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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곳에서 - 에드워드 김 포토 에세이
에드워드 김 지음 / 바람구두 / 2006년 1월
평점 :
사진은 ‘참’도 ‘거짓’도 숨기지 못한다
[잠깐 읽기 30] 에드워드 김(김희중), 《그때 그곳에서》
- 책이름 : 그때 그곳에서
- 글ㆍ사진 : 에드워드 김(김희중)
- 펴낸곳 : 바람구두 (2006.1.16.)
- 책값 : 19800원
(1) ‘전두환 만세!’를 부끄럽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1987년 1월 26일에 나온 《전통의 뿌리, 경상북도》(HEK홍보기획공사)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은 오로지 ‘경상북도는 한국 전통을 잇는 밑뿌리 같은 곳으로, 아름답고 깨끗하고 밝은 앞날이 있는 곳’임을 보여줍니다. 사진책 차례를 살피면 ‘전통의 고장, 호국의 터전, 신라 문화 꽃피운 경주, 부처님의 미소, 신비의 섬 울릉도, 맑고 푸른 동해, 내 고장의 특산물, 마음의 고향, 역사 속의 인물, 조상의 얼 지키는 하회마을, 마음이 닿는 곳, 미래를 여는 산업, 특색있는 9시ㆍ24군’, 이렇게 짜여 있습니다.
이 사진책을 펴낸 ‘에드워드 김(김희중)’ 님 요즈음 해적이를 살피면, 다음처럼 적혀 있습니다.
.. 경기고 재학중 두 번의 사진 개인전을 열었으며, 연세대 재학중 미국으로 유학, 텍사스 주립 대학 신문학과와 미주리대학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하고 내셔날지오그라픽에 입사하였다. 1971년 미국기자단 최우수 사진편집인상과 1974년 미국 해외기자단 최우수 취재상, 1979년 백악관 출입 기자단 사진 취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 겸 기획위원으로 승진한 이후 미국 출판협회 최우수 편집상과 미국 디자인협회 편집기획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시사주간지 〈타임〉의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중앙일보〉 사진자문위원과 월간 〈지오〉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 대한민국 국민훈장을 수상하였으며, 1999년 이명동 사진상을 수상하였다. HEK 홍보기획공사 대표,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초빙교수를 거쳐, 2006년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Korea : Beyond the Hills》, 《Decade of Success》, 《The Family of Dolls》, 《The Korean Smile》, 《Taekwondo : The Spirit of Korea》, 《THIS EHWA》,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그때 그곳에서》 등이 있다 ..
맨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으로 뜻을 이루어 〈내셔널지오그래픽〉 편집장까지 맡았으니, 대단히 뛰어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더욱이 이 잡지사를 그만둔 뒤로도 한국에서 〈타임〉 서울특파원에다가 〈지오〉 편집장까지 맡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손매와 사진을 다루는 손길과 사진을 보는 눈매가 무척 남다르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자리를 맡을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대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사진을 가르치는 자리에 앉을 만한 눈높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몇 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습니다. 1987년까지는 어디에서나 밝혀져 있던 ‘에드워드 김 발자취’ 몇 줄이 그 뒤로는 감쪽같이 사라진 일이 첫째입니다. 사진이야기 《그때 그곳에서》에는 에드워드 김 님이 찍었던 ‘박정희-전두환 새마을운동’ 사진 몇 장이 깃들면서 몇 마디 이야기가 다음처럼 덧붙습니다.
.. 경제발전을 위하여 온 국민이 하나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흘려 일하던 1970년대. 중세 무사를 방불케 하는 복장을 하고 쇳물이 튀는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노무자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할머니 두 분이 새마을 깃발을 들고 밭으로 나가는 모습. 온 가족이 동원되어 힘들게 쟁기를 끌어 농사짓는 모습. 일하는 가족 옆 흙바닥에서 잠이 든 아이. 자칫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후진국스러운 장면들이지만, ‘하면 된다’는 구호와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흥얼거리며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고 땀흘려 열심히 씨를 뿌렸기에, 오늘과 같은 발전이 가능했으리라 여겨집니다 .. (108∼110쪽)
에드워드 김 님 해적이에 나오지 않는 세 가지 책을 책꽂이에서 들추어 봅니다. 모두 헌책방 책시렁에서 찾아내어 간직한 책입니다. 이 가운데 《전통의 뿌리, 경상북도》 뒷장을 봅니다. “그의 저서로는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상을 담은 《한국:언덕을 넘어서》가 1980년 일본 고단샤에 의해 발행되었고, 형문출판사에서 발행한 《민주복지의 길》과 《인형의 가족》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 《미국 순방》(1985년) 및 《유럽 순방》(1986년) 등은 직접 수행 취재하여 편집한 사진집이며, 제5공화국의 치적 5년을 기록한 사진집 《국민이 함께》와 86아시안게임을 기록한 《영원한 전진》 등의 사진집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1987년 책에는 밝혀져 있는’ 에드워드 김 님 사진책 가운데 제가 갖고 있는 책은 《민주복지의 길》과 《유럽 순방》입니다. 《미국 순방》과 《국민이 함께》와 《영원한 전진》과 《인형의 가족》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언젠가는 제 손에 들어올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책들은 나라돈으로 찍어 전국 구석구석에 퍼뜨린 ‘전두환 찬양 사진책’이기 때문입니다.
