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은 오도엽 님이 찍었고,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보내 주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있는 사진은 누가 찍었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이 책 하나 87 ― 이소선은 ‘어머니’, 전태일은 ‘아들, 형, 오빠’
 : 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책이름 :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
- 글 : 오도엽
- 펴낸곳 : 후마니타스 (2008.12.5.)
- 책값 : 12000원



 (1) 이야기를 나누는 삶


 아기 엄마는 아기를 어르며 함께 놀 때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주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아기 할머니도 아기를 어르며 함께 놀 때 부지런히 노래를 불러 주고 말을 붙입니다. 아기 이모도, 아기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외삼촌은 아직 노래나 말걸기를 그닥 하지 않지만, 아기를 귀여워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어버이이든, 자기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동안 쉴 틈 없이 달래고 안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합니다. 이렇게 살과 살이 맞닿으면서 함께해야 아이는 사랑을 느끼고 믿음을 받으며 튼튼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아이 돌보는 일은 다른 누구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한식구라고 느끼는 이들이 다 함께 돌보아야 합니다. 아이 엄마와 아이 아빠 가운데 어느 한쪽이 도맡을 수 없습니다. 맞벌이하느라 바빠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긴다거나 돈을 주고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은 어버이 사랑이 담겨야 하고, 아이한테 입히는 옷은 어버이 믿음이 스며야 하며, 아이하고 놀며 지내는 집은 어버이 삶이 깃들어야 합니다.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돈을 주고 남한테 맡긴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거의 모두 핑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헤아리면 아이 키우기뿐 아니라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하는 집일부터도, 나아가 밥거리와 옷거리를 마련하는 일부터도, 돈을 벌든 곡식을 벌든 땀흘려 애쓰는 일거리부터도, 우리 스스로 하고 우리 몸을 움직여서 해야 합니다. 누가 해 줄 수 없는 일이며, 누가 즐겨 줄 수 없는 놀이입니다.


.. 전태일과 이소선은 밤마다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피를 토하던 미싱사 이야기, 배고픈 시다들 이야기, 헌옷을 사고팔던 이야기, 사람을 만날 때 기쁘고 슬펐던 이야기……. 이소선은 그 밤과 그 이야기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잠들지 못한다 … 태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오면 이소선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이소선이 말을 하면 ‘그랬군요’ ‘힘드셨겠네요’ ‘잘하셨어요’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태일이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소선에게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태일은 옳은 게 무엇인지, 그른 게 무엇인지 조리 있게 말할 줄 알았다. 어린 여공들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일하다 다리미에 화상을 입은 일이며,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폐병에 걸려 피를 쏟으며 병원에 가는 이야기, 작업반장에게 욕먹고 훌적이는 이야기……. 태일에겐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  (34, 35, 53쪽)


 하루 내내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게 놉니다. 아이가 우리 어른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는 모릅니다. 말길을 모두 알아듣든 말든, 아이가 마음으로 어버이 사랑을 느끼고 어버이 믿음을 새길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또 새로운 아침부터 새로운 밤까지, 그리고 다시 새로운 아침부터 새로운 밤까지, 내내 옆지기하고 붙어 지냅니다.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림을 꾸리고 집에서 아기와 함게 노니 늘 함께 있습니다. 저잣거리 마실을 가도 함께 다니고,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어도 함께 움직이며, 책방 나들이를 해도 함께 돌아다닙니다. 요사이는 아기 때문에 때때로 혼자 다니게 될 일이 생기는데, 혼자 다니게 되든 함께 다니게 되든 부지런히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찻길이 시끄러우면 입을 닫아야 하고, 먼지 뿌연 길가를 지날 때에도 입을 막아야 하지만, 많이 꺼내고 나누는 말이 못 될지라도 늘 보고 지내는 사이라 해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배고파? 밥할까?” 하는 이야기부터, “오줌 눴네. 기저귀 갈아야겠네.” 하는 이야기까지, 그저 말없이 지나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옆지기는 잠깐 옥상마당에 나가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아래층 옥상마당에서 노는 길고양이를 부르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기한테 고양이하고 이야기나눈 일을 또 이야기합니다. 그림책을 펼치며 읽어 주기도 하고, 아기가 끼악끼악 소리를 질러대며 좋아하면, 그림 하나하나가 어떤 모습을 담아냈는지 찬찬히 거듭 들려줍니다.


