품인 《불새》에는 톤을 하나도 쓰지 않습니다. 그림자며 옷이며 모두 펜끝으로 마감합니다. 그린이 손길이 무척 많이 갔구나 싶은 한편, 이렇게 펜질로 모든 그림을 그려내는 작품은 톤을 쓰는 작품하고 얼마나 다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톤을 쓰면 안 좋고 톤을 안 쓰면 좋다가 아니라, 펜질만으로 된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조금 더 찬찬히 만화에 빠져들기도 하고, 그림을 한 번 더 지그시 바라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저한테는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 느낌이, 꼭 김수정 님 예전 만화를 보는 느낌이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길을 다 다른 생각으로 만화를 그렸습니다만, 제 마음으로 스며드는 느낌은 한동아리입니다. 그래서, 한 해에 한 차례씩 김수정 님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다시 보고 있는데,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또한 한 해에 한 번쯤 우리 집 책꽂이 앞에 선 채로 죽 보아 내곤 합니다.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재미만 있지 않은 만화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만 있지 않은 만화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만화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한 만화 또한 아닌, 김수정 님 작품이고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을 묘사할 때도 제작자의 메시지를 담는다면 괜찮지만, 전쟁을 단순하게 묘사하기만 하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 나에게도 세 명의 자식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는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 주고 싶습니다 .. (62∼63쪽)
아이를 낳기 앞서도 만화책을 즐겨 장만하며 차곡차곡 갖추었고, 아기를 낳은 뒤에도 만화책을 즐겨 보면서 하나하나 갖춥니다. 저 스스로 만화를 좋아하니까 꾸준하게 만화를 즐깁니다. 뒷날 우리 아이가 여러 갈래 온갖 만화를 스스로 살피면서 아이 깜냥껏 마음을 채우고 덥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장만해 놓습니다. 세상 어느 책이 안 그러겠습니까만, 그때그때 장만해 놓지 않으면 이내 판이 끊어지며 사라집니다. 새책방에서든 헌책방에서든 보이는 그때그때 집어들어 주머니를 털지 않으면 나중에 눈물만 질금질금 흘리거나 입맛만 다셔야 합니다.
책값에 돈을 쓰는 일을 힘들거나 아깝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책 저런 만화를 차근차근 장만해 놓으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 하나는 있습니다. 참말, 우리네 도서관에는 왜 만화책이 없는지, 또 도서관을 꾸리는 분들은 왜 만화책을 갖출 생각을 못하는지, 그리고 왜 어른들은 만화를 깔보거나 ‘돈 되는 사업’으로만 여기는지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림은 그림이고 사진은 사진이며 춤은 춤이고 노래는 노래이듯, 만화는 만화입니다. 수학은 수학이고 과학은 과학이며 영어는 영어이듯, 만화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우리 꿈을 담아내는 문화예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는 우리 생각과 삶을 보여주는 문학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는 우리 마음을 쉬게 하거나 우리 마음을 살찌우는 마음밥 가운데 하나입니다.
.. 도시의 구조 자체가 이러했기에, 일본인들은 내 마을 주변의 생명과 자연환경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도시 공간과 자연을 격리시키려 안간힘을 쓰게 됐을까요? … 일본 고유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서구의 도시를 억지로 흉내내다 보니 심각한 왜곡과 불균형이 생겨 결국 자연환경까지 해치게 된 것이 아닐까요? … ‘여유’는 인생의 꽃입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여러 마을의 뒷골목을 둘러보곤 합니다. 그곳에는 다양한 인생의 향기가 스며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판자로 엮은 담이나 처마 밑, 도랑, 집과 집 사이의 공간에 특별한 매력을 느낍니다 … 무미건조한 빌딩숲을 거닐며 행복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뒷골목을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그것이 곧 놀이인 것이지요 .. (122∼124쪽)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만화쟁이를 한 사람, 또는 한 직업인, 또는 한 문화인, 또는 한 문화예술인으로 섬기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박재동 님이 《인생만화》,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만화 내 사랑》 같은 글모음(또는 글그림모음)을 내고, 이두호 님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냈지만, 만화쟁이로서 당신 삶을 글로 펼쳐 보이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또한, 딱히 책으로 내주려 하는 흐름도 옅구나 싶고, 애써 책으로 나온다 한들 두루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머리통 굵은 어른은 어른대로 만화를 만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만화쟁이가 쓴 글을 읽지 않습니다. 어릴 적 만화를 보았던 이들은 이런 이들대로 당신들 만화 삶을 어른이 된 뒤에까지 잇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져 다른 여러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만화쟁이’가 된 탓이 있기는 하나, 만화쟁이가 쓴 글을 잘 안 읽습니다. 다른 숱한 만화책을 보기에만 바쁩니다.
