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서 당장 나가
권민지 지음 / 찰리북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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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10.16.

그림책시렁 1656


《내 방에서 당장 나가》

 권민지

 찰리북

 2025.9.25.



  목소리(권리)를 낼 일이되, 목소리(주장)만 낼 노릇이 아닌, 목소리(뜻·마음)를 밝혀서, 목소리(새길)를 노래로 여는 삶을 지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내 방에서 당장 나가》는 ‘덩치곰’과 ‘새앙쥐’를 사이에 놓고서, 덩치곰이 힘으로 우락부락 밀어붙이는 바보짓을 나무라는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생쥐떼’가 ‘곰네’ 곳곳에 또아리를 틀면서 이리 파먹고 저리 쏠면 어쩌지요? 이 그림책은 ‘덩치곰·새앙쥐’로 ‘사람살이’를 빗대는데, 곰한테도 쥐한테도 몹쓸일입니다. 곰과 쥐는 이 줄거리대로 살지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가부장권력 마초남성폭력’으로 무너지는 ‘여린 가시내’라는 얼거리로 짠 듯싶습니다.


  2025년은 2005년이나 1985년이나 1965년뿐 아니라 1865년이나 1755년이나 1455년에 댈 길이 없을 만큼 ‘숨통을 트는’ 터전입니다. 그러나 2025년이 1985년보다 좀 숨통을 트기에 ‘살기에 낫다’고는 여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할 노릇입니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했기에 숨통을 틀까요? 모르거나 잊어버린 분이 많을 텐데, 1985년 한복판은 “청바지가 엄청나게 찢겨버린 무렵”입니다. 여대생이나 여공이나 여학생이 모처럼 목돈을 모아서 청바지를 사입었더니, 아빠뿐 아니라 엄마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일이 마을과 집집마다 흔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던 나라에서 용케 살아남았고, 그저 ‘살아남기’만 할 뜻이 아닌, ‘함께살기’로 갈아엎어서 가꾸려는 뜻인 나날입니다. 2005년 무렵까지도 ‘가정폭력·학교폭력·사회폭력’을 아무리 외쳐도 안 듣기 일쑤였습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길잡이(담임·교사)한테 여러 아이 주먹질(학교폭력)을 알려주어도 못 본 체하거나 거꾸로 ‘맞은아이’를 더 괴롭히며 구석에 내몰기까지 했습니다. ‘여성귀가안심길’이란 가시내뿐 아니라 사내도 마음놓고 못 다닌다는 뜻입니다. 힘을 부리는 주먹꾼은 모든 사람을 밟고 괴롭힙니다.


  그림책에 붙인 “내 방에서 당장 나가”라는 말은, 미움씨를 흩뿌리는 몸짓입니다. 쟤가 저렇게 했으니 쟤를 얼마든지 미워해도 되고, 괴롭혀도 된다는 몸짓입니다. 쟤는 쟤가 한 대로 내 손으로 앙갚음을 톡톡히 해주겠다는 몸짓입니다.


  잘 짚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도 어른도 앙갚음을 하면서 미움씨를 흩뿌리는 나라는, 언제나 ‘굴레질(가부장권력·독재사회·군대질서)’로 치닫습니다. 얼뜨기로 막나가는 그들한테 앙갚음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얼뜨기가 뉘우치거나 눈물을 흘릴까요? 아니올시다. 얼뜨기는 되로 받은 앙갚음을 말로 갚게 마련입니다. 얼뜨기이잖아요. 얼뜨기는 스스로 잘못한 줄 까맣게 모를 뿐 아니라, 아예 마음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덩치곰’과 ‘새앙쥐’는 끝없이 죽이고 죽는 불싸움으로 달려갈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불싸움을 벌여서 이 삶터를 이만큼 바꾸어내지 않았습니다. 1455년부터 2025년에 이르는 사이에 어떻게 얼뜨기를 하나씩 물리치거나 털어내면서 이 삶터를 가꾸었는지 차분히 되짚기를 빕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은 씨앗대로 거둡니다. 미움씨와 주먹씨와 죽임씨를 뿌리면 고스란히 미움씨와 주먹씨와 죽임씨가 자라서 퍼집니다. “어떻게 바꿔야 할는지 모르겠다”면 배울 노릇입니다. “바꿀 마음보다는 앙갚음을 하고 싶다”면 이 삶은 내내 불수렁(지옥)일 뿐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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