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8. 비싸다 싸다



  책을 읽는 사람한테는 책값이 안 비싸지 싶다. 손에 쥔 책은 늘 이만 한 값을 하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하되, 앞으로 두고두고 되읽을 테니까 책값은 싼 셈이다. 그렇지만 책보(책읽는 이)한테 책값이 비쌀 때가 있다. 도무지 손이 안 가는 책은 비싸다. 겨우 손이 가더라도 줄거리·이야기가 이 삶하고 동떨어질 뿐 아니라, 우리 삶하고 한참 멀구나 싶을 적에는 책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책보는 책을 읽으려는 마음이기에, 책값에 앞서 줄거리·이야기를 살핀다. 누가 쓴 책이건, 어느 펴냄터에서 낸 책이건, 줄거리·이야기가 마음을 끌거나 배울거리가 있거나 이 삶을 새롭게 비추는구나 싶으면 선뜻 장만한다. 글쓴이나 펴냄터 이름값만 바라보거나 얽매인다면, 책보가 아닌 ‘책보시늉·책보흉내·책보척’이라고 느낀다.


  책보는 “좋아하는 글님과 펴냄터가 없는 사람”이다. 어느 글님이나 펴냄터를 좋아할 적에는, 어느 글님이나 펴냄터가 후줄근하거나 엉터리로 책을 내더라도 ‘좋게 보아주’게 마련이다. 책보는 이름값 아닌 줄거리·이야기를 읽는 사람이다. 책보로서는 책보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펴는 길에 즐겁게 동무할 책을 곁에 놓고 싶다. 삶길과 살림길과 사랑길하고 먼 책은 손이 안 갈밖에 없고, 손이 안 가는 책은 그저 비싸다.


  시골에서 아침낮저녁으로 새롭게 마을알림이 시끄럽다. 논에 얼른 풀죽임물을 치라고 떠들썩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밥을 먹는가? 풀죽임물(농약)과 죽음거름(화학비료)이 듬뿍 밴 나락을 비닐자루에 싸서 형광등이 번쩍거리는 가게에 한참 놓은 쌀로 지은 밥은 어떤 맛이자 결일까? 더 값싸게 더 많이 거두어야 돈(경제논리·경제성장)에 걸맞다면, 우리는 ‘아름책’은 몽땅 등진 채 ‘값싼밥·값싼길’이라는 올가미에 스스로 온몸을 묶고서 ‘더 값이 싼 책’을 쳐다보는 굴레일 만하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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