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해 2월, 어느 잡지사에서 책추천 글을 부탁해 와서 거의 억지처럼 써서 보낸 글... 씁쓸한 마음은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라서 걸쳐놓는다.)

 

네 가지 책 모두 그다지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기가 참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 책들 모두 출판사에서는 정성을 들여 엮었을 텐데, 이 책을 손에 쥘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는 좀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땀방울을 헛되이 써 버렸다고 할까요. 이 가운데 하나 가까스로 골라서 추천하는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확 눈에 뜨이는 책이 있다면, 선정기도 마감에 늦지 않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오늘날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 아쉬움


 설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올해에는 쉬는날이 짧아서 길이 많이 막힐까 걱정들을 했다지만, 정작 명절 동안 길은 거의 안 막혔다고 느낍니다. 저는 서울부터 자전거를 타고 음성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갔는데, 여느 때보다 조금 늘었을 뿐, 딱히 명절 느낌이 나지 않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명절이라고 해서 길이 더 막힐 만하지 않을 만큼 전국 구석구석에 넓은 길이 많이 뚫렸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많이 늘었고 고속국도도 많이 늘었으며 일반국도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노라면 웬만한 시골길(지방도로)은 차가 아주 뜸합니다. 일반국도와 고속국도도 차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새길을 놓는 공사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굳이 고속철도를 놓지 않아도 서울과 부산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좁은 땅인데, 고속철도까지 놓았습니다. 이런 판이니 명절이라고 길이 막힐 일이 없어요. 한편, 이렇게 길막힘 없이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에 자연 삶터가 그만큼 무너지거나 사라졌다는 소리요, 우리 둘레 자연 삶터가 이토록 무너지고 사라졌다는 소리는, ‘으레 떠올리는 시골집 모습과 산골짜기 경치’는 국립공원에서조차 자취를 감춘다는 뜻입니다.

 동화책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글쓴이한테는 어머니이고, 글쓴이 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될 분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한테 우리 삶과 문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깨비’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도시고 시골이고 도깨비를 볼 만한 깊은 산골이 없기 때문에, 또 무시무시한 귀신 타령도 아이들한테는 씨나락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옛날이야기가 얼마나 살가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도깨비란 먼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있던 님이고, 우리 삶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이끄는 벗이기도 한 만큼, 도시문명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도깨비 이야기를 빚어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억지스레 도깨비를 꾸며 보이지 않습니다. 도깨비를 그린 그림도 아이들한테는 앙증맞거나 깜찍하다고 느껴지겠구나 싶습니다. 서양 아이들한테는 요정일 테지만, 동양, 더욱이 한국 아이들한테는 도깨비입니다. 이런 도깨비 문화와 느낌을 살뜰히 받아들이도록 하면서, 어린 날 상상력과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어요.

 한편,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옛이야기도 아니고, 또 오늘날에 맞추어 새로 꾸민 이야기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에이, 다 지어낸 이야기잖아.’ 하면서 피식 웃을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저 할머니한테 듣는 꿈 같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참말로 자기가 사는 도시 아파트에서도 ‘옷장에 도깨비가 있지 않을까?’, ‘책상 밑에서 도깨비가 올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창문 밖에서 몰래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느끼도록 해 줄 장치나 이음고리 몇 가지쯤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도깨비 일곱 동무 이름을 성격에 맞게 재미나게, 그러면서도 퍽 알뜰히 붙인 대목이 반갑고, 도깨비들이 자기 이름에 걸맞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놀랍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은 아이들한테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이 서로서로 소중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겠지요. 다만, 말놀이를 느끼게 해 주려고 쓴 꾸밈말이나 시늉말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걸맞지 않거나 얄궂은 말투나 낱말, 어렵게 쓴 낱말은 덜어내거나 다듬으면 좋겠어요. 말놀이란, 한낱 재미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거든요. 알맞는 말만 쓴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올바른 말을 쓰는 바탕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둘을 주겠습니다. 다른 책 세 가지는 너무 볼품없어서 말할 값어치를 못 느낍니다. (4340.2.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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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숲노래 2008-07-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