.. 형사들은 이소선이 마치 간첩인 것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이소선의 집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엄포를 놓았다. 남산동 화재 이후 십수 년을 함께 울고 웃고 하던 이웃들이라 이소선을 간첩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소선 집 앞에 초소까지 세워 두고 감시하는 판이라, 동네 사람들은 순덕이가 혼자 있는 줄 알면서도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  (168쪽)


 어제 낮, 동네 이웃집에 갑니다. 우리 동네 골목집과 골목집 사이를 쪽 째어 인천 서남쪽 새도시와 인천 서북쪽 새도시를 잇는다는 ‘1자로 된 산업도로(알고 보면 고속도로)’를 반대하는 일에 처음 불씨를 당긴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는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옆에서 이 이야기를 녹음하고 타자로 받아 옮깁니다. 세 시간 남짓 손 아프고 팔 아프도록 타자로 옮기는데, 아주머니들은 산업도로와 얽힌 인천시 공무원들 안타까운 모습을 꾸짖는 가운데, 부지런히 당신들 삶을 끄집어내어 나눕니다. 항암치료 받던 이야기, 당신 늙으신 어머니 돌아가신 이야기, 당신들 어머니가 거쳐간 그 환갑 나이에 이제 당신들도 접어들게 된 이야기, 당신들 아이 키우는 이야기, 이 동네에서 살아온 이야기, …….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과 일로 만나는 사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으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일 때문에 전화를 걸어도 안부를 한두 마디 묻곤 하며, 일 때문에 편지를 쓰더라도 안부인사를 꼭 넣습니다.

 그저 인사치레라 할 수 있지만, 한낱 인사치레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딱딱한 기계가 아니라 포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나누게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낯모르는 사람이건 낯익은 사람이건, 누구나 우리 이웃이며 우리 동무이며 어버이이자 동생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고받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 “남들이 다 장기표 욕을 한다 해도 나는 절대 못한다. 난 장기표 편이다. 진짜 잘됐으면 한다. 정치에 뛰어들었으니까 정말 국회의원 뱃지라도 달았으면 한다. 김문수처럼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대가리 숙이더라도 국회의원 한번 했으면 좋겠다.” “진심이야?” “썩을 놈, 꼭 그 따위로 말하지.” 장기표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게 이리 말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소선은 진심이다. 김문수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나라당에 갔다고, 하는 꼴이 개판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텔레비전에 김문수가 나온다면 볼륨을 높인다. “효도하던 자식이 불효한다고 내칠 수 있냐. 만나서 야단치고 달래고 회초리를 들기도 하고 어르기도 해야지. 또 잘난 자식 있으면 못난 자식도 있는 법 아니냐.” 자식 앞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여느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소선을 아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 그리 말해도 이소선은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소선에게는 장기표도 김문수도 모두 친자식과 같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절대 버리지 못하는 ‘보통 어머니’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소선은 ‘투사 이소선’도 ‘노동운동가 이소선’도 ‘민주 인사 이소선’도 아닌, 그냥 ‘어머니 이소선’에 평생 머물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존경한다. “손가락질을 해도 어쩌냐. 나한테는 태일이만큼 소중한 사람들인데 말이야.” ..  (178쪽)


 아기랑 쉴 새 없이 이야기 나누는 옆지기는 아기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요? 글세, 알아들으려나? 거꾸로 보면, 아기는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지 모를 노릇이고, 외려 우리 어른들만 아기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지 모릅니다. 아기들은 끊임없이 지 어버이한테 말을 거는데, 우리 어버이 된 사람들은 ‘옹알거리지만 말고 말을 해야지’ 하면서, 옹알거림에 담긴 속내와 이야기는 알아채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2) 민주가 없는 나라에는 평등도 평화도 없는데


