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저녁늦비 (2025.11.8.)
― 부산 〈카프카의 밤〉
구름이 하얗게 흐르던 아침이었고, 낮을 지나면서 가랑비가 듣습니다. 부산 안락동 〈스테레오북스〉에 깃들고 나서 210 시내버스를 탑니다. 이동안 비를 즐겁게 맞습니다. 저녁늦비이되 안 차갑습니다. 그저 포근히 감싸는 빗방울입니다. 연산동으로 건너오고서 〈카프카의 밤〉으로 걸어갑니다. 고즈넉한 마을 한복판에 책으로 빛나는 쉼터이자 샘터입니다.
모든 책은 책집지기 손길을 닿아서 책시렁에 놓일 테니, 이곳을 찾는 분들 손끝을 따라서 새롭게 피어나기를 기다리지 싶어요. 빽빽한 날이 있고 느슨한 날이 있습니다. 모든 책은 책손 눈길을 닿아서 새터로 떠날 테니, 새길을 나서는 책은 늘 두근두근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그릇에는 밥을 담을 수 있고, 냇물이며 빗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흙과 씨앗과 풀꽃을 담을 수 있고, 이야기와 마음과 손길을 담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담으며 즐겁고 아름다울는지 스스로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껴요.
우리는 우리 숨결에 몸이라는 옷을 입듯, 마음에 사랑이라는 옷을 입히면서 빛나는 길이 있습니다. 또는 겉치레나 허울 같은 옷을 씌울 수 있고, 눈속임이나 눈가림으로 홀리는 옷을 덮을 수 있어요. 언제나 새록새록 배우고 익히는 숨빛을 놓을 수 있습니다. 배움길하고는 등지면서 고개돌리는 몸짓을 둘 수 있습니다.
〈카프카의 밤〉 지기님은 ‘누리책모임’을 합니다. 저는 조용히 책시렁을 살피면서 책빛을 머금습니다. 즐겁게 읽을 책이라면 언제든지 얘기할 만합니다. 즐겁게 읽지 못 하는 책도 언제라도 얘기할 만합니다. 빈틈없이 태어나는 책이란 하나조차 없습니다. 모든 책은 ‘빈틈있게’ 태어나는 터라 이 빈틈을 짚으면서 배우고, 이 빈틈으로 드나들면서 들여다보고, 이 빈틈을 누리면서 아늑합니다. 어느 빈틈은 “비우고 틔운 곳”이요, 어느 빈틈은 “빈마음으로 섣불리 여미려는 곳”이며, 어느 빈틈은 “빚지거나 빛나는 사이”입니다.
늦가을이 깊어가면서 찬바람이 새삼스레 싱그러운 하루입니다. 주섬주섬 장만한 책을 지고서 빗길을 걷습니다. 연산동에서 거제동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모든 비는 씻김물이요, 모든 물은 살림빛이며, 모든 빛은 사랑씨이고, 모든 씨는 푸른꽃입니다. 비오는 날에는 비를 맞이하면서 온마음을 녹입니다. 곧 비가 그치고서 새파랗게 트일 하늘을 기다립니다. 부산 같은 큰고장에서는 밤에 별바다를 못 누리지만, 아무리 하늘이 매캐하고 불빛으로 어지러워도, 이 너머에는 온별이 온빛으로 우리를 지켜본다고 느낍니다.
ㅍㄹㄴ
《내가 사랑한 서점》(서점을잇는사람들, 니라이카나이, 2025.11.11.)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김동식, 요다, 2024.2.15.)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오가와 사야카/지비원 옮김, 갈라파고스, 2025.6.20.)
#小川さやか #チョンキンマンションのボスは知っている #アングラ經濟の人類學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5.6.20.첫/2025.6.27.2벌)
《別冊 太陽 : 柚木沙彌郞》(日下部行洋 엮음, 平凡社, 2022.12.15.첫/2024.12.7.7벌)
《ぜつぼうの濁點》(原田宗典 글·柚木沙彌郞 그림, 敎育畵劇2006.7.20.첫/2024.3.21.9벌)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최재천, 효형출판, 2001.1.20.첫/2004.9.10.2판5벌)
《양자역학 쫌 아는 10대》(고재현, 풀빛, 2023.5.1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