이런저런 까닭이 겹치고 맞물리면서,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 《아톰의 슬픔》은 그리 눈에 안 뜨이는 책이 되고 맙니다. 2006년에 나온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도 그렇고, 2002년에 나온 《만화가의 길》도 매한가지였습니다.
(3) 《아톰의 슬픔》이라는 책은
올 1월에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뻤습니다. 이모저모 알아보니 그동안 두 차례 다른 글모음이 나온 적이 있는데, 두 번 모두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언론매체나 비평가 눈길과 손길을 거의 못 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은 여느 새책방 책꽂이에 제대로 못 꽂히기도 했겠지요. 만화책 전문가게에 열 몇 해 동안 꾸준히 들르고 있습니다만, 제가 들르는 만화책 전문가게에도 데즈카 오사무 님 글모음이 꽂힌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데즈카 오사무’를 모르니까, 또 안다고 해 보았자 기껏 ‘아톰’이라는 이름뿐이니까 그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껏 아톰만 안다 할지라도, 만화책이나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일’이 없었다면, 데즈카 오사무이든 와사무이든 와사비이든 무슨무슨 책을 냈다 해서 딱히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봅니다.
..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월급봉투를 받으면 내 책값을 따로 빼서 만화책을 사주었습니다 … 게다가 내 경우엔 어머니가 만화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었던 것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 50년 전에(1930년대에) 자식에게 만화책을 읽어 준 어머니는 굉장히 유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군다나 읽어 주는 방식이 그야말로 걸작이었지요. 등장인물마다 캐릭터 별로 목소리를 바꿔 가며 연기하듯 재미있게 읽어 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숨죽이며 감동해서 울먹일 정도로 .. (34∼35쪽)
어릴 적 만화영화로 《우주소년 아톰》을 볼 때면 언제나 눈가가 촉촉하게 젖곤 했습니다. 저는 아톰 만화를 ‘눈물을 흘리며’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으레 ‘공상과학’이니 ‘미래세계’니 하고 말씀하지만, 저한테 아톰은 공상과학도 미래세계도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바로 ‘오늘 내 둘레 삶터 이야기’였습니다. 아톰이 사는 무대가 먼 앞날이라 하지만, 무대와 과학기술을 빼놓고 보면, 언제나처럼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삶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이는 《사파이어 왕자》와 《밀림의 왕자 레오》를 만화영화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데즈카 오사무 님은 한낱 우스꽝스런 만화감이나 공상을 퍼뜨리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품이 따뜻하고 넉넉한 큰형이나 큰아저씨와 같았습니다.
《돈 드라큐라》를 보건 《미크로이드 S》를 보건 《노만》을 보건 《아야코》를 보건 늘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에서 때때로 데즈카 오사무 님 그림이 들어간 일본 어린이책을 만날 때면 으레,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만화쟁이들이 널리 사랑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눈물을 흘리며’ 볼 수 있는 만화쟁이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요정 핑크》라든지 《달려라 하니》라든지 《번데기 야구단》이라든지 하는 만화책은, 벌써 몇 백 번이 넘게 보고 또 보아, 책이 퍽 낡고 닳았습니다. 이 만화책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자아내는 밝은 만화로 여기고들 있으나, 저한테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감도는 만화입니다. 어쩌면,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이 나는 만화일 텐데, 보고 또 보면서도 새롭게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마음에 메마르거나 지쳤을 때, 마음이 팍팍해지거나 힘이 빠졌을 때, 이런 만화책들을 넘기면 어느새 눈물샘이 솟아나면서 기운샘까지 솟아나곤 합니다.
