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53 : 김수정 ② 귀여운 쪼꼬미



 엊그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2008)라는 책을 덮었습니다. 원자폭탄 피해자 2세 환우로 살다가 2005년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김형률 씨를 기리는 자그마한 책입니다. ‘원폭 2세 환우’. 사할린에 남아서 고향나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아리랑만큼이나, 외국사람이니 지문을 찍어야 한다는 차별법에 시달리는 ‘일본에 남은 한겨레’만큼이나, 자치주에서 풀렸고 자치문화도 나날이 무너지고 있는 중국 연길시 한겨레만큼이나, 이 땅 곳곳에서 ‘일한 대가나 보람이 아닌 푸대접과 괴롭힘’에 들볶이면서도 한국땅에서 돈버는 꿈을 품고 있는 이주노동자 못지않게 푸대접과 괴롭힘에 들볶이는 비정규직노동자만큼이나, 몸 어느 한 곳이 아프다는 까닭으로 어린 날부터 늙어 죽는 날까지 외롭고 힘들어야 하는 장애인들만큼이나 팍팍하고 모진 삶을 꾸려야 했던 사람들이 ‘원폭 2세 환우’입니다. 그나마 다른 ‘아픈이’는 왜 아픈 줄이나 알지만, 원폭 2세 환우는 아픈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성노예로 시달린 할머님들을 도우면서 일본군과 일본 정부, 여기에 한국 정부 잘못을 꾸짖는 손길과 눈길이 모자라나마 있기는 해도, 일본에 억지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애꿎게 원자폭탄을 맞아서 자기뿐 아니라 딸아들과 그 딸아들이 낳는 딸아들한테도 피해가 이어지는 현실을 놓고 무어라 따질 길이 없는 사회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에서 아프지 않은 사람, 따돌림받지 않은 사람, 외롭지 않은 사람, 푸대접받지 않은 사람은 어찌 살아가고 있을는지요. 아프지 않으니 즐거운가요. 따돌림받지 않으니 신나는가요. 외롭지 않으니 시원한가요. 푸대접받지 않으니 홀가분한가요.


 김수정 님 만화 《귀여운 쪼꼬미》(서울문화사,1990)를 펼칩니다. 1989년에 〈아이큐 점프〉라는 주간만화잡지에 싣던 ‘어린이 성교육’ 만화입니다. “아마 여성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거나, 여자를 하찮게 여기는 나쁜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야.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란다(157쪽).”


 만화쟁이 황미나 님도 성교육 만화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2003년에 《루나레나의 비밀편지》(동아일보사)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황미나 님은 책끝에 “처음엔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저 내가 늘 그려 오던 꿈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고 밝힙니다. 당신은 글을 써 준 교수님한테 ‘먼저 교육을 받고’ 성교육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동안, “나이든 저도 모르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면서 한숨을 쉽니다. 그나마 황미나 님은 부탁을 받아 만화를 그리게 되어서, 여태껏 모르거나 잘못 알던 일 하나를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은? 우리 둘레에서 늘 얼굴을 부대끼는 아이들은?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거나 읽어내면서 자기 길을 걷는 우리들이온지요. 이웃과 아이들이 제 길을 아름답게 걷도록 돕거나 이끄는 우리들이온지요. 김수정 님은 “아니란다. 사람은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을) 한단다(78쪽).” 하고 말합니다만. (4341.6.1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