.. “지금 민주네 무슨 봄이내 하며 박정희의 죽음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다시는 독재가 활개를 치지 못하게 끝장을 내야지요. 나는 우리가 싸우지 않고는 절대 민주주의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독재놈들이 민주주의를 낼름 내줄 것 같습니까. 절대 호락호락 내주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떠들 때가 아닙니다. 난 배우지 못했지만 싸워야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  (183쪽)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처제는 학교옷을 맞추어야 합니다. 일산에 있는 중학교는 거의 모두 학교옷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인천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도 거의 모두 학교옷을 입지 싶습니다. 인천뿐 아니라 서울도 거의 다, 아니 우리 나라 전국 곳곳에 있는 학교라면 으레 학교옷을 맞추게 하여 입힙니다. 학교옷을 안 맞추게 하는 학교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학교옷을 맞추어서 입어야 한다는데, 학교옷 값은 장난이 아니도록 비쌉니다. 온삶에 걸쳐서 입는 옷이 아니요, 고작 세 해 입고 버려지는 옷임에도 싸야 20만 원이고, 50만 원을 웃돌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옷값은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가 모두 짐을 져야 합니다. 반드시 학교옷을 입혀야겠다면 입힐 노릇이지만, 이와 같은 옷은 옷을 입히려는 학교나 나라(정부)에서 대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개인옷을 입도록 한다면 마땅히 개인이 마련해야 할 일이고, 학교옷을 입도록 한다면 마땅히 학교가 마련할 일이 아닐까요. 어느 회사에서 회사옷을 개인이 사서 입으라고 합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입는 일옷은 회사가 대어 줍니다. 맞추어 줍니다. 마땅하지요. 그 회사를 돋보이게 하든, 그 회사에 있는 동안 잘 알아보도록 할 생각이든 회사는 회사 몫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교 몫이 있어요. 아이들이 입을 학교옷은 학교에서 사들여서 아이들 몸크기에 따라 나누어 준 뒤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옷 빨래는 학교에서 해야 하고, 아이들은 개인옷을 입고 학교에 와서 학교옷으로 갈아입도록 해야겠지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누구나, 또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어느 집이나 옷값이며 책값이며 부교재값이며 사교육비며 …… 진저리를 치고 주름살이 늘밖에 없습니다.


.. “저는 배운 게 없어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다 옳으신 말씀들 같습니다. 제 짧은 생각에는 노동자의 장례식에서 외칠 구호는 노동자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함께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앞선 이론을 내세우면 아직 깨우치지 못한 노동자들이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요. 먼저 지식을 배워서 안다고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면 노동자들이 쫓아가지 못합니다. 부족한 지식을 가진 노동자의 엄마가 쓸데없는 말 한다고 여기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  (230쪽)


 어제부터 《당신에게 말을 걸다》라는 사진이야기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백성현 씨는 한때 춤노래를 하던 ‘코요테’에서 뛰기도 했는데, 어릴 적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에 갈 때에도 실업계에 가서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1981년에 태어나 2000년을 코앞에 둔 때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에도 동아리 선배들은 새벽같이 동아리방에 나와 청소하고 물 끓여 놓고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자기들한테 쏟아졌고(책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뻔한 노릇으로 주먹질과 얼차려와 욕설이었을 테지요), 백성현 씨가 1학년 때에 3학년 선배를 제치고 교내 사진백일장 같은 자리에서 금상을 타니 이죽거리면서 손찌검을 했답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휘두르는 손찌검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교사들 손찌검뿐 아니라 ‘학교 선배’라는 이들이 ‘학교 후배’한테 휘두르는 손찌검 또한 그다지 사라지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책에만 적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두 눈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오늘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중학교부터가 아닌 초등학교부터도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교육 얼거리로 되어 있지만,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맞춰 입도록 하고, 머리길이를 짧게 맞추며, 선후배 위계질서와 교사 학생 계급질서를 단단하게 세워 놓는 학교라는 울타리는, 어쩌면 우리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민주라고 하는 뜻하고는 멀어지도록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가 좋다고 하고,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로 일이 이루어지고 놀이를 즐기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자리는 거의 없지 않느냐 싶어요.

 교과서 엮는 일이 민주주의답게 이루어지지 않고, 교사가 교재를 골라서 가르칠 때에 민주주의 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으며, 학생이 교사한테 교과서로 배울 때 자기 삶을 가꿀 이야기를 민주주의 흐름에 따라 받아먹을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온통 대학교바라기로 되어 있는 중고등학교 틀거리인데, 아이들은 대학교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되도록 자라게 되는가요.


..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냐? 죽도록 민주주의 할라고 싸워서 된 거 아니나. 아이엠에픈가 뭔가 금반지 빼서 팔라는 소리도 좋긴 한데, 그래도 몇 가지는 제대로 해 놓고 해야지. 대통령 옆에 비서라는 사람은 국회의원 공천 장사나 해먹고 있으니 제대로 되겠냐. 내가 김대중 대통령 만날 때 그랬어. 금반지 빼서 경제 살리는 것도 해야 하지만, 국가보안법 없애고 민주화 운동 하다가 죽은 사람들 누명 벗기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대문에 죽을 뻔했잖아요. 막 따졌어. 제대로 안 하면, 대통령 체면 생각해서 지금은 국회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아예 청와대 앞에서 할 거라고.” ..  (275∼276쪽)


