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이라고 하는 소설쓰는 분이 ‘변절’을 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내 보기로는 황석영 님은 ‘변절’을 하지 않았다. ‘변절(變節)’을 말하려 한다면, 이 낱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살필 노릇이다.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꾼”다고 하는 ‘변절’인데, 황석영 님한테 ‘절개나 지조’는 무엇이었을까. 황석영 님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자리나 마음밭은 무엇이었을까. 황석영 님은 어떤 매무새로 문학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우리한테 들려주려고 했을까.
황석영 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믿는 분이었다면, 마땅히 황석영 님 글이든 책이든 작품이든 무엇이든 살피면서 이분 매무새와 넋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이분 매무새와 넋을 고이 살펴 왔다면, 황석영 님은 ‘변절’이 아닌 ‘당신 삶결’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황석영 님이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한다 하여 슬퍼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늙은’ 황석영 님은 ‘어린’ 황석영이나 ‘젊은’ 황석영 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일는지 모른다. 스스로 ‘가난한’ 마음자리를 잃고 ‘돈많고 이름높고 힘있는’ 마음자리로 갈아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갈아타는 사람들은 당신들이 어리거나 젊을 때에도 ‘돈-이름-힘’에 어느 만큼 눈독을 들이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들이 처음부터 ‘돈-이름-힘’에 매이지 않으면서 홀가분한 넋과 얼로 자유와 사랑과 평화와 평등과 통일을 외쳤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갈아타기를 했다기보다는, ‘가난한’ 마음밭을 조용히 일구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고 해야 옳지 싶다. ‘가난한’ 마음밭이 얼마나 내 삶과 이웃 삶을 너그럽고 즐겁게 북돋우는지를 깨닫지 못했다고 해야 맞지 싶다. ‘가난한’ 마음밭으로 살아가는 당신 삶은 당신한테뿐 아니라 우리 모두한테 기쁨과 보람을 나누는 일음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 알맞지 싶다.
내남없이 ‘세상에 둘도 없는 구라쟁이(이야기꾼)’라고 하는 황석영 님인 줄 안다. 당신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무엇인가를 할 때에 우리 나라를 아름다이 일으키거나 추스르거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아무렴. 이렇게 손잡는 일이란 잘못이 아니다. 손을 잡건 발을 잡건 옳게 일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누구하고 손을 잡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손을 잡느냐이며, 손을 잡고 무엇을 어떤 모습으로 하느냐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맞잡은 다음 ‘이명박 뜻대로’ 한다면, 또는 ‘황석영 이름값-돈값-힘값을 더 높이려는 뜻대로’ 한다면, 황석영이라고 하는 분은 아주 ‘개밥’일 뿐일 테지. 저 스스로 제 삶에 임자가 못 되고 ‘손님’이 되어 버린 불쌍한 떠돌이일 테지. 입은 살았되 몸뚱이가 오롯이 살아 있지 못한 한낱 ‘돼지꿈’일 테지. (4342.5.16.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