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과 다시다


 ‘미원’과 ‘다시다’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조미료가 있습니다. 화학조미료지요. 일본에서 만든 조미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만들고, 상품광고마저도 일본 광고를 고스란히 베껴서 내보내 왔습니다. 1998년에 신문방송학 공부를 하면서 본 일본 조미료 회사 광고와 한국 조미료 회사 광고가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고, 노래며 광고말이며 어느 하나 안 베낀 곳이 없는데, 이와 같은 광고가 한국에서는 ‘광고상’까지 받는 형편이었으니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미원이며 다시다며, 또 맛나며, 또 새로운 이름으로 나오는 숱한 조미료며,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엄청나게 사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국을 끓입니다. 조미료가 있기 앞서까지는 된장과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보았으나, 조미료가 싼값으로 퍼져나가자, 모두들 된장과 소금과 간장을 뒤로 밀쳤습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손맛과 입맛으로 우리 몸을 북돋우던 흐름이 하루아침에 끊겼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나라에서 라면공장 키우는 정책을 펼치며, 사람들 밥상에 라면이 부쩍 자주 오르게 되었고, 이제 라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느끼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라면에는 ‘스프’가 들어가는데, 이 스프는 미원이나 다시다보다 더 자극이 센 조미료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제까지, 찬장에 미원이나 다시다나 맛나나 라면스프가 없는 집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밥과 국을 하는 손길을 찾는 일은 놀이터 모래밭에서 천 원짜리 캐내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동네 이웃집에 놀러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게 될 때면 일찌감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고 비손을 올려야 합니다. 조미료덩이를 배속에 집어넣고 삭여야 할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지만, 싫은 얼굴을 할 수 없습니다. 세탁기 안 돌리고 텔레비전 안 본다는 대목 하나만으로도 ‘미친 놈’ 소리를 듣고 있는데, 조미료 하나 안 쓰고 소금과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찌개를 끓여서 먹는다고 하면, ‘이 동네를 떠나 산골구석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눈초리를 받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꼭 물똥을 누거나 속이 뒤집어져서 괴로웠지만, 어디를 가도 하도 커피를 타 주기 때문에 차마 개수대에 흘려보내기만 할 수 없어서 억지로, 어거지로 마시고 했더니 이제는 몸에서 조금 받아 주기는 합니다. 토마토나 딸기 대접을 받을 때, 그냥 꽁다리까지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설탕은 안 묻히고 먹습니다. 그러나 ‘그럼 맛없어!’ 하면서 일부러 설탕을 푹 묻혀서 이쑤시개로 찍어서 제 손에 쥐어 주십니다. 능금이나 배를 먹을 때 껍질을 안 벗기고 속까지 모두 먹고 싶으나, ‘맛없어! 그걸 왜 먹어!’ 하면서 쓰레기통에 얼른 집어넣으십니다.

 눈물이 핑 돌지만, 가슴이 쓰리지만,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옆지기와 저는 배추 날것 그대로 물에 씻어서 먹기를 좋아하나, 싱그러운 열매는 껍질과 씨까지 오독오독 깨물어 먹기를 즐기나, 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능금 껍질을 벗겨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껍질 안 벗긴 것을 속까지 냠냠짭짭 씹어서 먹지요.

 여러모로 알아보고 생각하고 길찾기를 해 본 끝에, 우리들이라도 도시에서 똥오줌을 거름으로 삭혀서 집에서 푸성귀를 기른다든지, 아니면, 만들어 놓은 거름을 동네 꽃밭에라도 뿌려 줄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동네이웃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신날 텐데, 옆지기가 이웃 아주머니한테 들어야 하는 소리는 장난이 아닙니다. 어느 만큼 어림하고 있었습니다만,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남다른 삶도 아닌데,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고작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만 해도 다들 이렇게 사셨는데, 그리고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를 낳아 기른 아버님 어머님은 모두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모두들 거리낌이 없는 모습과 매무새로 그렇게들 이 땅에서 어울려 왔는데.

 무거운 마음을 풀고자 동네 막걸리집에 갑니다. 동네 막걸리집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인데 어쩌고 ……, 식량위기가 저쩌고 …….”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뭐라고?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라고? 뭔 소리여?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25% 밑으로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헛소리를 늘어놓고들 있나? 아니, 헛소리이건 아니건, 그렇게 자기들도 우리 나라가 ‘식량 위기’인 줄 안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크나큰 특집으로 삼아서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깨우치고 몸을 움직여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하지 않나?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도, 아저씨들도 모두모두 집에서 저 텔레비전 소식을 들으실 테지요. 식량 위기가 어쩌고, 자급률이 어쩌고 ……. 그런데 우리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 가운데 몇 분쯤이나마, 이런 이야기를 당신들 살갗으로 받아들이면서, ‘미원’과 ‘다시다’로 물들이고 있는 삶을 털어내도록 움직여 주실 수 있을까요. (4341.5.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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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ms 2010-07-12 10:41   좋아요 0 | URL
다른 이유로 검색하다가, 즉 우연히, 들렀습니다.
저도 멸치는 대가리 내장(?) 다 먹는 편이고
명태도 새우도(?) 대가리까지 먹지만
사과 내장은 그 사과씨의 독특한 맛 때문에 ... 네 사과 뼈는 맛이 괜찮습니다.
또 하나 사과 배꼽(꽃자리)는 맛이 별로 입니다.
맛이 별로인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과씨는 근거가 부족하니
사과배꼽도 마찬가지겠네요.
포도씨도 씹자니 삼키자니 ... 포도 껍질도 어느덧 벗기는 게 씹는 것보다 편해졌고 ...
딸기 꼭다리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네요. 딸기는 흔하지도 않아서였는지 ...
요즘은 애들과 애엄마랑 먹을 때 기준이 내가 아니라 더더욱 ...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