 어린 처제가 중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민주를 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처제가 민주로 둘러싸인 학교에서 민주를 배울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평등도 배우고 평화도 배우며 통일도 배우는데다가 연대와 창조도 배울 테지요. 민주를 익힐 수 있는 학교라면 스르럼없이 사랑도 익히고 믿음도 익힐 테며, 나눔과 어깨동무도 나란히 익힐 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초등학교 졸업식도 안 하고 중학교 입학식도 안 한 처제가 ‘중학생 머리길이’에 맞추어 벌써부터 머리를 자르게 시키는 이 나라 교육 틀거리인데, 아이들 머리길이를 이처럼 다그치는 학교 규칙은 국가보안법하고 얼마나 다를까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중학생이 되면, 그나마 초등학교에서 하던 ‘책을 읽고 독후감 쓰기’ 같은 숙제는 사라지고 ‘교과서 아닌 책은 못 보도록’ 할 텐데, 이런 우리네 학교 수업은 진시황이 했다는 분서갱유나 일제강점기부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그리고 이명박에 걸치기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온도서 목록’과 ‘금서 목록’하고 무엇이 다를까 모르겠습니다. 






 (3) ‘어머니’ 이소선을 담아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몸에 불을 붙여 노동자 푸대접에 맞서기 앞서 청계천 노동자들한테 벗이 되고 오빠가 되었던 전태일 님 이야기는 《전태일 평전》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에 담겨 있습니다. 전태일 님을 낳고 길렀으며, 전태일 님이 죽은 뒤에는 전태일 님이 걸었던 길을 다부지게 걸을 뿐더러, 더 힘차게 걷고 있는 어머니 이소선 님 이야기는 《어머니의 길》에 살뜰히 담겨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에 쏟아지는 눈길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길》에도 너르고 깊이 눈길이 쏟아졌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좀처럼 《어머니의 길》은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데, 참 오랜만에, 《어머니의 길》이 나온 지 거의 스무 해 만에 새롭게 ‘어머니’ 이소선 님 이야기가 책으로 묶였습니다.


.. 이소선은 사라진 아들의 일기장을 찾으러 노동청에 가서 싸웠다 ..  (89쪽)


 그런데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대목이 하나 나옵니다. 어머니 이소선 님은 사라진 ‘아들내미 일기장’을 찾으려고 노동청에 갔다고 하는데, 일기장을 다시 찾았다는 대목은 나오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하나를 찾아내어 펼쳐 봅니다. 1970년대에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뛰었던 이상현 기자가 쓴 글을 뒤적입니다. 이무렵(1970년 11월 13일) 이상현 기자는, 전태일 님 주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일기장을 찾아내어 조선일보에 특종으로 실었다’는 글을 뒷날 밝혔습니다. 조금 길지만 이상현 기자가 쓴 글을 옮겨 봅니다.


 “사인을 필히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자료를 입수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참으로 막막했다. 구체적 자료라면 수기나 일기인데, 그 친구(전태일) 집안의 책상이나 장롱 등을 다른 기자들이 지금껏 그냥 두지 않았을 게 뻔한 노릇이 아닌가 … 사건이 사건인 만큼, 지하실 시체실에는 가족, 노동청 관계자, 수십 명의 보도진으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 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 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 전군이 살던 성북구 쌍문동 셋방을 홀랑 뒤져 필요한 사진을 더 찾았다. 그리고 이 일기장을 신문사로 가져가기 위해, 나는 이 일기장이 꼭 세상에 공개돼야 하며 이로써 그의 죽음이 명실상부하게 된다고 거듭거듭 설명해 그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학노우트를 들고 나는 신문사로 뛰었다. ‘일기를 구했읍니다!’ 나는 큰소리로 데스크를 향해 자신있게 소리쳤다. ‘뭐, 일기장이 나왔어?’ 데스크는 놀랐다. ‘빨리빨리 기사 써.’ ..  《이상현-사회부기자》(문리사,1977) 39∼44쪽)


 〈조선일보〉 이상현 기자는 일기장을 비롯하여 쌍문동 집까지 뒤져 사진도 가져갔다고 밝힙니다. 벌써 마흔 해 가까이 지난 옛일인데, 마흔 해 앞서, 노동청과 〈조선일보〉 기자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이 일은 어떻게 풀렸을는지 궁금합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는 이 얘기가 더 실려 있지는 않습니다. 문득 1970년 그때 기자하고 2009년 오늘 기자하고, 기자들이 ‘못 배운 노동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합니다. ‘못 배운 노동자 주제에 무슨 일기를 쓰겠어?’ 하고 바라보던 1970년 기자들은 2009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볼 때에, 어이없는 해고와 푸대접에 맞서서 집회를 여는 노동자를 쳐다볼 때에, 살빛이 검거나 거무스름한 이주노동자를 마주할 때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아니더라도 죽어나고 있는 농사꾼 이야기를 다룰 때에,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결일는지 궁금합니다.