.. 빨간 수건을 목에 두르고 북을 치는 중학생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교정에서 교련훈련을 받고 있다. 1973년 북한의 경제수준이 남한과 거의 비슷했던 시절, 북한은 주체사상과 천리마운동으로 자신감 넘치는 정책을 펼쳤다. 혁명박물관. 김일성 수령의 업적을 기리는 95개의 대형 전시실 그곳에 우뚝 서 있는 18미터나 되는 동상. 박물관 광장에서 금색의 김일성 조각을 청소하는 일꾼들. 그리고 북한의 산업화와 자급자족 경제를 상징하는 제철소의 역군들. 불가리아 대통령 환영 인파로 동원된 만여 명에 이르는 학생과 시민들. 천리마운동을 상징하는 천리마동상과 넓은 도로 건너편 모란봉 위의 극장과 저 멀리 대형 텔레비전 전송탑이 평양의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느 집에서 한 소년이 벌거벗은 채 뛰어나왔고 이어 누나뻘 되는 소녀도 뛰쳐나와 달아나는 아이를 냅다 뒤쫓았다. 그 어린아이들이 석양 속에서 뛰어다니며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자, 안내원은 어색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죄송하다며, 그러한 장면을 찍는다면 북한의 어린이들이 헐벗어서 옷을 입지 못한 채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처럼 선전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나의 촬영을 제지한 것 .. (70∼74, 98쪽)
에드워드 김 님은 1974년에 북녘을 찾아가서 취재합니다. 이듬해 1975년에는 남녘을 찾아가서 취재합니다. 이 취재는 모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렸고, 1974∼1975년 사이에 나온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다른 여느 해 잡지와 견주어 웬만해서는 헌책방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누군가 쓴 힘에 따라서 솎아내어졌기 때문입니다. 1974년 8월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딱 한 번 헌책방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에드워드 김 님이 북녘을 취재한 자리는 면도칼로 아주 잘 잘려져 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1975년 9월치 남녘 취재 기사는 잘리지 않았더군요.
곰곰이 돌아보면, 2009년 오늘날에도 ‘북녘사람들 여느 모습’을 담은 사진은 남녘땅에서 구경할 수 없습니다. 남녘 사진기자뿐 아니라 나라밖 어느 사진기자도 북녘사람 여느 삶자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또한, 남녘뿐 아니라 나라밖 웬만한 사진작가와 사진기자는 북녘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 때에 ‘북한, 너네는 이런 놈들이야!’ 하는 틀에 갇혀서 뻔한 모습으로 ‘깎아내리는’ 사진을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1974년에 에드워드 김 님이 북녘을 찾아갔을 때 수행원이 ‘어색하게 말린’ 까닭이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때나 이제나 달라지지 않은 ‘우리 눈길’ 때문입니다. 남녘이든 북녘이든 가난한 사람이 틀림없이 있고, 잘사는 사람 또한 틀림없이 있습니다. 사기꾼이 틀림없이 있고 착한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진기 눈은 어디로만 쏠려 있는가요?
오래된 동네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우리들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담아내고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요? 서울 강남을 찍을 때, 우리 나라 청소년을 찍을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을 때, 전투경찰을 찍을 때, 공무원을 찍을 때, 운동선수를 찍을 때, 노숙자를 찍을 때, 연예인을 찍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찍을 때, 식구들을 찍을 때, 우리 눈길은 어떻게 맞추어져 있는가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사람과 삶터로 다가가면서 사진기를 들고 있을까요?
(2) ‘어제’는 있되 ‘오늘’과 ‘내일’ 모두 없는 사진이면?
