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책갈피 노래



  인천 배다리책골목 이웃님이 다가오는 흙날(토요일)에 꾀하는 책잔치에 갑자기 구멍이 났다고 얘기하신다. 그때 “책갈피 전시”를 할 수 있으려나 물으신다. 하루 만에 얼른 챙겨서 꾸리고 보내야 하기에 말이 안 될 일이지만, 복닥복닥 큰아이랑 바지런히 추스른다. 판(액자)은 읍내로 나가서 장만하고, 손이 닿는 곳에 조금 모은 책갈피를 주섬주섬 붙인다. 이제 커다란 꾸러미에 담고서 동인다. 늦은낮에 마치고서 큰 꾸러미에 담는다. 나래터 마감을 앞두고서 시골버스를 탄다. 영차영차 날라서 부친다. 바람처럼 눈썹을 휘날리며 땀을 뺀다.


  크고작은 일을 돕고 거드는 아이를 지켜보며 돌아본다. 마음에 들 만한 일이나 마음에 안 들 만한 일이란 없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다우면서 어른스럽게 일하고 살림하고 말하며 어울린다. 나는 아이곁에서 늘 어른다우면서 어질고 아이빛을 헤아리는 작은이로서 나란히 서자고 생각한다.


  떠난 훌륭한 어른이 있다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부터 어른스레 철들고 눈뜨며 싹틔울 씨앗을 바라볼 노릇이다. 떠난 아름다운 어른을 그리면서,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어른으로 서는 즐거우며 반짝이는 일을 지으면 느긋하다. 떠난 놀라운 분만 어른일 수 없다. 바로 우리도 나란히 어른이다. 모자라거나 엉성하거나 멍청하기까지 한 모습이 남더라도, 이 모두를 차근차근 달래고 다독이는 하루를 살기에 보금살림을 꾸릴 수 있다고 느낀다.


  나는 작은아재이다. 작은 아저씨이다. 작은이요 작은사람이고 작은씨이다. 나는 작은돌이고 작은모래이고 작은별이고 작은빗물이다. 작게 조그맣게 조고마니 조촐히 조용조용 조곤조곤 한 걸음을 내딛는다. 큰일이나 큰살림이나 큰노래를 부를 마음은 없다. 늘 이곳에서 씨앗 한 톨을 심으려는 마음이다.


  오늘도 새록새록 즐겁게 땀을 뺐다. 읍내에서 일을 마치니 빈몸이다. 그러면 저잣마실을 한다. 다시 등짐이 묵직하다. 하루글을 쓰고서 눈을 감는다. 뉘엿뉘엿 저무는 가을해를 느낀다. 즐겁게 집으로 가자. 이제 다른 마감을 하나둘 갈무리해야지. 2025.10.2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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