.. 그라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학생들하고 노동자들하고 합해서 싸워야지 따로따로 하면 절대로 안 돼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가 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 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 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 엄마가 안 하면 그걸로 끝난다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란 말도 하고 그때 뭐 별말 다 했지. “어떤 물질이나 어떤 유혹에도 타협하지 마세요. 내 부탁한 거 꼭 들어주시겠죠?” 참말로 기가 차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듣고만 있었지. “왜 엄마는 내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아요? 우리 엄만데 왜 대답하지 않느냐고요? 내가 죽으면,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엄마가 제발 내 말 들어주세요.” 막 따지는 거야. “목사들은 이웃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아요. 말로만 했지 실천은 안 한다고요. 그런 예수는 믿지 마세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를 믿으세요.” 지도 예수를 믿었는데 그란 말을 했어 …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라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  (84∼85쪽)


 책을 덮습니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깨어나 놀자고 칭얼대는 아기는 어느새 잠이 들고, 옆지기는 제가 다 읽은 뒤 책상맡에 눕혀 둔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를 집어들어서 읽습니다. 아기가 30분도 채 안 자고 깨어나 끙끙거리지만, 책이 재미있는지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만져 봅니다. 오줌을 쌌다고 할는지 안 쌌다고 할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살짝 뜨뜻합니다. 새 기저귀로 갈고 이 녀석은 말려서 다시 대야겠습니다.

 아기를 일으켜세워 잠깐 뜀뛰기를 한 다음 품에 안습니다. 아기를 안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기는 아빠 무릎에 엎드려 셈틀 화면도 들여다보고 아빠 손가락 놀리는 모습도 바라봅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서 어머니 이소선 님이 오도엽 님을 비롯한 젊은이들한테 들려주던 말이 떠오릅니다. 요새 사람들이 아이를 거의 안 낳고, 낳아도 하나만 낳는데, 아이를 좀더 많이 낳고 재미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가만 보면, 어머니 이소선 님만이 아니라 동네 할머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여든일곱 그림 할머님도 우리한테 더 많이 낳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저희로서도 낳을 수 있는 데까지 낳고 싶은데, 우리 삶터가 너무 모질고 팍팍하면서, 집에서 아기 낳기에는 몹시 안 좋기 때문에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말 힘이 닿는 데까지 낳아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기에 참으로 모질고 얄궂고 고달픈 우리 세상이지만, 우리 어른 된 이로서, 우리 어버이 된 이로서, 세상이 차츰차츰 밝은 쪽으로 나아가도록 힘쓰면서 아이를 신나게 낳아서 신나게 길러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뚤어진 법과 제도가 판을 치니까, 반듯해지고 둥글둥글하며 구수한 법과 제도로 거듭나도록 애쓰고 땀흘리면서 아이 손을 잡고 당차게 걸어가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작은 데부터, 구석진 곳부터, 응어리진 자리부터, 조금씩 손보고 어루만지고 달래면서 북돋워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야.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라고 분신자살 했다고 한다. 어디 자살이냐. 항거지. 분신 항거라고 해야 해. 배운 사람들이, 기자들이 자살했다고 쓰는 것 보면 배우기나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태일이를 열사니 투사니 하지 말고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해. 전태일 동지. 그게 맞지 않냐.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 달라고 좀 써라.” ..  (286∼287쪽)


 사람을 좋아한 전태일 님으로 자란 까닭은, 아들 전태일을 낳아 기른 어머니 이소선 님부터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섬기며 사람을 알뜰히 사랑할 줄 아는 어머니한테서 전태일이라고 하는 큰기둥 하나가 우뚝 설 기틀이 마련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목숨을 바칠 만큼 애쓸 수 있던 까닭은, 어머니 이소선 님이 아들 앞에서 몸소 ‘목숨 바쳐 삶을 야무지게 꾸려 나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전태일 님이 걸었던 발자취가 담긴 책 두 권에다가, 어머니 이소선 님이 디뎠던 발자국이 찍힌 책 두 권이 책꽂이에 꽂힙니다. 어제까지는 아빠가 읽었고, 오늘부터는 엄마가 읽습니다. 앞으로는 우리 집 어린 딸내미가 이 책을 읽겠지요. 뭐, 예닐곱 살쯤 되면 아빠나 엄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 줄 수도 있습니다. (4342.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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