.. 농촌의 식생활도 많이 달라져 새참 때 읍내에 전화해 자장면을 시켜 먹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빵과 우유를 들며, 막걸리보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농촌의 깊은 시름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 농촌도 세계무역기구 농산물 개방정책의 장벽을 넘어 어서 빨리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 (152쪽)
에드워드 김 님이 바라보는 눈길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에드워드 김 님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한국땅은 ‘박정희-전두환 두 대통령이 일으킨 새마을운동’이 있었기에 모두 잘살고 넉넉하게 되었다고 느끼는데, 이러한 눈길은 이분 삶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입니다. 좋은 장비와 좋은 손길과 좋은 눈길에 따라, ‘아름다워진 한국’을 담아내려는 에드워드 김 님한테는 박정희 씨나 전두환 씨는 ‘독재자’가 아닌 ‘훌륭한 치적을 남긴 거룩한 분’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에드워드 김 사진이야기 《그때 그곳에서》를 비롯해, 요즈음 나온 책에서는 당신이 우러르던 사람들을 담아낸 사진책 이야기가 쏙 빠져야 했을까요. 빼야 할 까닭이 있었을까요.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 씨를 지지한 사람 눈에는 이명박 씨가 ‘한국을 먹여살리는 훌륭한 분’으로 비추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눈길이 글렀든 어긋났든 엉터리라 하든, 지금 이 자리에서는 이 눈길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수렁에서 벗어나 참눈과 참마음과 참생각을 가꾸어 준다면 더없이 반가울 터이나, 수렁에서 허우적거린다 하여도, 세상을 보는 얕은 눈은 그 눈길대로 두면서도 당신이 걷는 길을 옳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찍지 않았어도 그릇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명박 씨를 안 찍으나 마나입니다.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찍었다 하여도 올바르게 삶을 꾸리는 사람은 이명박 씨를 안 찍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투표 하나로도 세상을 바꾸지만, 세상을 참되게 바꾸는 밑힘은 투표 아닌 ‘자그마한 우리들 살아가는 매무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 얼마 전 강의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우리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결론은 진정한 행복은 공짜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미소에서, 말 한 마디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맑고 투명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한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도 새봄이면 푸른 싹이 돋아날 것임을 깨닫는 순간, 맘속으로 번지는 희망과 행복이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그 마음의 온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결국 그 온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지요 .. (60∼61쪽)
사진은 아무것도 숨기지 못합니다. 거짓된 사람들이 아무리 힘을 들이고 돈을 퍼붓고 이름을 들이밀어도, 사진은 ‘참’을 숨기지 못합니다. 참된 사람 스스로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이름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사진은‘거짓’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참이든 거짓이든 언제나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참과 거짓을 못 알아채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으나, 알아채는 사람이 없더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낱낱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김 님은 스스로 당신 발자취를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까닭이 없다고. 부끄럽다면 부끄럽다고 떳떳이 밝히면서 뉘우칠 노릇이라고. 부끄럽지 않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당차게 밝히면서 내세울 노릇이라고.
‘전두환 수행비서’와 다를 바 없이 함께 다니면서 ‘전두환 만세’를 불렀다 하여 ‘저런 죽일 놈!’이라고만은 느끼지 않습니다. 당신한테는 그와 같이 살았던 지난날이 ‘나라 살리기’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지난날에만 만세를 부르고 이제는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면, 그때 일은 꽁꽁 싸매 놓고 있다면, 궁금함만 몽실몽실 커집니다. 오늘은 어제와 어떻게 다르며, 다가오는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제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지 않고서는 참다이 사람을 사귈 수 없을 뿐더러, 사진쟁이는 ‘스스로 찍으려는 사람이나 삶터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모두를 바쳐야 나한테 스며드는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요 ‘사진에 들어오는 삶터’입니다. 모자람도 바치고 넉넉함도 바쳐야 하는 사진입니다. 어설픔도 바치고 솜씨있음도 바쳐야 하는 사진입니다.
그래도 에드워드 김 님으로서는 그동안 해온 일거리만으로도 얼마든지 앞으로 튼튼하게 대학교수 자리를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 에드워드 김’은 될지언정 ‘사진쟁이 에드워드 김’은 될 수 없습니다. 에드워드 김 님 스스로 ‘새롭게 펼치는 사진길’을 헤아리지 않으신다면야 어찌할 길 없습니다. 그저 《그때 그곳에서》 같은 ‘예전에 찍은 사진을 몇 가지 추슬러서 추억 팔기’ 책을 쓰신다고 할 때에는 어찌할 노릇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지만, 정작 오늘날에는 ‘사진기를 안 들고’ 있는 채로 살아가겠다고 한다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안쓰럽습니다. 그 기나긴 사진길 마무리를 이렇게밖에 못하나 싶어서. 그 고단하고 벅찼던 기나긴 사진길 끝을 이렇게밖에 못 맺는가 싶어서.
새로운 글을 써내지 못하면 글작가가 아니요,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면 그림작가가 아니며, 새로운 만화를 그려내지 못하면 만화작가가 아닙니다. 새로운 사진을 찍어내지 못하면 사진작가가 아닙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은 역사뿐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 앞에서 언제나 벌거벗고 있어야 합니다. (4342.4.14.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