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9. 비내리는 멧밭



  마을에 멧밭이 있다. 할매할배는 차츰 나이가 들며 멧밭을 돌보거나 일구기 벅차다. 이 멧밭자리를 팔아주기 바라던 분(귀촌자)이 꽤 있었는데, 우리 마을 할매할배는 이분들한테는 안 팔고서 ‘태양광업자’한테 거의 넘겼다. 이제 조금 남은 멧밭 가운데 한쪽은 아직 곤드레밭이다. 새벽에 할배 일손을 도우러 갔다.


  저물어가는 여름이기에 새벽 다섯 시도 어둡다. 늦여름에 이르면 새벽 여섯 시도 어두울 테지. 비는 쉬다가도 내리고, 신나게 들이붓다가도 말갛게 쉰다.


  마을 할배는 참이라며 빵과 마실거리(요거트)를 건넨다. 나는 일할 적에는 안 먹는다. 주머니에 쑤셔넣고서 곤드레자루를 영차영차 여민다. 서울내기(도시인)는 곤드레가 어떻게 생긴 나물인 줄 알까? 곤드레나물이 밥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골 할매할배가 어떻게 땀흘리는지 알까. 젊다면 일흔두엇, 많다면 여든한 살 할매는 이 새벽에 곤드레를 벤다. 개구리·나비·나방·노린재·하늘소·거미 들이 바쁘다. 풀이웃한테는 집과 마을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다. 멧숲에서 꾀꼬리와 지빠귀가 운다. 날이 밝을 즈음에는 제비소리가 섞인다. 그리고 빗소리가 사이사이 적신다.


  자루를 묶고 여미며 아침이 환하다. 할매들은 할배 짐차를 타고서 아침 드시러 간다. 비가 함박으로 쏟아진다. 나는 반갑게 함박비를 맞으면서 밭일을 마무른다. 천천히 고샅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빨래한다.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책을 읽다가 믈까치와 직박구리가 후박알을 쪼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든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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