.. 생명이 없는 곳에 미래는 없습니다 … 생명이란 더없이 소중하며 인생은 결국 단 한 번뿐이라는 것, 그리고 인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생명이 자연에는 가득하며 그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더불어 지구는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에게 반드시 필요한 별이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성심성의껏 이야기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한 감동을 몇 번이고 곱씹게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거듭 말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자연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 일본은 그 좁은 땅덩이에 골프장만 수없이 많은데, 한 20∼30개 정도는 없애서 달을 볼 수 있는 초원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14, 56, 133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톰의 슬픔》에서 끝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뻔히 다 알 만한 이야기라고 느낀다고 하면서도 굳이 그런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하고 거듭 되뇝니다. “쓸모없는 것, 멀리 돌아가는 것, 예정된 길에서 벗어나 잠시 딴짓을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풍요로운 앞날이 보이지 않습니다(168).” 하고.
1989년에 세상을 떠난 데즈카 오사무 님이니, 이 책에 실린 글은 스물 몇 해나 묵은 글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일본 모습이나 2000년대 한국 모습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외려, 이 글모음이 2009년에 옮겨졌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삶터를 더 찬찬히 굽어살피면서 받아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교통망이 발달해 각지의 간선도로가 그물망처럼 교차하고, 그 결과 지역산업이 발전하지만 모든 지방도시들이 정형화되어 엇비슷한 도시 구조를 지닌 특색 없는 모습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반면 개발로 인해 자연림이 더욱더 파괴되어 일본 전역에서 절반 가량의 삼림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171쪽).” 같은 말은 우리 나라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습니다. 아니, 우리 나라가 더 뼈저리게 느낄 대목입니다.
천성산을 뚫는 굴을 생각해 보셔요. 북한산과 속리산에 구멍을 내며 찻길을 내려는 정치꾼과 공무원을 헤아려 보셔요. 국립공원에 함부로 케이블카를 놓으려 하는 사람들을, 또 수없이 많은 골프장을 짓는 개발업자를 보셔요. 그러나, 진보를 말한다는 신문마저도 ‘골프 기사와 골프채 광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싣습니다. 끝없는 아파트 광고를 그야말로 끝없이 싣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 하지만, 이 광고 저 광고 가리거나 솎으면 돈 한 푼 못 번다고 하지만,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거나 흔들거나 괴롭히는 ‘나쁜 부자 회사’ 광고를 꼭 받아내어 신문을 내야 하는지 퍽 궁금합니다. 우리 마음과 삶을 착하고 곧은 쪽으로 이끌면서, 착하고 곧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 푼푼이 달삯을 받으며 신문사 살림을 꾸릴 수 없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화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지금 한창 유행하는 만화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인기도 한때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으면 실제로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 나는 재미있는 만화가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재미에 바탕을 두지 않고 유행만을 좇는 만화는 결국 세월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유행은 늘 바뀔 것이고, 그에 영합하는 만화는 그때마다 곧 사라질 것입니다 … 어린이들은 진실한 메시지에는 반드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꿈을 심어 주는 재미있는 메시지라면 얼마나 눈을 반짝이며 좋아할까요? .. (156∼159쪽)
책을 꼭 읽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만화를 꼭 보아야만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좋은’ 진보를 이룩하거나 갈고닦으려 한다면, 우리 손으로 ‘좋은’ 책을 알아내고 우리 눈으로 좋은 줄거리를 읽어내며 우리 마음으로 좋은 넋을 받아들여 우리 몸으로 좋은 삶을 꾸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따뜻한’ 진보가 되고자 한다면, 넉넉한 진보가 되고자 한다면, ‘따뜻함’과 넉넉함을 담뿍 담아 놓고 있는 좋은 만화책을 좋은 매무새와 눈썰미로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즐길 줄 아는 느긋함과 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일본사람이지만, 훌륭한 만화쟁이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밭이 더없이 따뜻하고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4342.7.17.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